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결산   2025.6월호

독립과 대안, 실험 다진 영화 행진





지난 5월 9일, 전북대삼성문화회관 공연장. 스크린 위로 엔딩 크레딧이 흐르고 조명이 켜지며 우리는 영화와 함께한 열흘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4월 30일부터 열흘동안 열린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올해는 57개국 224편의 작품을 만나며 작은 변화와 큰 의미를 남겼다. 한 편이라도 더 보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아침 일찍 굿즈샵 앞으로 줄을 선 사람들까지. 올해의 영화제는 지난해보다 높은 매진율과 좌석 점유율을 기록했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현장을 돌아보며 영화제가 남긴 의미와 과제를 돌아본다.






국제경쟁 대상작 <갚아야 할 빚이 너무 많다>



올해 우리가 주목한 영화는  

독립과 대안, 실험이라는 정체성을 향한 영화들 속에서 올해도 여러 작품이 주목을 받았다. 한국경쟁 부문에서는 특히 4관왕을 차지한 <3670>이 주목된다. 박준호 감독의 <3670>은 탈북자이자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주인공 철준을 중심으로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탈북자 사회의 현실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배급지원상을 비롯해, 배우상, CGV상, 왓챠상까지 4개 부문을 수상했다. 복합적인 소수자의 삶을 진솔하게 그리면서도 사회적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고 인물의 성장과 사랑에 집중해 공감을 전한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국제경쟁 부문 대상은 <갚아야 할 빚이 너무 많다>가 수상했다. 조엘 알폰소 바르가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이 작품은 주인공 리코의 평범한 일상에 변화가 찾아오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감독은 독특하면서도 현실적인 인물을 그려내며, 인생이 항상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외에도 한국경쟁 부문 대상을 수상한 조현서 감독의 <겨울의 빛> 등 14편의 작품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영화제의 초기 정신인 ‘대안’을 찾고자 선보인 ‘가능한 영화를 향하여’, 동시대 한국사회를 대변하는 ‘다시, 민주주로’ 같은 특별전들은 영화를 통해 우리의 과거와 현재 모두를 조망했다. 폐막작 <기계의 나라에서>는 오랜 시간 다큐멘터리 작가이자 제작자, 프로듀서로 활동해온 김옥영이 첫 연출을 맡으며 기대를 모았다. 영화는 2020년 출간된 시집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에 시를 쓴 네팔 이주 노동자들의 시선을 빌려 한국 사회의 민낯을 전한다. 새로운 방식으로 대상에 접근하며, 시어를 통해 메시지를 힘있게 담아낸 연출력이 돋보였다. 


극장 너머, 다양한 방식으로 마주한 영화 

올해는 극장 밖에서 색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마주하는 시도들도 있었다. 뜻밖의미술관에서는 상영작 <기억 샤워 바다>와 연계전시를 진행하며 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경험을 가능하게 했다. 제주 4·3 이후 재일교포 1세대의 삶을 산 故 김동일. 영화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그의 삶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다. 전시는 김동일이 남긴 2천여 점의 뜨개와 옷들을 모아 선보였다. 영화 너머, 그녀의 기억과 정체성, 역사를 가까이에서 감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책방 물결서사에서도 상영작 <집에 살던 새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와 연계한 작은 전시를 선보였다. 선미촌 거점 공간을 중심으로 한 전시와 워크숍, 투어 등 작지만 알찬 프로그램들은 의미 있는 시도로 다가왔다. 


올해 영화제는 비평을 실천하기 위한 새로운 플랫폼을 열기도 했다. ‘전주리뷰’를 통해 외부 홍보 매체에 머물지 않고 공공영역에서 영화 담론을 풍부히 한다는 취지다. ‘전주리뷰’는 2021년부터 발행해온 ‘J 매거진’의 후신으로, 영화제가 생산한 비평의 결과물들을 웹사이트와 SNS를 중심으로 담아낸다. 개막 시기에 맞춰 공식 사이트와 SNS 채널이 개설되며 상영작 리뷰와 인터뷰 등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일부 기사들은 호외 형태의 종이매체로 제작해 오프라인에서도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전주리뷰’는 영화제 기간 외에도 연중 콘텐츠를 생산해내며 영화인, 관객, 독자들과 교류하는 역할을 할 계획이다. 



전주씨네투어X산책



축제는 끝나도 영화는 계속된다    

축제는 막을 내렸지만 ‘전주씨네투어X산책’을 통해 전주 곳곳에서 영화제의 열기를 느낄 수 있다. 관광거점도시 전주시와 협업해 올해로 3년 차를 맞은 ‘전주씨네투어X산책’은 아름다운 전주의 명소에서 영화를 즐기는 야외상영 프로그램이다. 축제 기간 전 회차가 매진되며 인기를 끈만큼 폐막 이후에도 9월까지 관객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6월부터 7월에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여름의 풍남문에서 한국독립영화들이 관객과 만난다. 별도의 예매 없이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스물여섯 해를 지난 전주국제영화제는 많은 관객이 찾는 만큼 상영관과 현장예매 확대 등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매년 반복되는 이러한 문제는 독립영화의 집의 개관을 계기로 좌석을 확보하며 해소해나간다는 입장이다. 영화제 속 또 다른 행사인 다양한 공연과 이벤트는 올해도 풍성했지만 영화의 거리를 중심으로 밀도 있는 배치가 아쉬웠다. 한옥마을이나 남부시장 등 구도심권 공간의 연계가 좀 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우리는 올해도 영화제를 통해 지금, 전주가 아니면 보기 어려운 낯설고 새로운 영화들을 만났다. 세계 곳곳의 작은 영화들을 통해 주류 너머, 저마다 빛나는 이야기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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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인ㆍ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