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영화 읽는 영화    2024.9월호

공동체적 가치를 상기시키는 치어리딩이라는 춤

빅토리



김경태 영화평론가




<빅토리>는 1999년의 거제를 배경으로 한다. 거제상고에 다니는 절친 사이인 ‘필선(이혜리)’과 ‘미나(박세완)’는 힙합 댄스에 인생을 걸었다. 나이트클럽에서 사고를 친 후, 학교에서 댄스 연습실을 빼앗기고 정학까지 받아 고등학교를 4년 다니게 되었지만 춤을 멈출 생각이 없다. 그들은 무탈하게 졸업하는 것보다 당장 춤을 출 수 있는 댄스 연습실이 더 필요하다. 서울에서 전학 온 ‘세현(조아람)’이 치어리딩을 하는 모습을 보고 꾀를 낸 필선은 성적이 부진한 축구부를 응원한다는 명목으로 교장을 설득해 연습실을 되찾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연습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멤버들을 모아서 정식으로 치어리딩부를 만들어야 한다. 오디션을 통해 오합지졸 부원을 모아 마침내 ‘밀레니엄 걸즈’가 탄생한다. 세현의 진두지휘 아래 치어리딩 연습을 하고 서둘러 축구시합에서 실전에 투입되지만, 실수를 연발하며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밀레니엄 걸즈의 치어리딩은 자신감을 키운다는 명목으로 학교의 테두리를 벗어난다. 그들은 시장 상인들과 병원 환자들 앞에서 춤을 추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그 응원은 필선의 아버지가 관리소장으로 일하는 조선소까지 이른다. 그가 관리하는 하청업체 직원들은 주말에도 쉴 수 없을 만큼 과도한 업무에 시달린다. 결국 파업을 하며 사측을 향해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다. 밀레니엄 걸즈는 그들 앞에서 응원의 무대를 펼친다. 밀레니엄 걸즈의 응원은 학교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실과의 접점을 찾아나선다.


밀레니엄 걸즈는 자신감을 얻으면서 치어리딩의 완성도를 높여가고, 그들의 응원에 힘입어 축구부는 승승장구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세현이 활동했던 서울의 치어리딩부와 싸움이 붙으면서 최대 위기를 맞는다. 교무실로 불려온 필선의 아버지는 필선의 퇴학을 막기 위해 피해 학생 관계자에게 무릎을 꿇는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본 필선은 화를 낸다. 필선은 아버지처럼 현실에 굴복하며 살 생각이 없다. 당시, 상고를 다니는 여학생들은 현장 실습을 나가서 고작 커피 심부름을 할 뿐이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적당한 회사에 다니다가 결혼을 해서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는 삶은 그녀의 선택지에 없다. 그녀는 힙합 댄서가 되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로 간다. 필선이 부재한 밀레니엄 걸즈는 추진력을 잃고서 흔들리고 만다.


서울에서 백댄서 준비를 하던 필선은 걸그룹의 멤버가 될 절호의 기회를 잡는다. 그러나 필선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밀레니엄 걸즈의 소식을 듣고 주저 없이 거제로 향한다. 걸그룹의 멤버가 되어 명성을 얻는 것보다 친구들과 호흡을 맞추는 치어리딩이 더 중요하다. 필선은 ‘내’가 아니라 ‘우리’를 선택하며 개인의 자아실현보다는 자신이 선택한 공동체의 꿈을 위해서, 또한 가족이 아니라 소중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거제로 돌아온 것이다. 따라서 그 귀향은 아버지의 보수적인 바람에 부응하는 현실 순응적인 태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반복컨대, 원래 필선의 꿈은 걸그룹이 아니라 힙합 댄서로서 춤을 추는 것이다. 지금은 그 꿈을 향한 도전을 잠시 미룬 채 치어리딩, 즉 친구들과 함께 추는 춤을 선택했다. 치어리딩은 말 그대로 응원을 위한 춤이다. 응원의 대상이 있어야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춤이다. 또한 치어리딩은 힙합 댄스처럼 ‘필’대로 출 수 있는 게 아니라 정해진 안무를 멤버들끼리 합을 맞춰서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걸그룹의 스스로 돋보여야만 하는 탐미적인 칼군무와도 다르다. 치어리더들은 시합의 조력자일뿐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응원을 목적으로 하면서 안무의 호흡을 정확히 맞춰야만 하는 치어리딩은 공동체적 가치를 지향하는 춤이다. 이처럼 <빅토리>는 그 가치가 존중받던 시대로 세기말을 소환하고 있다. 춤이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주목받는 동시대에 공동체를 위한 춤을 상상하는 이 영화를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