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 수 있는 모든 것의 이야기   2024.5월호

유럽 정치를 뒤흔든 신생 정당 ‘맥주당의 반격’




투표는 탄환보다 강하다..맥주보다는 글쎄?

최애 술안주는 치킨도, 피자도 아닌 정치 이야기가 분명하다. “누가 어쨌다더라… 저게 저랬다더라…” 여와 야로 나뉘어, 나와 너로 나뉘어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는 와중에도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우리는 모두 맥주를 마신다는 것이다. 이렇게 싸울 거라면 그냥 ‘맥주’를 지지하는 편이 낫겠는 걸? 한국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유럽 ‘오스트리아’의 이야기다. 오스트리아에는 마시는 맥주가 아닌 정당인 ‘맥주’를 지지하는 국민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오늘 마시즘은 이 ‘맥주당’의 돌풍에 대한 이야기다. 


의사가 음악을 만들다 맥주당을 차린 이유

오스트리아 의사였던 ‘도미니크 블라즈니’가 유럽에서 가장 독특한 정당인 ‘맥주당’의 당대표로, 그리고 최연소 대선후보로 출마할 줄 누가 알았을까? 그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바로 음악이다. 장르로 따지면 펑크(Funk). 2014년 그는 의사에서 가수로 직업을 바꾼다. ‘마르코 포고’라는 예명을 쓰고, ‘터보비어(Turbobier)’라는 펑크록 밴드를 만들었다. 공연도 하고, 맥주도 만들어서 팔고 좋잖아.  

그리고 다음 해에 터보 비어의 첫 번째 히트곡이 나온다. 이름은 ‘비어 파티(die bierpartei)’, 우리말로 하면 ‘맥주당’이다. ‘맥주당에 투표를 하면 맥주쟁이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담긴 곡이었다. 그렇다고 실제로 정치에 출마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풍자의 요소가 강한 곡이었다. 문제는 풍자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꽤 많았다는 것이다. 비어 파티라는 곡의 인기는 많아졌고, 사람들은 터보비어의 프런트맨인 ‘도미니크 블라즈니’를 응원했다. 이… 이렇게 된 이상 한 번 출마해 봐?


맥주에 맥주에 의한 맥주를 위한 정치

2015년에 만들어진 맥주당이 실제 선거에 나간 것은 4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정치권은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오스트리아 부총리가 러시아 재벌에 후원을 요구하는 영상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놈 하나 믿을 것 없는 시대에 도미니크 블라즈니와 맥주당은 2019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다. 국민들 입장에서 그들의 공약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일단 당선이 된다면 국민들에게 일정량의 맥주를 보장할 것이며, 비엔나에 있는 낡은 분수대를 맥주가 나오는 분수대로 바꾸겠다고 공언하였다. 마지막으로 맥주지만… 레몬을 탄 라들러 같은 혼합맥주는 세금을 물리겠다는 당의 선명성도 보여주었다. 

결과는 참패였지만, 주목도는 엄청났다. 그들을 따르는 지지자들이 늘어났고, 다음 해의 지방선거에는 도미니크 블라즈니뿐만 아니라 맥주당의 이름을 건 여러 후보들이 출마했다. 밴드인 터보비어도 열심히 활동을 했으니 이 정도면 정말 잘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2022년 오스트리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 만다.


대통령 선거 최대의 이변을 일으키다

도미니크 블라즈니는 그가 처음 공약을 걸었던 ‘비엔나의 낡은 분수대’ 앞에 정체불명의 시설을 설치한다. 바로 자신이 공언했던 맥주분수(라기에는 아리수 음수대에 가깝지만)였다. 그를 따르는 지지자들에게 분수대에서 만든 맥주를 선사했다. 공약의 범위도 넓어졌다. 맥주뿐만이 아닌 환경, 사회, 예술가 등을 위한 정책을 추가했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대통령 선거는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규모의 돈과 시간이 들었다. 때문에 맥주당은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전국이 아닌 자신들이 활동하는 ‘비엔나’에서만 유세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세차가 없네? 그래서 자신들이 잘하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유세를 했다. 맥주당이 가진 독특함은 언론의 소재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가장 큰 지원군이 나타났다. 바로 오스트리아 국민이 느끼는 ‘정치 피로감’이었다. 국민들은 이미 기성 정치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그 안에서 어떤 당파에도 휩싸이지 않은 후보가 바로 맥주당의 ‘도미니크 블라즈니’였다. 곧 지지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쿨한 이미지를 가지고 싶은 정치인들과 유력인사들도 맥주당을 지지했다. 사람들은 이제 누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과연 맥주당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그 결과가 나왔다.


오스트리아 역대 최연소 후보, 대통령 선거 3위

맥주당의 도미니크 블라즈니는 전국에서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8.3%의 득표율로 3위를 기록했다(33만 7,000명이 그를 지지했다). 1위로 연임에 성공한 대통령이 혼자 50%가 넘는 득표율을 받았다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성과였다. 심지어 그들의 터전(?)인 비엔나로 한정하면 대선후보 중 두 번째로 많은 표를 얻었다. 오스트리아는 물론 많은 유럽의 정치권이 이 소식에 놀랐다. 단지 기인(?)이 벌인 이색 신드롬이 아니었다. 왜 국민들은 기존의 정치가 아닌 맥주당에 투표를 하였는가를 돌아보게 된 것이다. 오스트리아 맥주당은 여전히 맥주를 만들고, 맥주를 노래하며, 올해 치러질 국회의원 선거를 다시 준비하고 있다. 과연 올해는 맥주당이 삭막한 정치계에 어떤 신선함을 가져올까?


맥주보다 나은 정치를

국민을 대변하고, 함께하는 사회의 약속을 만들어 나간다는 점에서 정치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 우리의 정치는 본질보다는 서로 갈등과 혐오만 남는게 아닌가 싶은 걱정도 있다. 이런 목마름을 해결해 줄 정치인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본다. 아니면 한국에도 맥주당이 나올수도 있을테니까. 맥주에게 밀리는 정치가 되고싶지 않다면 말이다.  




마시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