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2025.5월호

우리는 또 선을 넘는다

ㅣ2025. 4. 30 – 2025. 5. 9


특별전 <고독의 오후>



26개의 나이테, 26개의 발자국, 26개의 역사와 기억. 26회를 맞은 전주국제영화제(공동집행위원장 민성욱·정준호)의 모션 포스터는 그동안 성장하고 변화해 온 스물여섯 개의 원으로 ‘J’를 그려낸다. 이번 영화제를 통해 완성될 원은 어떤 색을 가질까. 올해도 ‘선을 넘는’ 영화들이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한국경쟁 부문 최다 출품 기록을 경신한 올해는 더욱 다양한 장르, 새로운 이야기, 실험적인 작품들로 기대를 모은다. 4월 30일부터 5월 9일까지 열흘간 열리는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지금 바로 영화의 거리로 나가보자.







특별상영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224개의 이야기와 만난다 

올해는 개막 다음날부터 영화제 기간 6일간의 징검다리 연휴가 이어진다. 이에 영화제는 관객층을 더욱 세분화하고 부대행사를 중후반부까지 배치해 황금연휴 효과를 높이고자 한다. 관객을 분산해 축제의 마지막까지 관람과 행사 참여가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일정을 편성했다. 작년과 비교해 큰 변화보다는 늘 해오던 프로그램들 안에서 작은 변화와 확장을 시도한다는 계획이다. 

역대 최다 출품작이 모인 올해 57개국 224편의 작품이 관객과 만난다. 43개국 232편의 작품을 상영했던 작년과 비교하면 참여 국가가 다양해진 점이 눈에 띈다.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전쟁과 역사, 여성 등을 주제로 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가 균형을 이루며 국내 98편, 해외 126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이 중 80편은 전주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월드 프리미어 작품이다. 


초기 정신 ‘대안’을 찾아

정책, 산업, 예술로서 영화가 위기에 처했다는 지금, 전주국제영화제는 초기 정신인 ‘대안’을 찾아 나선다. 특별전 ‘가능한 영화를 향하여’를 통해서다. “지금 전주국제영화제의 정신은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올해 특별전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이는 영화제와 관련된 모든 결정에 있어 늘 제기되는 질문이다. 필름의 대안으로 디지털을 제시하고 주류영화의 대안으로 독립영화를 표방해왔듯, 전주영화제는 영화표현의 관습에 맞선 대안으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고독의 오후>, <가끔 구름>,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등 특별전에서 소개하는 영화들은 크게 세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첫째, 자본의 제약을 벗어나 절대적 독립성을 유지한 작품이라는 것, 둘째, 창작자로서 자신만의 작업 스타일을 구축하고 표현한 것, 마지막으로 다작을 통해 지속성을 유지한 감독들이라는 점이다. 곧, 돈을 좇는 대신 온전한 자신의 세계를 펼치고 예술을 추구하는 영화인들의 작업을 소개한다. 관객에게는 좋은 영화를 소개하는 동시에 젊은 창작자들에게 산업과 주류 영화 너머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한다. 문성경 프로그래머는 이 영화들이 질문에 답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영화계가 마주하고 있는 많은 문제에 대한 대안을 보여줄 것이라고 전했다. 




특별상영 <당신의 맛>



영화를 통한 연대의 힘    

외형적 규모뿐 아니라, 전주국제영화제의 역할과 내실을 다지는데도 집중한다. 지난해 신설한 ‘지역 독립영화 쇼케이스’는 올해도 이어가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창작을 이어가는 지역 독립영화계에 지지와 응원을 던진다. 올해도 8개 지역 독립영화협회가 함께한다. 대중에게 작품을 소개하고 그 성과와 의미를 돌아보며 지역 영화 사이의 네트워크를 단단히 하고자 한다. 


여기에 ‘전주포럼’도 역할을 더한다. 지난해 전주포럼을 계기로 만들어진 ‘영화산업 위기극복 영화인연대’, 예산축소로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영화네트워크’ 등의 단체가 참여해 영화를 비롯한 문화산업 전반에 대해 토론할 예정이다. 올해는 특히 ‘한국 영화의 위기’에 대한 화두 외에도 ‘한국 사회의 위기’를 논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 된다. 


영화제 속 전주

지난해까지 전주 영화의거리와 부성길 내 골목에서 소규모로 진행되었던 골목상영은 인기에 힘입어 올해 전주시 곳곳으로 행사장을 확대했다. 5월 1일부터 8일까지 11개 장소에서 매일 오후 8시에 관객들을 만난다. 에코시티 광장과 연화정도서관, 한벽터널, 서학예술마을 열린마당 등 지역 내 특색 있는 공간들이 더해졌다. 상영작은 총 18편으로,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의 수상작들과 가치봄(배리어프리) 단편영화 3편을 포함한 독립영화들이 상영되며 관객과의 대화도 함께한다. 특히 골목상영은 무료로 상영되기 때문에 별도의 예매 없이 누구나 편하게 와서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전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당신의 맛’ 특별상영도 주목된다. 영화제에서 TV 드라마를 상영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당신의 맛’은 주인공이 전주에서 간판 없는 원테이블 식당을 운영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성장 로맨스다. 전주와 전주의 음식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모든 촬영이 현지에서 이루어져 지역민들이 더욱 공감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1~2화가 최초로 공개되며 상영 후 감독 박단희와 크리에이터 한준희, 배우 강하늘, 고민시, 김신록, 유수빈이 참여해 관객과의 대화를 이어간다.






개막작


콘티넨탈 ’25 

감독ㅣ라두 주데


필름의 대안으로 디지털을 주목하며 만들어진 전주국제영화제. 이제는 또 하나의 대안 매체, 스마트폰으로만 촬영한 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했다. 루마니아 출신 라두 주데 감독의 <콘티넬탈 '25>다. 작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작품으로 기대를 모은다. 

주인공인 오르솔랴는 루마니아 북서부 중심 도시 클루지의 법정 집행관이다. 어느 날 그는 노숙자를 강제 퇴거시키는 일을 맡게 되며 죄책감에 시달린다. 평범한 사람이 악의를 갖게 만드는 현대 사회의 모순적인 구조를 엿볼 수 있다. 

2018년까지 라두 주데는 고전적인 영화를 만들었으나 최근에는 동시대에 관심을 돌렸다. 전작인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는 말라>(2023)에서는 주인공이 틱톡(TikTok)을 사용하며 이번 작품은 그 연장선상으로 스마트폰 촬영을 선택했다. 단순한 촬영 도구를 바꾸는 것이 아닌 영화 속 이야기에서도 매체의 변화를 이야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폐막작


기계의 나라에서 

감독ㅣ김옥영


35명의 네팔 이주 노동자가 쓴 69편의 시를 모아 출간된 시집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2020). 김옥영 감독이 이 책에 시를 썼던 이들 중 한국에 거주 중인 딜립, 수닐, 지번의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기계의 나라에서>가 이번 영화제의 폐막작이다. 

고국에서 교사, 기자, 금융회사 직원 등 나름 엘리트 구성원으로 일했던 그들은 한국에 와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다. 크고 작은 차별을 경험하며, 동료들이 사고나 자살로 사망하는 일도 겪는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너무 익숙해서인지, '선진국'인 한국 사람들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김옥영은 40년 넘게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동해 왔으며, 10년 전부터는 직접 제작사를 운영해 왔다. 작년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던 <목소리들> 또한 그가 제작했다. 이번 영화는 그의 연출 데뷔작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인물에 접근한다. 등장인물들이 그들의 시를 직접 한 구절씩 낭송하며 한국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건넨다. 




고다인ㆍ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