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대학교, 그것도 취업과는 거리가 먼 철학과를 졸업한 20대 중반의 ‘용준(홍경)’은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다. 부모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등 떠밀려 도시락 배달 일을 하며 앞날을 고민하고 있다. 배달을 간 수영장에서 청각장애인 수영선수인 동생 ‘가을(김민주)’을 곁에서 열심히 보조하는 ‘여름(노윤서)’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먼저 가을에게 다가가 수화로 대화를 시도하며 여름에 대한 인적사항을 묻는다. 배달을 나온 어느 날, 용준은 고장 난 오토바이 앞에서 쩔쩔매는 여름을 발견하고 수화로 말을 건다. 급히 가야하는 여름에게 자신의 오토바이를 양보하고 보낸 뒤, 여름의 오토바이는 수리를 맡긴다. 그들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이 된다.
용준과 여름은 서로를 청각장애인이라 생각하며 계속 수화로 대화를 나눈다. 여름은 청각장애인 가족들 때문에 수화를 해야 하지만, 그런 환경이 아닌 용준이 수화를 유창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은 의외이다. 사실 용준은 해외 여행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대학 선배의 꼬임에 넘어가 수화를 배웠다. 취업을 위한 스펙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과 더 잘 소통하기 위한 수단으로 수화를 익힌 것이다. 그는 수화 실력에 앞서 관계에 대한 의지 덕분에 여름에게 선뜻 다가갈 수 있었다. 여기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듯이, 비록 용준은 당장 되고 싶은 것은 명확하지 않지만 관계 맺기에 대한 욕망만은 분명하다.
여름은 올림픽 대표 선발전을 목표로 연습하는 가을의 뒷바라지를 하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느라 바쁘다. 용준은 그런 그녀를 위해 도시락을 챙겨주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여름도 다정한 그에게 호감을 느낀다. 청각장애라는 결핍의 외피는 소통의 본질을 훼손하지 못한다. 청각장애인은 소통이 어려운 대상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는 주체일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때 오감은 더 또렷해진다. 오히려 그들은 명확한 음성으로 소통할 수 없기에 눈을 크게 뜨고 서로의 작은 몸짓과 미세한 표정에 더 집중해야 한다. 말은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표정은 그럴 수 없기에 서로의 진심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용준과 여름은 데이트를 하며 서로에 대한 애정을 키워간다. 그런데 용준을 만나기 위해 가을을 집에 혼자 두고 온 날, 아파트에 화재가 나고 뒤늦게 대피한 가을은 연기를 많이 마셔 입원을 한다. 결국 호흡기에 문제가 생겨 재활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다. 이를 지켜본 여름은 죄책감을 느끼며 동생을 보살펴야하는 임무에 집중하기 위해 용준과의 연락을 끊어버린다. 용준을 청각장애인으로 오해하고 있는 여름 입장에서는 두 명의 청각장애인을 돌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용준과 여름에게는 상대의 청각장애가 사랑의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다만, 장애를 가진 이를 일방적으로 돌봐 줘야할 시혜의 대상으로 보는 순간, 즉 연민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순간, 장애는 대등한 관계 맺기의 장애요소가 된다.
여름은 가족들로부터 자신의 삶을 살기를 바란다는 조언을 들으며 뒤늦게 깨닫는다. 그제야 비로소 가족의 무게감으로부터 벗어나 독립된 온전한 주체로 사랑 앞에 다시 설 수 있게 된다. 한편, 용준은 자신을 밀어내는 여름에게 진심을 전하기 위해 애쓴다. 그래서 귀마개로 귀를 막은 채 거리를 걸어보며 그녀의 삶에 더 깊이 들어가고자 한다. 그에게는 이 사랑이 지금 그의 꿈이나 다름없다. 때마침, 그의 부모도 청각장애인을 사랑하는 아들을 지지해준다. 새로운 관계 맺기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청춘이니까 그럴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