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빈집의 연인들>은 시골 노인 은자와 빈집털이범 팔복의 만남으로 시작되는 노년 청춘물(?)이다. 작은 시골마을에 사는 은자의 집에 어느 밤 빈집털이범이 찾아온다. 그는 며칠 전 마을에 찾아와 자신에게 담배를 선물했던 노신사 팔복이다. 그를 만나며 잊고 있던 삶의 생기를 느낀 은자는 팔복을 따라나선다. 이들이 훔치는 건 비싼 물건이 아닌 누군가의 일상이 담긴 액자, 얼마 안 되는 비상금, 잘 쪄진 옥수수 정도다. 목적지 없는 여정 속에서 두 사람은 미묘한 감정을 키워가며 사회로부터 소외되었던 자신을 찾아간다. 전주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태휘 감독은 장편 데뷔작 <빈집의 연인들>로 올해 J비전상을 수상했다. 단편영화 <살아나>도 함께 선보이며 두 편의 영화로 관객들을 만났다.
─첫 장편을 선보인 올해, 더욱 남다른 기분으로 영화제를 즐겼을 것 같습니다.
두 작품을 상영하다보니 일정이 바빠서 올해는 다른 영화를 한 편도 보지 못했어요. 출연배우들이 연배가 높은 선생님들이다 보니 전주 맛집에 모시고 다니며 매니저 역할도 함께했죠. <빈집의 연인들> 첫 상영 때는 저도 앉아서 영화를 같이 봤는데요. 옆자리 관객분이 제가 생각하지 못한 포인트에서 계속 웃으시는 거예요. 이런 반응들을 느낄 기회가 많지 않은데 좋았죠. GV 때도 재밌게 봤다고 말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노년의 청춘과 일탈,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충북 시골에서 태어나 어릴 땐 할머니랑 같이 살았어요. 워낙 저를 예뻐해주시니까 저한테 할머니는 누구보다 자상한 사람이었죠. 근데 학교를 일찍 마치고 돌아온 어느 날 할머니가 혼자 담배를 태우고 계신 거예요. 마을 아주머니들과 소주도 마시고 욕도 하시는데 저한테는 그게 좀 충격이었어요. ‘우리 할머니한테 저런 면이 있었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첫 장편을 쓸 때는 우리 할머니 이야기를 한번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주인공 은자가 저희 할머니와 많이 닮아있어요.
─전주 사람들에게는 익숙하고 반가운 배경들이 많이 나오더군요.
대학을 다니며 스무 살부터는 계속 전주에 살았어요. 영화 일을 시작하면서 여러 현장을 다니다보니 전주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죠. 그런데 원래 알던 장소도 카메라를 대보면 미적인 부분들이 살아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 장소들이 화면 안에서는 이만큼 예쁠 수 있구나 느꼈어요. <빈집의 연인들>은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의 여행 이야기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부분에서는 영상미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코스모스 밭도 그렇고, 바닷가도 최대한 멋진 시간을 찾아 영상미를 살리려 노력했던 것 같아요.
─관객들이 어떤 마음을 안고 돌아가길 바라나요.
관객이 거의 다 젊은 분들이어서 과연 노년의 로맨스에 공감할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공감해주시는 분이 많더라고요. 이 이야기는 한 노인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청춘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일탈을 꿈꾸는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도 있는 거죠. 그 일탈을 통해 아름다운 추억을 얻고, 삶이 아무리 각박하고 힘들어도 그 추억들로 또 살아가는.. 그런 평범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빈집의 연인들>
─역사를 전공했는데, 어떻게 영화의 길에 들어서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원래는 역사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전북대 사학과에 들어갔어요. 근데 전공이 저와 잘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방황하던 시기 우연히 영화 수업을 들었어요. 대외활동의 개념으로 전북독립영화협회의 영화 제작 워크숍에도 참여했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 후로 영화 현장에 계속 불러주시더라고요. 그렇게 연출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내 영화도 찍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졌어요. 사비를 들여서 2019년에 첫 단편영화를 찍게 되었고 그때부터 1년에 한 편씩 영화를 찍고 있어요.
─지역에서 영화감독으로 사는 현실은 어떤가요.
오히려 서울이나 다른 지역보다 더 좋다고 느껴요. 전주는 영화제라는 특수성도 있고 제작 지원 시스템이 잘 되어있는 편이죠. 물론 이런 것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하겠지만요. 저 말고도 전주에서 영화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거든요.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서 같이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요. 전문적인 교육이나 기술 인프라, 장비 같은 부분은 열악하지만 저는 여전히 이곳에서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일단은 계속 머물고 싶은 생각입니다.
─앞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는?
전에는 남들이 다 공감하는 이야기를 써보자는 마음이 컸다면 지금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 남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릴지 몰라도 그런 직관적인 이야기들을 해보고 싶어요. 독립영화는 좀 더 실험적이고 새로운 이야기를 쓸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거든요. 몇 년 전 진안에 갔다가 그 지역의 매력에 빠져서 지금은 진안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한 작품을 쓰고 있어요. 저는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고, 마흔이 되기 전까지는 그 이야기들을 다 끝내보자는 저만의 목표가 있어요. 그래서 다른 건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 같아요. 오직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고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