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4.29-5.8    2026.5월호

‘낯선’ 영화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기 


홍콩귀환_애살



전주를 여행하는 방법은 많다. 그중 5월의 전주에서만 누릴 수 있는 여행이 있다. 영화로 떠나는 여행이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가 4월 29일부터 5월 8일까지 열흘간 찾아온다. ‘우리는 늘 선을 넘지’라는 슬로건과 함께 올해도 실험적인 영화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54개국 237편의 상영작, 78편의 영화가 이번 영화제를 통해 세상에 처음 공개된다. 영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올해의 개막작은 〈나의 사적인 예술가〉다. 폐막작은 〈남태령〉이 선정됐다. 예술가의 내면과 시대적 서사를 담은 작품들이 시작과 끝을 장식한다. 스물일곱 번째의 전주국제영화제, 어떤 낯선 영화들이 우리의 여행에 함께할까.





문제는 자본이 아닌 창의성이다

‘가능한 영화’ 섹션 신설 

올해 영화제에는 새로운 섹션 ‘가능한 영화’가 신설되었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추구해야할 가치를 강조하고자 지난해 특별전으로 발표한 '가능한 영화를 향하여’를 고정 섹션으로 만들었다. ‘가능한 영화’는 예술적 상상력으로 제작의 다양성을 추구한 영화에 주목하는 섹션이다. 적은 예산과 한정된 조건에서도 '영화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실험적인 작품들을 소개한다. 니콜라스 페레다의 상영작 〈나머진 다 소음일 뿐〉은 돈보다 재치 있는 창의력으로 충분히 극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총알이 박힌 앙상한 나무들〉은 74세의 감독 쓰카사 신이치로의 데뷔작이다. 데뷔작이라는 표현이 산업에서 젊은 세대만을 지칭한다는 선입견에 일침을 가하는 작품이다. 이외에도 뤼안란시의 〈카나리아 제도의 식물〉, 파스칼 보데의 〈많다, 말이〉, 아이제이아 머디나의 〈갱스터리즘〉 등이 상영된다. 



다시 아방가르드의 정신으로

뉴욕 언더그라운드·홍콩 특별전

한국영화계는 지금 ‘혁신’의 정신이 필요하다. 이에 전주국제영화제는 여러 섹션에 걸쳐 20세기 새로운 경향을 이끌었던 아방가르드 영화를 대표하는 작업을 소개한다. 첫째는 ‘뉴욕 언더그라운드 특별전’이다. 이 섹션은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 잭 스미스, 캐롤리 슈니먼 등 뉴욕 언더그라운드 영화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세 아티스트의 대표작들을 큐레이션한 하나의 '장'이다. 당대의 작품들이 품고 있는 전복과 위반, 부조리를 향한 분노와 조소가 현시대의 관객들과 어떻게 승화할 것인지 기대된다. 또 하나 주목되는 섹션은 ‘홍콩귀환: 시네마+아방가르드’ 특별전이다. 무협과 액션코미디로 대표되는 홍콩 주류 영화가 아닌 독립예술영화를 소개한다. 왕가위의 멘토이자 협력자로 알려진 탐가밍이 연출한 〈애살〉, 필리핀 퀴어영화의 선구자 닉 데오캄포의 〈혁명은 노래 후렴처럼 돌아온다〉 등 소재와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때로는 제작 방식의 측면에서, 영화가 창작자의 정신과 만나 특이성을 만드는 영화를 공개한다.



영화제를 통한 우연한 만남

변영주부터 안성기까지  

6회차를 맞은 'J 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머‘는 변영주 감독과 함께한다. 변 감독은 〈밀애〉, 〈발레교습소〉, 〈화차〉 등의 개성 짙은 영화를 선보이며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여성감독으로 활동해 왔다. 그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나의 시작점이거나 혹은 흔들리거나 길을 잃었을 때 새로운 빛이 되었던 영화들”을 소개한다. 그가 선정한 작품 3편과 연출작 2편을 만날 수 있다. 매해 배우 매니지먼트를 선정해 영화계를 조명하는 ‘전주X마중’은 고스트스튜디오와 함께한다. 개막식 진행자로 나선 고원희를 비롯해 김성오, 주원, 한선화, 류경수 등 소속 배우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관객과 만난다. 의미 있는 만남도 기다리고 있다. 올해 초 세상을 떠난 배우 안성기의 영화 세계를 돌아보는 섹션 ‘조금 낯선 안성기를 만나다’이다. 그의 출연작 7편을 상영하며 한국영화의 전환점을 함께한 안성기의 자취를 만난다. 


