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영화 읽는 영화     2024.7월호

절대적 미각으로 일깨우는 금욕적 사랑의 열망

프렌치 수프



김경태 영화평론가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유명 요리 연구가인 ‘도댕(브느와 마지멜)’과 요리사 ‘외제니(줄리엣 비노쉬)’는 20년 간 함께 하며 국내외 미식가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훌륭한 고급 요리를 만들어왔다. 영화는 그들이 주방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마치 요리 프로그램처럼 길고 상세하게 보여준다. 정성껏 손질한 고기와 생선, 채소 등의 식재료들을 숯불로 달군 철판 위에서 각종 양념을 넣어 끓이거나 볶고 굽는다. 때마침 도착한 도댕의 미식가 친구들을 위해 전채요리부터 디저트까지 막힘없이 순서대로 제공된다. 음식을 맛본 친구들은 감탄을 하고 상찬을 잊지 않는다. 식재료를 손에 든 순간부터 접시를 비워내는 마지막 순간까지 도댕과 외제니는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음식 접대를 마무리 한다. 


그 긴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식욕을 돋우기보다는 오히려 경건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영화는 그들이 요리를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관객에게 전이시킨다. 따라서 요리는 신성한 의식과 다름없다. 도댕과 외제니는 요리 앞에서 금욕적인 사제가 되어 미각에 집중한다. 요리에 몰두하는 즉시, 최고의 요리를 구현하겠다는 의지 외에는 다른 어떤 욕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요리를 추동하는 것은 식욕이 아니라 오롯이 미각이다. 요리를 하는 동안, 미각을 날카롭게 벼르기 위해 다른 감각은 무뎌져야만 한다. 


금욕적으로 요리에 몰두하며 보낸 낮 시간이 끝나자 억눌렀던 욕망이 그들의 몸을 달뜨게 한다. 도댕은 자신이 제시하는 조리법을 마법처럼 성공시키는 외제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부부보다도 오랜 시간 같이 시간을 보내는 그들의 관계는 최고의 요리를 위해 뭉친 동료 사이 이상으로 발전한다. 외제니는 밤이면 가끔씩 문을 잠그지 않고 도댕이 오기를 기다린다. 혹은 도댕이 먼저 밤에 문을 열어놓고 있기를 부탁한다. 그러나 외제니는 문을 잠그는 날이 훨씬 더 많다. 욕망을 억누르며 그의 요리사로 남고자 애쓰기 위해서다. 그래서 도댕의 청혼도 번번이 거절한다. 그녀는 그의 아내가 되기보다는 요리사로 남고자 한다. 결혼은 디저트부터 시작하는 만찬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달콤함에 취하면 미각을 잃을지도 모른다. 강조컨대, 그들이 공유하는 깊은 친밀함의 중심에 놓인 감각은 미각이다.





그런데 심상치 않게도 외제니가 수시로 기절을 한다. 그녀가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쇠약해져가면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직감한 도댕은 그녀만을 위한 특별한 요리를 통해 재차 청혼을 시도한다. 그녀의 벗은 뒷모습을 꼭 닮은 조린 서양배 요리에 반지를 숨겨서 건넨다. 요리를 향한 열망과 그녀의 육체를 향한 매혹을 일치시키며 마침내 그녀에게서 승낙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결혼식을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외제니는 숨을 거둔다. 상실감에 빠진 도댕은 그녀의 빈자리를 채울 요리사를 찾을 마음이 없다. 결국 평소 외제니가 아꼈던, 남다른 미각을 지닌 소녀 ‘폴린’을 견습생으로 받아들이며 조금씩 힘을 낸다. 그는 폴린에게 소 골수 요리를 맛보게 한다. 그러면서 맛을 알기 위해서는 문화와 좋은 기억력이 필요하기에 지금 이 맛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도댕은 외제니가 한 음식의 맛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그의 미각 속에서 살아 있다.


영화는 결혼식 직후에 도댕과 외제니가 대화를 나누는 회상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도댕은 성 오귀스탱의 “행복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계속 열망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내가 당신을 가진 적이 있나요?”라고 묻는다. 그러자 외제니는 “나는 당신의 요리사인가요, 아내인가요?”라고 반문한다. 그가 “요리사요”라고 대답한다. 원했던 답을 들은 그녀는 “고마워요”라고 감사를 표한다. 도댕은 이미 외제니를 요리사로서 온전히 소유했었다. 그들이 맺은 관계는 어느 부부보다 깊고 친밀한 관계였음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