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영화 읽는 영화    2025.7월호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사랑의 어떤 형태

퀴어



김경태 영화평론가




덥고 습한 공기가 거리를 메운 1950년대의 멕시코시티. 중년의 미국인 작가 ‘리(다니엘 크레이그)’는 글쓰기에 집중하기보다는 매일같이 술과 마약에 취한 채 아름다운 청년들을 유혹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남자를 좋아하기에 스스로를 ‘퀴어’로 정의하는 그는 맞은편에 앉은 유대인 청년을 퀴어가 아니라고 단정한다. 자신과의 사이에서 지금껏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퀴어를 감별하는 능력에 자신이 있다. 사랑에 빠지기보다는 그 뛰어난 감식안으로 남자들을 유혹해 품에 안는 순간의 쾌락을 추구한다. 


그런데 첫눈에 반한 군인출신의 청년 ‘유진(드류 스타키)’이 퀴어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처음에는 궁금했지만 이제는 상관이 없다. 리는 유진의 정체성이 무엇이든 그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자 한다. 퀴어이든 아니든 그를 향한 사랑을 멈출 수 없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정체성에 가둘 수 없다. 같이 술을 마시거나 영화를 볼 때, 리의 몸에서 분리되어 나온 투명한 영혼이 유진의 뺨을 어루만지거나 볼에 키스를 한다. 입으로는 말을 건네고 눈으로는 스크린을 응시하지만 이미 그의 모든 감각은 유진에게 달라붙어 있다. 갑자기 등장한 영혼의 손길은 그저 유진을 만지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을 넘어선다. 비록 그를 품에 안지는 못했지만 나란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황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육체적 결합의 관능, 그 이상을 갈망하는 영혼의 접촉을 발명한다. 영화는 그 순간을 몽환적으로 묘사한다.


마침내 리는 자신의 집 침대 위에서 유진을 애무하고 그와 진한 키스를 나눈다. 그가 유진의 몸을 탐하는 격정적인 장면으로부터 돌연 고개를 돌린 카메라는 욕조 위에서 홀로 타들어가는 담배와 일련의 창문들을 잇달아 보여준다. 뜨겁게 고조된 분위기를 평온하게 가라앉히는 정적인 숏들이다. 영화는 관객의 관음증 충족을 중단시키며 그들의 친밀한 순간을 온전히 그들의 것으로 돌려준다. 리는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의 몸을 취하는 것, 그 이상으로 그에게 더 깊이 들어가고 싶다. 그래서 말없이 대화하고 싶다. 그것은 둘 사이의 아무런 매개 없이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싶은 욕망이다. 어떠한 사랑의 밀어도, 어떠한 사랑의 손길도 너를 향한 내 마음을 정확히 전달 할 수 없다. 당신이 하는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에 당신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불완전한 언어뿐만 아니라 탐미적인 육체조차도 소통의 장애가 된다. 그래서 리는 인간의 텔레파시 능력을 향상시켜주는 ‘야헤’를 찾아서 유진과 함께 남미로 향한다. 야헤는 러시아 CIA에서 인간 사고를 통제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전해지는 신비의 식물이다. 


그들은 야헤를 연구하는 코터 박사를 찾아 정글로 들어간다. 코터 박사가 만들어준 야헤 차를 나눠 마시고 환각 상태에 빠져든다. 마주 앉은 그들의 몸이 점차 투명해진다. 유진은 자신이 퀴어가 아니며 육체로부터 벗어난 영혼이라고 말한다. 리는 알고 있다고 대답한다. 그도 동일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이상 퀴어라는 정체성에 갇혀 있지 않다. 퀴어이기 때문에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날것 그대로의 영혼은 그 어떤 정체성으로도 가둘 수 없다. 그들은 마치 몸과 영혼의 경계에 놓인 듯한 나체로 뒤엉킨다. 손으로 가슴을 만지면 피부 안으로 흡수되어 들어가고, 입을 맞추면 서로의 얼굴이 달라붙어 버린다. 그것은 물화된 영혼들의 끈적끈적한 섹스이다. 비로소 모든 장벽을 뚫고 서로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간다. 그것은 양날의 검이 된다. 서로의 모든 것을 본 후, 혹은 서로를 온전히 다 가진 후, 나란히 누워 눈물을 흘린다. 이제 그들의 관계에 미래가 없을 지도 모르지만 그 사랑은 평생 리의 삶을 장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