 

극장 바깥에도 즐거움이 있다

부대행사·이벤트·전시

올해도 전주가 지닌 고유한 공간성을 바탕으로 한 관객 참여형 콘텐츠가 풍성하게 진행된다. 대표 부대행사인 ‘골목상영’은 매일 오후 8시마다 전주의 골목에서 무료로 영화를 상영한다. 올해는 특히 전라감영 내 설치된 텐트에 앉아 영화를 즐기는 도심 속 캠핑 상영을 처음으로 시도해 색다른 감성의 시간을 전한다. 다양한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이벤트로는 ‘슈퍼 마리오 갤럭시 in 전주’를 준비했다. 개봉 시기에 맞춰 영화 〈슈퍼 마리오 갤럭시〉의 세계관을 담은 팝업 스토어와 함께 오거리문화광장에 초대형 포토존이 설치된다. ‘100 Films 100 Posters’도 기대를 모은다. 100편의 상영작을 100명의 디자이너가 재해석해 100개의 포스터로 선보이며, 영화와 디자인, 미술을 아우르는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극장 문화’를 주제로 전주 문화공판장 작당과 영화의거리, 명동 신세계면세점 미디어 월에서 동시에 전시를 진행한다.







개막작

나의 사적인 예술가 ㅣ 감독 켄트 존스


〈나의 사적인 예술가〉는 비평가 출신의 영화감독 켄트 존스의 두 번째 극영화다. 한때 시인이었으나 지금은 뉴욕의 우체국에서 일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70대 남성 에드. 어느 날 그는 오래전 자신이 쓴 시집에 매혹된 젊은 예술가 무리를 만난다. 스타를 꿈꾸는 배우 글로리아를 알게 되며 그는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들로 인해 에드는 인생에서 내렸던 선택을 의심하고, 무엇이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인지 자문한다. 어쩌면 다시 시를 쓰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술계의 삶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참함, 계급 차이는 그가 한때 벗어나있던 세상의 실체를 드러낸다.


주인공 에드 역의 월럼 더포는 블록버스터부터 독립영화까지 폭넓게 활동해온 명배우다. 글로리아 역에는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를 통해 이름을 알린 한국계 미국 배우 그레타 리가 출연해 기대를 모은다.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초로 상영된바 있다. 영화와 비평, 영화제 분야의 역사를 대표하는 켄트 존스 감독은 과거를 버리지 못하는 현대 뉴욕을 그려내면서도 예술가의 삶 뒤에 숨겨진 허영과 두려움을 드러내 그 신비로움을 벗겨 낸다.





폐막작

남태령 ㅣ 감독 김현지 


12.3 내란 사태 이후, 이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들이 여전히 세상에 나오고 있다. 폐막작인 〈남태령〉도 그중 하나다. 영화는 비상계엄 이후 2024년 12월 21일, 가장 긴 밤을 건너던 날의 이야기를 다룬다. ‘윤석열 체포구속’, ‘사회대개혁’ 등을 요구하며 트랙터로 상경한 농민들과 여성들은 서울 남쪽 관문인 남태령에서 경찰에 가로막혔다. 2030 여성들을 중심으로 모여든 시위대는 재기발랄하고 활기차며 꺾이지 않는 힘을 합친 끝에 마침내 트랙터를 끌고 남태령을 넘어 용산까지 행진할 수 있었다. 


