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 장인들과 지역의 청년들이 만났다. 크립톤이 주관하는 프로그램 ‘장인학교 인사이트 트립’을 통해서다. 예비 창업자들이 장인의 공방에서 직접 그들의 경험과 지식을 전해 듣고 로컬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창업 아이템을 발굴하는 과정이다. 오랜 시간 한 길을 걸어온 장인의 이야기는 이들에게 새로운 영감과 힘을 전했다. 전주시 무형유산기능보유자 김혜미자 색지장, 엄재수 선자장, 김종연 민속목조각장, 이종덕 방짜유기장 네 명의 장인이 들려준 이야기를 만난다.
색지장 김혜미자
힘든 과정이 결국 단단한 나를 만든다
한옥마을 끝자락 골목에 김혜미자 장인의 한지공예관이 자리하고 있다. 마치 할머니댁에 놀러온 듯, 따스한 한옥집 안은 알록달록한 색지 공예품들로 채워져 있다. 장인은 늘 옆에 두고 있는 작품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며 색지공예의 세계를 전했다. 그 중 국새 받침대에 담긴 이야기는 특별하다. 겉보기에는 비단 같지만 한지 1,800겹을 겹쳐 한 장 한 장 수만 번을 두드려 완성한 이 작품은 고생한 만큼 장인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매달리며 힘이 들었지만, 개인의 일이 아닌 국가를 위한 일로 그 공을 인정받으며 스스로도 자부심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장인은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그때를 떠올리며 한지에 대한 열정을 다시 끌어올린다는 말을 전하며 참여자들에게 응원을 보냈다.
선자장 엄재수
전통도 유행을 알아야 살아남는다
장인이 운영하는 부채박물관에는 손수 제작한 합죽선부터 역사 속 전통 부채, 각 나라의 개성 있는 부채들이 전시되어 있다. 공간에서부터 부채를 향한 장인의 애정이 느껴진다. 합죽선을 가까이에서 접하는 일이 흔치 않은 시대이기에 참여자들은 생소한 부채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장인은 현 시대 전통 부채가 처한 현실적인 어려움도 함께 전했다. 일상에서는 더 이상 부채를 찾는 사람이 없으니 작품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전통 역시 유행을 알아야 살아남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 늘 문화적인 흐름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전통에 어떻게 접목할까를 고민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민속목조각장 김종연
대학과 사회의 연결이 필요하다
‘나무와 우연히 만났다’는 뜻의 ‘목우헌’은 김종연 장인의 작업실이자 전시관이다. 공방에 삼삼오오 모인 참여자들은 목공예 작품의 정교함과 손때 묻은 도구들에 먼저 감탄했다. 평생을 목공예에 바쳐온 장인은 청년 세대가 공예 분야에서 느낄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공예가 어려운 이유는 대학과 사회가 연계되지 않는 한계가 있다는 것. 전공자가 자신의 전문 분야를 살려 사회생활이 가능해야 하는데 대학에서는 조형성만을 강조하고 실질적인 사회와의 연결이 어렵다는 안타까움을 전했다. 전통으로도 먹고살 수 있다는 인식이 젊은 세대에게 퍼지려면 전통의 가치를 사회가 알아보고 기본적인 터전이 마련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방짜유기장 이종덕
매일 고민하고 시도하라
악기부터 주방용품, 제기, 종교용품까지. 풍남문 근처의 공방에서 이종덕 장인의 작품을 만났다. 장인은 자신이 만든 작품 중 역작으로 꼽을만한 작품이 무엇이냐고 묻는 한 참여자의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잘 만들었다 싶은 작품도 며칠 지나고 보면 아쉬운 부분이 보이고, 더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는 전통공예 역시 이처럼 매일 치열한 고민이 필요함을 전했다. 잘 팔리든, 안 팔리든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실패하고, 배우다보면 언젠가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응원의 말도 덧붙였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