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가 남긴 것    2026.6월호

영화, 감상을 넘어 경험이 된 시간



2024년 겨울, 남태령을 뜨거운 광장으로 만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폐막작 〈남태령〉을 끝으로 전주국제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4월 29일부터 5월 8일까지 열린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공동집행위원장 민성욱·정준호). ‘우리는 늘 선을 넘지’라는 슬로건 아래, 실험적이고 매력적인 영화들이 열흘간의 축제를 채웠다. 올해는 54개국 236편의 작품이 상영됐다. 269회의 프로그램, 754명의 국내외 게스트가 관객과 만나며 ‘영화’로 연결되고 나아갔다.




영화제를 빛낸 236개의 이야기

올해는 6만 9천여 명의 관객이 극장을 채웠다. 7만 관객을 모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610회 상영 가운데 매진은 443회를 기록했다. 지난해 관객의 호응을 바탕으로 올해 고정 섹션으로 신설된 ‘가능한 영화’는 예매율 90%를 넘겼다. 대안적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결과다. 한국경쟁 대상은 이선연 감독의 〈흘려보낸 여름〉이 차지했다. 무더운 여름 봉고차에서 생활하며 살아가는 한 가족의 위태로운 일상을 그린 영화다. 김면우 감독의 〈회생〉은 심사위원특별상과 함께 다큐멘터리상을 받으며 2관왕에 올랐다. 고승현 감독의 〈같은 계절을 보낸다는 건〉 역시 CGV상과 배우상을 함께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이외에도 한국단편경쟁 대상에 태지원 감독의 〈터치, 툭〉, 국제경쟁 대상은 아르헨티나 감독 에세키엘 살리나스와 라미로 손시니의 〈서서히 사라지는 밤〉이 수상했다. 이 작품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선정돼 더욱 주목된다. 영화는 쇠락한 영화관에서 몰래 살아가는 한 영사 기사의 이야기를 통해 공동체의 의미, 나아가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폐막작 <남태령>



축제 안과 밖, 우리가 주목한 목소리

올해 상영작의 특징 중 하나는 12.3 내란을 소재로 한 작품들의 활약이다. 폐막작인 김현지 감독의 〈남태령〉을 비롯해, 후지필름코리아상을 수상한 문정현 감독의 〈비대면의 시간〉은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를 다루며 내란에 맞선 시민들을 등장시켰다. 단편경쟁에 상영된 〈피켓 디자인하실 분?〉, 코리아시네마 단편의 〈디어 팬〉 등은 12.3 내란 이후 광장에 나선 이들을 통해 참여와 연대, 더 나아간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냈다. J비전상 수상작인 김종관 감독의 다큐 〈졸업앨범: 선생님을 기다렸다〉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주 신흥고 학생들의 시위를 주제로 하지만, 지난 내란과도 연결 지으며 시대를 넘어 반복된 역사적 메시지를 전했다. 


영화제 기간 논란의 중심에 선 작품도 있었다. 이스라엘 국적의 감독 나다브 라피드의 〈예스!〉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을 우화적으로 다룬 영화다. 가자지구 침공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지만 시민사회단체는 개막 전부터 상영 취소를 요구했다. 이스라엘 제작사와 정부 지원을 받은 영화로, 가해자의 시선에서 비극을 영화 소재로 삼았다는 이유다. 그러나 영화제 측은 상영 철회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효정 프로그래머는 “영화제는 창작자와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다”며, “창작자의 국적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보다는 이스라엘의 정치적 부패와 폭력을 비판하는 영화의 궁극적 메시지를 봐달라”고 입장을 전했다. 



심사위원특별상, 다큐멘터리상 수상작 <회생>



성장, 그리고 과제가 교차한 시간

연휴 기간 열린 올해의 영화제는 개막일부터 첫 5일간 좌석 점유율이 지난해보다 3% 늘며 효과를 봤다. 작년보다 넓은 공간으로 자리를 옮긴 굿즈샵은 아침부터 대기 행렬이 이어지며 역대 최다 매출을 기록했다. 골목상영의 성장도 두드러졌다. 공식 집계로 4,175명의 관객이 전주 곳곳의 야외 공간에서 영화를 관람했다. 특히 풍남문에서 진행된 골목상영에는 올해 처음 무선 헤드폰을 도입해 야외 상영 환경에 대한 개선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물론 아쉬운 현장도 있었다. 영화제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개·폐막식의 경우 준비가 미흡한 모습을 보여 아쉬움을 남겼다. 영화제의 정체성을 고려한 완성도 높은 기획이 요구되는 이유다. 


매년 반복되는 예매 관련 문제도 고민이 필요하다. 상영 직전 좌석 취소 등이 빈번하게 일어나 정작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은 밀려나고 극장에 빈자리가 생기는 상황이 종종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예매 방식의 개선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시대임에도, 전주국제영화제에는 올해도 많은 관객이 다녀갔다. 상영 시간에 맞춰 기꺼이 줄을 서고, 엔딩 크레딧이 끝나면 다함께 박수를 치고, 영화인들을 가까이에서 만나는 경험. 영화제는 영화를 감상하는 일 넘어, 경험하는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