〈남태령〉은 민중의 저항이 남긴 정치적 영향을 그리기보다 당시 참여했던 이들의 후일담, 소셜미디어에 담긴 기록, 연단에서 외친 생생한 발언 등에 초점을 맞춘다. 당시 남태령에 나섰던 젊은 여성들의 투쟁에서 나아가 이후에도 노동과 인권을 빼앗긴 이들의 싸움에 동참하고 연대하는 그들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어른 김장하〉를 연출한 김현지 감독의 신작 다큐멘터리인 이 작품은 감독의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디지털 아카이브 영화로, 이번 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후 내달 정식 개봉해 관객과 만난다.





문화저널이 주목한 이 영화



#청춘은 낭만이 아니다

청춘의 불안은 응당 견뎌야 할 낭만적인 일로 그려지고는 한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들이 마주한 현실은 그 문장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청춘에 씌워진 낭만을 걷어내고 지금의 감각을 담아낸 작품들을 소개한다. 불안과 흔들림 속에서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밀려나고, 때로는 유쾌하게 웃으면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삶을 헤쳐나가는 청춘의 얼굴을 따라간다. 

입춘ㅣ한국경쟁



입춘 | 한국경쟁

최수빈 | 대한민국 | 2025 | 64분

유학 실패 후 10년 만에 귀국한 민수는 고향집을 처분하러 돌아온다. 집에는 아버지와 동거 중인 낯선 중년 여성 홍미가 있었다. 드문드문한 대사와 느린 전개 속에서 민수의 감정은 서서히, 보일 듯 말 듯 변해간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강릉의 풍경이 그 변화를 조용히 대신 말해준다. 


후광 | 코리안시네마

노영완 | 대한민국 | 2025 | 107분

27살 택배기사 민준은 매일 사람 대신 박스와 시간을 보내며 묵묵히 살아간다. 성실하게 버텨보려 하지만 삶은 뜻대로 되지 않고, 누군가의 한마디에 온 희망을 걸고 싶을 만큼 절박해진다.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담아낸 한 청년의 하루는 사회의 톱니바퀴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블론드 | 시네마천국

사카시타 유이치로 | 일본 | 2025 | 103분

한 중학교의 아이들 전원이 금발 머리를 하고 등교한다. 두발 단속을 비롯한 전체주의적인 교칙에 맞서기 위한 집단 시위였다. SNS로 빠르게 퍼지며 총리까지 나서는 사태가 되고, 사건 수습을 맡은 담임 이치가와는 자신보다 오히려 성숙한 학생들 앞에서 당황하기 시작한다. 




#컬러 시대의 흑백영화

화려한 색감이 눈을 즐겁게 하는 이 시대, 굳이 흑백이기를 택한 영화들이 있다. 빛과 그림자만으로 세상을 담아낸 이 작품들은 색이 없기에 오히려 더 선명하게 감정을 파고든다. 색의 여백이 어떻게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내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익숙한 영화 감상의 방식 역시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

미치유키: 시간의 목소리ㅣ국제경쟁



미치유키: 시간의 목소리 | 국제경쟁

나카오 히로미치 | 일본 | 2025 | 79분 

영상 작업을 하는 고마이는 오래된 집으로 이사해 그 집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혼자 집을 고쳐가는 그의 여정을 따라, 영화는 지역의 오래된 전통과 노인들의 옛이야기를 차곡차곡 담아낸다.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직접 쌓아가는 삶의 태도에 조용히 응원을 건네는 작품이다.


마더 흑백판 | 특별상영

봉준호 | 대한민국 | 2009 | 128분 

아들의 살인 누명을 벗기려는 어머니의 필사적인 사투를 그린 <마더>의 흑백판이다. 홍경표 촬영감독이 <설국열차>(2013)를 촬영하면서 <마더>의 흑백판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봉준호 감독 또한 "스산한 흑백의 느낌이 영화에 더 잘 어울린다"며 적극 추진했다고 한다. 


서서히 사라지는 밤  국제경쟁

에세키엘 살리나스 | 아르헨티나 | 2025 | 106분 

영사기사 펠루는 예산 삭감으로 야간 경비원이 된 뒤 몰래 영화관에서 살게 되고, 소외된 이들이 모여 옛 영화를 보는 밤의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영화관 폐쇄 위기가 닥치며 그 작은 피난처를 지키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영화관이 품어 온 '대안적 보금자리'의 의미를 되묻는 작품이다.




