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을 보고  2025.9월호

심청이 우리에게 남긴 것

홍현종 편집위원·JTV PD




전주세계소리축제가 2025년 개막작으로 공개한 작품은 '판소리 시어터 심청'이다. 국립극장과 전주세계소리축제가 공동으로 제작하였으며, 유럽에서 활동 중인 요나 김(독일 만하임 국립오페라극장 상임연출가)의 연출로 국립창극단이 참여하였다. ‘효녀 심청은 잊어라’, ‘이번에는 새로운 창극이다’는 취지로, 자유 의지를 지닌 색다른 심청을 만들어보았다. 현대적 무대공간을 배경으로 출연진은 한복 대신 양장을 입고 출연한다. 결론적으로 공연 자체는 신선한 연출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강렬하였으며 주제에 대한 접근법도 창의적이다. 창극의 미래와 발전을 위해서,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폭넓은 관객층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이 전주세계소리축제의 개막작이어야 하는가는 의문이다.


심청가의 백미는 ‘만좌 맹인이 눈 뜨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눈뜨는 심봉사도 효녀로 살아가는 심청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한 여성으로서 억압받던 심청이 주체적 의지를 가지고 사회와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다. 어린 심청을 내던지는 심봉사와 그런 못난 아비의 목을 조르는 심청의 모습. 독특한 관점에서 고전을 해석해 보고자 하는 연출의 의도는 파격적이다. 그렇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매우 불편하다. 흥겨운 축제의 개막작 치고는 너무 어둡다, 아니 우울하다. 더욱이 전통 판소리에 익숙한 창극 애호가에게는 곤혹스러운 시간이 되었을 수도 있다. 새로운 스토리로 무언가 색다른 교훈을 주고자 한다면, 그 근본에는 기존 심청이 갖고 있는 한계를 찾아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것은 고전(古典)이 갖는 작품의 가치와 시대적 상황을 무시하는 판단일 수도 있다. 오히려 이 정도로 파격적인 스토리를 원했다면, 과감하게 고전 판소리 심청을 버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판소리 5바탕을 넘어 새로운 스토리의 창극을 제작하는 편이 올바른 선택이었을 수 있다. 전주의 관객이 전주세계소리축제를 찾아 전통 창극의 맛을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이 작품 '판소리 시어터 심청'에는 연령에 따라 세 명의 심청이 등장하는데, 사전 정보 없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고 무대 위 누가 심청 배역인지 구분하는 것마저 쉽지가 않다. 현대적 무대 효과를 위해 과감하게 축약된 스토리와 심청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파격적인 반전, 일반 관객 입장에서는 낯선 이야기가 이해하기 쉽지 않았던 것이 당연하다. 반면 심청가의 눈대목인 ‘추월만정’ 등 전통 판소리의 어려운 한자어 사설을 작품 내내 올곧게 사용하였는데, 현대적 무대와 판소리 사설이 조화되지 못하는 측면이 있었다. 결국 사전에 공부를 하고 내용을 이해하고 있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게 관객의 몫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반면 유럽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제작진의 손길이 닿은 무대와 조명은 ‘세련된 오페라 무대’를 지향한다는 제작진의 의도대로 창극 무대에서는 보기 힘든 세련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유럽의 오페라 제작 스타일을 차용하였다고 하니, 충분히 배워볼 내용이다. 국립창극단 배우들의 정확한 발음과 자연스러운 연기, 내공이 묻어나는 소리 실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풍성하지만 맑은 음향, 국악도 탁월한 음악극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그러나 10억이 넘는 예산에 157명의 출연진을 동원하여, 유럽의 연출진과 스태프를 모셔다 2년 반의 기간을 공들인 이 작품은 여전히 전주의 것이 아닌 그들의 것이다. 변변한 배우 한 명, 책임을 갖는 스태프 한 명, 전주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오직 공동제작이라는 명분과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이라는 타이틀만이 남게 되었다. 그래서 이 작품이 전주세계소리축제에 그리고 전북에 남긴 것은 무엇일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전주세계소리축제는 개인이 아닌 전북특별자치도의 예산으로 만들어지는 축제이며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는 축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전주세계소리축제를 통해 새로운 실험을 체험해야만 하는가? 품격 있는 전주세계소리축제만의 브랜드 공연을 기대하는 것이 전북도민의 지나친 욕심은 아니지 않은가? 그것도 무려 25년을 기다려왔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