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영화 읽는 영화    2025.6월호

억압적 현실을 버텨내는 우정의 공동체에 대해

해피엔드



김경태 영화평론가




<해피엔드>는 가까운 미래의 일본을 배경으로 고등학교 음악연구동아리 소속 친구들의 흔들리는 우정을 관찰한다. 그 미래의 풍경은 양가적이다. 다인종 사회에 접어든 일본에서 학생들은 인종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 친구가 된다. 동아리만 해도, 일본인 ‘유타(쿠리하라 하야토)’와 ‘아타(하야시 유타)’를 비롯해 재일한국인 4세인 ‘코우(히다카 유키토)’, 중국계 일본인 ‘밍(시나 펭)’, 미국인 아버지를 둔 ‘톰(아라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에게 인종적 차이는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코우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만드는 김밥을 좋아하고, 서툴지만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밍을 부러워한다. 그리고 몰래 잠입한 학교에서 밤새 테크노 음악을 듣고 옥상 위에서 서로를 베고 누워 새벽을 맞는다. 친밀하게 어울리는 몸짓들은 학교라는 엄격한 훈육 공간조차 균열을 일으키며 낭만으로 물들인다. 적어도 그들의 현재는 결핍 없이 온전해 보인다.


고개를 돌려 학교 밖을 보면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차별의 시선은 그 공동체의 외부로부터 인지된다. 경찰은 거리에서 마주친 코우에게 지속적으로 외국인 거주증을 요구하며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을 한다. 우연히 마주친 집회에서는 순혈 일본인을 지켜야 한다며 외국인을 ‘비국민’이라며 혐오하는 발언을 쏟아낸다. 급기야 지진이라는 재난 상황을 이용해 비상계엄령을 발동한 극우 정부는 불안감을 조성하며 외국인 혐오 분위기를 조장한다. 또한 외국인 혐오를 반대하는 평화로운 시위조차 불법으로 간주하고 무력을 행사하며 억압한다. 인종을 초월한 유대의 유토피아는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유타와 친구들은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으로 이제 곧 학교 밖의 냉혹한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그럼에도 유타는 미래를 대비하기보다는 어차피 죽을 거면 즐기다가 죽자는 생각에 여념이 없다. 그에게는 뚜렷한 꿈이 없을 뿐만 아니라 꿈을 향해 노력할 의지도 없다. 그는 코우와 함께 교장의 새 자동차를 수직으로 세우는 장난을 친다. 유타에게는 그저 재미있는 장난일 뿐이지만 코우에게는 평소 고위층 관료 접대에 바쁜 교장에 대한 적대감이 반영된 저항의 행동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학교는 AI 감시 체제를 도입해 학생들에게 벌점을 매기기 시작한다. 또한 음악연구동아리의 스피커와 음악 장비들을 모두 압수해버린다. 학교는 점차 현실을 닮아가며 감시와 통제가 강화된다. 유타와 친구들은 불합리한 체제를 바꾸기 위해 학교와 맞서 싸우기보다는 외부에서 새로운 도피처를 찾는다.


냉혹한 현실의 논리가 학교까지 장악하며 공고해 보이던 친구 관계까지 뒤흔들어버린다. 코우는 외국인을 향한 잇따른 차별 대우를 좌시할 수 없어서 평소 투철한 인권 의식을 가지고 있던 반 친구 ‘후미(이노리 키라라)’를 따라 시위에 나선다. 사회 문제에 관심을 끈 채 지금을 즐기는 것만으로 완전할 수 있었던 공동체에 금이 간다. 유타는 길에서 소리 지른다고 세상이 변하냐고 코우에게 반문하며 사회를 바꾸려는 무모한 시도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한다.


유타는 자신이 혼자서 한 짓이라고 거짓 자백을 하고서 퇴학을 당한다. 그 덕분에 코우는 장학금을 받고 대학 진학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 비국민이라는 약점까지 있어서 침묵을 지키며 현실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잘 아는 유타는 결국 오로지 친구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자기희생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오늘의 유타는 어제의 유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성장을 통해 달라진 가치관의 충돌 하에서도, 변하지 않아야하는 건 그 어떤 대의명분보다 친구를 위하는 마음이다. 청춘이야말로 우정이 전부인 세계이니까 그럴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공존의 이상은 피부색의 차이를 끌어안는 것을 넘어 서로 다른 가치관마저 수용할 수 있는 자세에 근거한다. 따라서 공동체의 기반은 인종적 유사성도, 견고한 이데올로기도 아닌 끈끈한 우정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