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2025.5월호

영화로 그리는 민주주의의 봄

특별상영 ‘다시, 민주주의로’


특별상영 <브라질 대선의 기록>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놓인 그날의 혼란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영화제 역시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뭐라도 행동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프로그래머들은 머리를 모았다. 12월부터 영화제까지 남은 시간은 짧았지만 혼란한 사회를 영화로서 대변하기 위해 특별 섹션을 마련했다. 


특별전 ‘다시, 민주주의로’에서는 지난해 계엄 사태를 겪은 한국과 비슷한 상황을 이미 겪었거나 겪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의 정치 상황을 다룬 여섯 편의 다큐멘터리를 소개한다. 고전영화부터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작품들은 꽤 많다. 그중 이미 많이 소개되었거나 여러 플랫폼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은 최대한 배제하고 2020년대 이후의 현안을 다룬 날것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라모나 S. 디아스 감독의 <필리핀 민주주의의 불씨>는 2022년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반인도적 살상 범죄 혐의’로 체포된 전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와 그의 독재 정권에 맞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당시의 부통령 레니 로브레도, 그와 함께 민중 운동을 전개한 필리핀 민중의 모습을 담고 있다. 비슷한 작품으로, 힌드 메데브 감독의 <수단, 우리를 기억해 줘>가 있다. 가부장적 사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한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30년간 지속한 군부 독재에 맞서 거리로 나선 2019년 수단 시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레크 술리크 감독의 <슬로바키아의 희망, 주자나 차푸토바>는 인권 변호사 출신 주자나 차푸토바가 부패한 권력에 맞서 저항한 끝에 슬로바키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고 “나는 지배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라는 말을 남기며 재선 도전을 포기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5년간을 밀착 취재한 작품이다.


스티브 핑크 감독의 <마지막 공화당원>, 산드라 코구트 감독의 <브라질 대선의 기록>, 파비앵 그린버그, 보르드 셰에 뢴닝 감독의 <노르웨이식 데모크레이지>는 극단적 양극화의 시대에 민주주의가 겪을 수 있는 위기의 순간을 보여주며 한국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4월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이 결정되었다. ‘다시, 민주주의로’에서 소개하는 영화들을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과 지속, 더 나아가 전 세계가 치열하게 지켜내고 있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돌이켜보는 것은 어떨까.







함께 보면 좋을 영화

우리는 왜 민주주의를 지키는가







계엄령의 기억 

월드시네마 | 바우테르 살리스 | 브라질 | 2024



1971년, 강압적인 군부 독재 통치를 겪고 있는 브라질. 다섯 아이의 엄마인 에우니시 파이바는 가족들이 정부의 독단적인 폭력 행위로 고통을 겪은 후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해야만 한다. 마르셀루 후벵스 파이바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는 브라질의 숨겨진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묘사한다. 올해 열린 제97회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그라운드 제로로부터 

프론트라인 | 가자의 영화감독들 | 팔레스타인, 프랑스, 카타르, 요르단  |  2024


팔레스타인 영화감독 스물두 명이 전쟁 중인 가자 지구에서 그들 각자의 삶을 포착한 이야기의 모음집이다.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실험적 비디오아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옴니버스로 제작되며 여러 장르와 이야기를 아우른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끝 모를 두려움과 폭발음, 총소리, 폐허가 된 건물이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비참한 상황 속에서 창작자들은 카메라를 들었고, 가자 지구 사람들의 모습을 여과 없이 담으려 노력했다. 생존을 위한 투쟁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하여.







저항의 기록 

국제경쟁 | 알레한드로 알바라도 호다르, 콘차 바르케로 아르테스 | 스페인, 포르투갈 | 2024


페르난도 루이스 베르가의 유일한 연출작 <로시오>(1980)는 민주주의 초창기 법적 검열의 대상이 된 후 많은 이들에게 저주를 받은 다큐멘터리다. 2011년 그가 세상을 떠나고, 이 작품은 그가 남긴 수십 개의 메모와 대본, 자료화면을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해석하며 이를 저항의 제스처로 재구성했다. 스페인의 비극적인 현대사를 기록했고, 그로 인해 평생을 타국에서 살아야 했던 한 용기 있는 영화인의 이야기이며, 그가 남기고자 했던 '꿈'에 대한 이야기이다.







새로운 여명: 콜롬비아의 여성 게릴라들 

프론트라인 | 프리실라 파디야 | 콜롬비아 | 2024


쿠데타, 군부독재와 내전들, 민간인 학살은 20세기 거의 모든 중남미 국가에서 일어난 비극이다. 콜롬비아에서는 1964년부터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등 좌파 반군과 정부군의 내전이 50년 넘게 이어졌다. 정부와 최대 반군인 FARC은 2016년 평화협정안을 체결했고, 콜롬비아 시민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이 작품은 무장혁명군에 가담했다가 이제는 시민이 된 여성 게릴라들을 조명한다. 특히 프리실라 파디야 감독 역시, 어린 시절 친구의 권유로 게릴라가 될 뻔했었고, 게릴라가 된 친구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