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저주를 동시에 받는 탄산음료
취향이란 자석 같다. 누군가가 좋아하며 다가갈수록, 다른 누군가는 점점 멀어질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것을 호불호 음료라고 부른다. 솔의눈, 닥터페퍼, 민트초코 같은 거 있잖아. 하지만 그중에 제일인 음료를 고르라면 이 녀석을 고르겠다. 북미지역을 대표하는 탄산음료 ‘루트 비어(Root Beer)’다. 이름과 달리 맥주가 아닌 건전한 탄산음료인 녀석. 하지만 잔에 따르는 순간 코끝을 뜨겁게 만드는 물파스 향기로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화생방 음료를 말이다. 문제가 있다면…
나는 이 음료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이다. 언제나 마시고 싶어서 해외직구, 아니 미국에 가면 루트비어를 물처럼 마시곤 한다. 그런데 루트비어의 성지가 ‘오키나와’라고?
루트비어의 성지를 찾아서
일본 본토에도 없는 ‘루트비어’를 판매하는 매장이 ‘오키나와 섬’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우리는 남들이 다들 가는 오키나와 휴양지 리스트를 하나 지울 수밖에 없었다. 그냥 캔으로 나오는 루트비어 음료가 아니라, 루트비어를 메인으로 판매하는 매장이다. 언제나 루트비어 캔에서 봤던 그 로고. A&W 매장이 오키나와 곳곳에 있는 것이다. A&W는 원래 햄버거와 루트비어를 메인으로 파는 프랜차이즈 업체다. 심지어 후발주자가 아니라 일본에서 제일 먼저 생긴 햄버거 프랜차이즈가 맥도날드가 아닌 오키나와에 생긴 A&W 매장이다.
오키나와 속 미국을 느끼는 매장
A&W 매장을 찾아 핸들을 돌렸다. 1호점인 야기바루점(1963년 오픈)은 현재 공사 중이라고 한다. 2호점인 마키미나토점 역시 1969년에 생긴 역사를 자랑하는 매장이다. 미국 주유소를 연상시키는 감성의 공간에 그림으로 그려진 간판, 어릴 적 헐리우드 영화에서 본 것 같은 매장 내부까지 모든 게 영화 세트 같다. 아마도 A&W가 일찍 오키나와에 들어올 수 있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키나와는 미군의 통치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빌리지를 비롯하여 오키나와 곳곳에는 60년대 미국의 흔적이 남아있다. 먹을 것 역시 마찬가지다. 블루벨 아이스크림, 스팸 그리고 A&W 루트비어다. 떨리는 마음에 A&W 매장에 들어가 햄버거와 루트비어를 시켰다. 오키나와에서는 A&W를 ‘엔다’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하여 엔다버거 세트를 부탁했다. 그동안 음료만 마셔왔는데 이제 세트로 즐길 수가 있구나!
햄버거의 완성은 맥주가 아닌 루트비어
A&W의 루트비어와 햄버거 세트가 왔다. 먹을 것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없는 마시즘도 이 햄버거가 미국식이라는 것을 알 정도로 무게감 있는 맛이 느껴졌다. 문제는 이 햄버거와 루트비어를 함께 마셨을 때의 조화다. 처음 마시는 사람에게는 물파스나 멘소래담처럼 느껴지는 향이 햄버거를 먹고 마시니 기름짐의 기억을 날려주는 것 같았고, 입안에서 느껴지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은 멋진 영화의 엔딩장면처럼 여운을 남겼다. 루트비어라는 음료 자체가 향과 맛이 너무나 강렬해서 일행이 시킨 코카콜라가 밍밍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햄버거는 콜라나 맥주 여러 조합과도 잘 어울리는 음식이지만, 역시 매장에 루트비어를 판다면 이 색다르면서 완벽한 조합을 느껴보는 것을 추천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A&W에서는 루트비어를 주문하면 무한으로 리필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 호불호를 견딜 수 있다면 말이다. 나는 무한으로 즐길 수 있었는데… 내가 그걸 몰랐네.
여행과 음료, 당신의 취향을 찾아
낯선 장소로 여행을 가는 것은 호불호가 있을 수 있는 음료를 마시는 것과 같다. 나를 조금 더 잘 알기 위해 불확실한 것을 향해 한걸음 걸어가는 것이다. 물론 결과가 나쁠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이곳에서 마셔야 할 음료가 많다. 오키나와 음료여행은 마시즘에게 무엇을 남길까?
※추신 : 루트비어에 도전하고 싶은데 걱정이 된다면 ‘루트비어 플로트’를 시키는 것을 추천한다. 루트비어 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띄워주는 음료인데 향의 문턱은 낮추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의 매력을 더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