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영화 읽는 영화    2025.3월호

노년의 이주민 레즈비언 커플이 구축하는 고유한 삶의 방식

두 사람



김경태 영화평론가




독일 베를린에 살고 있는 ‘수현’과 ‘인선’은 레즈비언 커플로 40여 년을 함께 했다. 수현은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왔고, 독일에 정착한 어머니의 부름을 받고 온 인선은 간호학교를 졸업했다. 그들은 재독여신도회의 수련회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다. 당시 인선은 남편이 있었지만, 희생을 감내하며 수현을 선택했다. 현재는 은퇴한 간호사로서 서로를 돌보며 노년의 삶을 꾸려나간다. 간간히 성 평등을 촉구하는 집회에서 발언을 하고, 청결한 주거권 보장을 위한 시위에서 구호를 외치기도 한다. 그들의 시민 의식은 그들이 지닌 복합적인 소수자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주민이자 성 소수자로서, 이제는 노인으로서 차별받지 않기 위해 아마도 투쟁은 그들의 일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다큐멘터리 <두 사람>은 레즈비언이자 이주민이며 노인이라는, 교차하는 소수자성 속에서 그들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일상을 영위해 나가는 모습을 담백하게 담아낸다. 


애초에 수현과 인선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노년의 레즈비언 커플로서 당당하게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한국에 거주하지 않는 독일 국적의 한국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독일은 동성혼이 법제화되어 있기에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퀴어 친화적인 국가이다. 한편으로, 그들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한인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 독일에서 그들이 소속감을 느끼는 공동체는 여타의 성 소수자 단체가 아니라 (보수적인 집단으로 가정되는) 한인 교회라는 사실은 성 정체성의 가시화에 장애 요인이 된다. 다시 말해, 그들이 교회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성 정체성에 대한 타협적 표출이 불가피하다. 그들은 굳이 커밍아웃하지 않는다.


‘이종문화간 호스피스’의 대표로 강의와 저술 작업을 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는 인선은 그 연장선에서 한국을 두 달 간 다녀온다. 그 직후, 교인들을 집에 초대해 과일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자리에서 수현은 인선이 한국 언론과 인터뷰한 이야기를 꺼낸다. 독일에서와 달리 한국에서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수현과 달리 인선에게는 한국에 친인척들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보다 수월하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를 아는 수현의 가족들은 조용히 살지 않는 그들에게 불만을 토로한다. 인터뷰 내용을 모르는 독일의 교인은 가족들의 반응을 의아해한다. 수현은 인터뷰 내용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좋은 인터뷰라도 찬반이 있기 마련이라고 얼버무리며 곤란한 상황을 모면한다. 너무 멀리 있음에도 늘 의식해야만 하는 가족의 시선과 너무 가까이 있기에 조심해야만 하는 한인 사회의 시선 사이에서 당당한 커밍아웃은 노년의 나이에도 요원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수현은 글쓰기에 바쁜 인선을 혼자 두고 베를린 시내에서 열리는 프라이드 퍼레이드를 구경하러 길을 나선다. 비록 한인 교회가 삶의 중심에 놓여 있지만, 성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활동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이 지닌 복합적인 정체성들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어울리기 위해 언제나 경합하고 협상하며 그들만의 윤리적 삶의 방식을 찾아낸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노년의 정체성이 신체를 압도하며 더 부각될 수밖에 없다. 그들 곁에는 돌봄을 의지하거나 부탁할 자식이나 친족이 없다. 그래서 서로를 더욱 살뜰히 보살핀다. 돌봄의 일상은 이웃집 독거노인을 찾아가서 상처 부위를 치료해주는 사려 깊은 태도로 확장된다. 그리하여 영화의 마지막, 새해를 축하하며 부둥켜안고 춤을 추는 장면 위로, 서로 토닥이며 아픈데 약을 발라주고 등허리에 로션 발라주는 것이 곧 섹스라는 그들의 말이 흘러나온다. 즉 이제는 서로의 몸을 어루만지는 친밀한 손길들이 섹스라고 정의 내린다. 레즈비언들은 육체적 친밀성을 돌봄의 의미로 재발명하며 나이 듦을 긍정한다. 노년의 정체성이 삶과 조화하는 빛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