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살의 탈북민 ‘철준(조유현)’은 교회로부터 받는 장학금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자취를 하며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남한에 있지만, 그는 자신처럼 북한에서 넘어 온 사람들과 교회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해 어울리고 있다. 그들은 서로의 사정을 너무 잘 알기에 가족의 탈북을 도우려는 친구에게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브로커 비용을 선뜻 빌려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철준에게는 그 공동체가 채워줄 수 없는 공허함이 늘 자리잡고 있다. 그는 동성애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좁은 원룸에서 뭇 남성들과 성관계를 맺지만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성적 욕망을 채우는 것 이상의 친밀한 교류이다. 그는 함께 밥 한 끼를 하며 동성애자로서의 삶에 대한 고충을 편하게 나누고 서로를 응원해줄 친구가 더 간절하다.
용기를 낸 철준은 종로 술번개 모임에 나가고 거기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 ‘영준(김현목)’을 따라 동갑 모임에 나간다. 마침내 철준에게도 소속감을 가지고 의지할 수 있는 게이 공동체가 생겼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출신 성분에 따라 배정받는 공동체가 아니라 온전히 스스로가 선택한 공동체이다. 특히 철준과 영준은 남자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외에도 불안한 미래를 앞둔 청춘으로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영준은 철준의 게이 공동체 활동뿐만 아니라 대입을 위한 자기소개서 작성을 돕는 등 남한 사회 적응을 위한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동성애자라는 정체성 덕분에 영준은 탈북민에 대한 편견을 넘어 철준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철준은 평소에 호감을 가지고 있던 친구 ‘현택(조대희)’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영준과 함께 이태원에 간다. 게이클럽에서 현택은 철준을 유혹해 ‘다크룸’으로 데리고 간다. 그러나 철준은 이내 그곳을 빠져나와 성적 일탈이 주는 쾌락보다는 영준과의 우정 어린 춤을 선택한다. 파티를 마친 친구들은 철준의 좁은 자취방에 모여 잠을 자고 다음날 중국음식을 배달해서 둘러 앉아 먹는다. 뒤이어 카메라는 좁은 현관 바닥을 가득 채운 신발들을 비춘다. 철준이 꿈꾸던 공동체의 이상이 실현된 듯이 보인다.
취업에 실패한 영준은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는 울면서 매달리는 철준에게 자신을 대체할 누군가가 생길 거라고 위로한다. 영준은 게이 공동체를 환유한다. 그를 향한 철준의 애착은 게이 공동체를 향한 그것과 중첩된다. 그래서 영준에 대한 철준의 감정은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모호하게 부유하는 듯이 보인다. 그것은 친밀한 대상의 넓고 아늑한 품에서 느낄 수 있는 근원적인 일치감에 가깝다. 어쩌면 그것은 우정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일 것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공동체의 필연적 유한성 앞에서 철준은 떠밀리듯 성장한다.
영준은 떠났지만, 게이들이 모이는 종로와 이태원은 아직 거기 그대로 남아 북적인다. 그곳에 위치한 실제 게이바와 게이클럽 등에서 촬영을 하면서 게이 구역의 지표성을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그곳을 채우는 구성원들은 바뀌고 우정은 영원하지 않더라도 게이 구역의 장소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언제든 따뜻한 환대와 새로운 우정의 가능성을 일별할 수 있다. 영준이 철준에게 그러했듯, 철준은 자신과 같은 탈북민 게이 ‘범호(한상조)’를 종로의 게이바로 이끈다. 그동안 속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어 힘들었던 범호는 그냥 말없이 거기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속이 다 시원했다고 말한다. 즉, 공동체의 물질적 토대가 품고 있는 우정의 가능성만으로도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비록 개별적 우정은 유한할지언정 공간에 스며있는 잠재적 우정은 지속될 것이다. 영화가 게이바나 게이클럽 같은 구체적 장소들의 재현에 천착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제 철준은 영준에게서 배운 우정 어린 실천으로 그곳을 지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