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전북여성영화제  2025.10월호

스크린 너머, 지역 여성운동의 기억을 잇다

<열 개의 우물> 씨네토크





영화제 둘째 날, 김미례 감독의 다큐멘터리 <열 개의 우물>이 상영됐다. 작품은 1970~80년대 인천에서 노동·빈민·교육운동을 펼쳤던 여성들을 다시 찾아간다. 동일방직 해고자 안순애, 해님공부방 선생님 김현숙 등,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십정동’에는 열 개의 우물이 있었다. 각기 다른 우물이었지만, 결국 물줄기가 이어지듯 그들은 동지로서 삶을 나누고 투쟁을 함께했다. 


영화는 그 시절의 여성운동의 치열한 현장보다는 그들의 '이후의 삶'에 주목했다. 도망치듯 귀촌했으나 결국 여성농민회 활동을 이어간 안순애, 강화도에서 독립책방 ‘국자와 주걱’을 운영하는 김현숙, 정치인이 된 홍미영, 그리고 인천에 남아 교육운동을 계속하는 다른 여성들. 과거에서 떨어지지 않은, 여전히 살아 있는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


씨네토크 무대에는 김금옥 전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가 올랐다. 군산 출신인 그는 전북민주여성회, 성폭력예방센터, 전북여성단체연합 등에서 활동하며 지역 여성운동의 토대를 닦아온 인물이다. 김란이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의 진행으로, 전북 여성운동의 역사를 되짚는 시간이 열렸다. 객석에는 그 시절 함께 싸웠던 여성들이 자리해 있었다.


김금옥 전 대표는 1990년대 전북에서 일어난 두 사건을 언급했다. 1991년 남원시 주천면에서 일어난 ‘김부남 사건’은 어린 시절 자신을 성폭행했던 가해자를 김부남 씨가 30년 만에 살해한 일이었다. 한국 사회는 김부남 씨의 분노에 공감했고, 이는 성폭력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군산의 성매매업소 화재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감금된 여성들이 불길에 갇혀 목숨을 잃었고, 이 사건은 2004년 성매매방지법 제정의 불씨가 되었다.


일련의 사건들이 지역의 오명으로 남지 않았던 것은 전북 여성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그들은 ‘김부남사건대책위원회’를 꾸려 김부남 씨의 구명을 외쳤고, 군산 화재 사건의 진상 규명과 제도 개선을 요구하며 여성 인권운동의 최전선에 섰다. 김 전 대표는 “당시 여성운동가들이 아니었다면 단순한 화재 사고로 묻혔을 것”이라며 당시 전북이 한국 여성운동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또한 김 전 대표는 “당시 우리에겐 지역에 한정되지 않는 운동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부남 사건을 계기로 설립 논의가 시작된 ‘성폭력예방치료센터’는 설립 과정에서 전북이라는 지역명을 붙이지 말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당시로서는 독특하게 중앙의 지부가 아닌 독립된 사단법인으로 출범했으며, 현재까지도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열 개의 우물>



씨네토크 현장은 오래된 동지들의 재회로 더욱 따뜻했다. 허명숙 전 전북일보 기자, 김형선 사무국장 등이 함께했고, 영화 속 인물이기도 한 최선희 전 지역사회탁아소연합회 사무국장은 지금은 순창에서 발효빵으로 공동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반가운 근황을 전했다.


이야기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오늘의 여성운동으로 이어졌다. 허명숙 전 기자는 “그 시절엔 희망과 열정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불꽃이 어디로 갔는지, 앞으로 어떤 방향성을 갖고 20·30대와 운동을 이어가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영숙 전북여성단체연합 대표 역시 “영화 속 여성들이 말하던 행복에 공감했다. 지금 세대는 빛을 가지고 광장에 나아가는 힘이 있지만, 일상에서는 불행을 호소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라며 질문을 던졌다. 답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함께 묻고 나누는 그 시간 자체가 다음 세대를 향한 씨앗처럼 남았다.  


김미례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말하는 행복감은 과거를 미화하고 얻어낸 감성 같은 게 아니라, 어렵고 힘든 가운데도 서로 나누며 살 수 있었다는 진실에 대한 기억인 것 같다"고. 이 말처럼, 전북에서 운동을 이어온 여성들의 기억 또한 다정하고 따뜻하게 남아 오늘날의 여성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란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