#도시와 밀려나는 사람들

도시는 끊임없이 변한다. 낡은 것을 허물고 새것을 세우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터전을 잃고, 익숙한 풍경과 함께 삶의 자리에서 밀려난다. 재개발과 도시화는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쫓겨나는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남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농촌이 도시로 바뀌는 사이에서도, 재개발의 경계선 위에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고, 자리를 지키며 삶을 이어간다.

발보나 이야기ㅣ마스터즈



관리처분계획—미아리 텍사스 편 | 코리안시네마

장윤미 | 대한민국 | 2025 | 120분 

미아리 텍사스의 재개발을 내부의 시선으로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복잡한 골목의 풍경이 지나가며 이곳에서 일하는 한 종사자가 ‘식당 이모’에게 보내는 편지가 내레이션으로 흐른다. 준비 없는 이주를 강요받는 성노동자들과 손님맞이를 맡아온 ‘현관이모’들의 현실은 팽팽한 긴장 속에서 드러난다. 특히 현관이모와의 긴 인터뷰는 끝까지 이곳에서 삶을 끈을 붙잡고 있는 이들의 세세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발보나 이야기 | 마스터즈

호세 루이스 게린 | 스페인, 프랑스 | 2025 | 124분 

발보나는 지역민과 로마인, 소수의 이주민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이다. 그러나 철로와 고속도로가 들어서면서 이들의 삶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문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편리함이 스며드는 자리에서 사라져가는 풍경과 기억을 담아낸다. 


사랑, 우린 멀리 이곳에 | 코리안시네마

김경원 | 대한민국 | 2025 | 68분 

쪽방촌에 자리한 요셉의원은 수십 년간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들의 곁을 지켜왔다. 이 다큐멘터리는 재개발로 인해 병원이 이전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의료진과 환자들의 작별, 새로운 자리에서 다시 시작되는 일상까지. 선행을 내세우지 않는 담담한 시선으로 전한다.




#우리 사이도 우정일까?

우정은 반드시 같은 나이, 같은 자리에서만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세대를 가로지르기도 하고, 인간과 동물처럼 언어를 넘어 형성되기도 한다. 관계는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삶의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다시 구성된다. 그처럼 예상된 범주를 벗어나 새롭게 만들어지는 다양한 우정의 형태를 보여주는 영화들을 소개한다. 어쩌면 우리가 미처 우정이라 부르지 못했던 것들의 이야기다.

시민오랑ㅣ한국경쟁



마우스 | 시네마천국

켈리 오설리반, 알렉스 톰프슨 | 미국 | 2026 | 120분 

고등학생 미니는 단짝친구 캘리를 잃게 된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방황하던 미니는 캘리의 어머니와 가까워지며, 복잡한 우정을 쌓아간다. 이 영화는 이들이 서로의 상실을 공유하며 관계를 재구성해 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가족의 죽음’이라는 익숙한 주제를 담담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낸다.


시민오랑 | 한국경쟁

하시내 | 대한민국, 아르헨티나 | 2026 | 84분

부에노스아이레스 동물원의 오랑우탄 산드라는 세계 최초로 법정에서 '비인간 인격체'로 인정받는다. 영화는 산드라가 미국의 생추어리에 정착하기까지 8년의 여정을 따라가며 그 곁을 지킨 운동가, 변호인,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함께 담는다. 산드라를 둘러싼 인간과 오랑우탄 사이, 그리고 산드라를 지키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난 연대와 우정의 기록이다.


오늘의 카레 | 특별상영: 지역 독립영화 쇼케이스

조미혜 | 대한민국 | 2025 | 119분 

부모의 재혼으로 자매가 된 이슬과 이진은 성격도 사는 방식도 정반대다. 그러다 서로를 위해 정성껏 만든 음식 한 끼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영화의 배경은 실제 전주한옥마을에 있는 카레집인 '하와이안레시피'다. 영화를 보고 이곳에 들러 카레를 먹어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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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인ㆍ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