
개막작 <올파의 딸들>
지난 겨울, 광장에서 가장 앞장서 싸웠던 여성들이 있었다. 그 겨울의 단단한 연대가 여름의 햇빛 아래에 다시 이어졌다. 투쟁이나 싸움의 함성이 아닌, 웃음으로 가득한 자리였다. 양성평등주간(9.1~9.7)을 맞아, 제18회 전북여성영화제가 9월 4일부터 사흘간 메가박스 전주객사에서 관객을 만났다. 13편의 작품이 상영된 소규모의 영화제이지만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올해는 영화를 통해 전북 여성운동의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하여 더욱 의미가 깊었다.
올해의 슬로건은 ‘끝내 닿는 우리’였다. 영화가 아니면 닿을 수 없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멀리 떨어져 있거나 시대를 달리하는 여성들과도 서로 공감하며 연대할 수 있다는 믿음을 담았다. 개막작 <올파의 딸들>(감독 카우타르 벤 하니야) 역시 이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2015년 튀니지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두 딸이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하기 위해 가출하면서 벌어진 올파 가족의 비극을 다룬다. 여성들의 이야기가 국가 권력과 세계의 문제로 확장되었고, ‘올파의 가족’은 곧 우리의 가족이 되며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했다.
개막작 상영 후에는 이은주 드라마테라피스트가 함께하는 씨네토크가 이어졌다. <올파의 딸들>은 극과 다큐멘터리를 넘나드는 독특한 연출로 주목받았다. 실제 인물인 올파와 두 딸이 당시 상황을 직접 재현하고, 사라진 두 딸과 남성 배역은 배우가 맡아 연기했다. 특히 올파가 감정적으로 격해질 수 있는 장면을 배우가 대신 소화하면서, 당사자는 한 발짝 물러나 자신의 상처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일종의 연극치료처럼, 올파와 남은 두 딸이 제작진과 대화하는 과정 자체가 치유의 순간처럼 다가왔다.
씨네토크를 이끈 이은주 드라마 테라피스트는 오랜 시간 여성운동 현장에서 활동해 온 인물이다. 연극적 기법을 통해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와 치유의 접점을 관객들과 나누었다.
폐막작은 전주시민미디어센터 여성영화 워크숍을 통해 제작된 <엄마는 늦게 온다>(연출 김애란·이민선)였다. 이 워크숍은 지역 여성 감독이 강사로 참여해 차별, 노동, 돌봄 등 동시대 여성들이 마주하는 현실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프로그램으로, 매년 진행되고 있다. 전문 영화인이 아닌 시민들이 영화 교육을 통해 작품을 완성한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다. <엄마는 늦게 온다>는 늘 타이밍이 엇갈리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섬세하게 포착한 단편 영화다. 또한 노희정 감독의 <자궁메이트>, 송에스더·임연주 감독의 <갈비> 등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선보였던 지역 여성 감독들의 작품을 함께 조명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2007년 ‘여성영상문화제’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작은 축제가 어느덧 18회를 맞았다. 이제 여성영화를 지역에서 보여주는 공간적 의미를 넘어, 지역 여성들의 일상과 삶을 조명하고 나아가 연대의 자리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올해 영화제 현장은 특히 따뜻했다. 영화관 로비에서부터 서로에게 남긴 다정하고 따뜻한 메모를 볼 수 있었다. 여타 영화제 개막식에서는 볼 수 없는, ‘너구리 뜨개 수세미’ 선물 또한 웃음을 자아낸다. 관객과 영화인, 여성운동가들이 함께 만든 소박한 연대의 순간들. 전북여성영화제는 그렇게 매년 여성들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