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영화 읽는 영화    2025.10월호

미추의 경계를 초월하는 정의로운 얼굴

얼굴



김경태 영화평론가




노년의 시각 장애인 ‘영규(권해효)’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도장을 만드는 전각 장인이 된 인간 승리 서사로 유명세를 탄다. 하나뿐인 아들 ‘동환(박정민)’은 아버지 곁을 지키며 도장 관련 사업을 이끌고 있다. 방송국 PD인 ‘수진(한지현)’은 영규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그와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중이다. 동환은 경찰로부터 40년 전 집을 나가서 얼굴조차 모르는 어머니 ‘영희(신현빈)’의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영정 사진 없이 치러진 영희의 장례식에는 존재조차 몰랐던 언니들이 찾아온다. 그들에 따르면 영희는 못생겨서 사진 찍는 걸 싫어했고, 아버지의 외도를 발설했다는 이유로 어머니의 폭행에 시달려 가출을 했다. 그들의 대화를 엿듣던 수진은 다큐멘터리의 방향을 틀어서 영희의 과거를 추적한다.


수진은 수소문해서 과거 청계천 의류 공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찾아낸다. 그들은 하나같이 영희의 못생긴 외모를 지적하며, 그것이 상기시키는 사건과 별명만을 뚜렷하게 기억할 뿐이다. 이쯤 되면 동환이 그러하듯 관객 역시 영희의 얼굴에 대한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다. 도대체 외모가 어떻길래 주변 사람들에게 저런 취급을 받았을까? 아니 아무리 못생겼더라도 대놓고 괴물 같이 생겼다고 말하고 심지어 그 얼굴로 사람을 평가할 수 있을까? 그러나 영화는 회상 장면에서조차 그녀의 얼굴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못생긴 얼굴은 텅 빈 얼굴로 지워지며 보다 외설적이고 공포스러운 위치에 놓인다. 우리는 부재한 얼굴을 뒤로 한 채 그저 그녀의 몸짓에 주목하고 목소리에 귀 기울일 뿐이다. 그래서 심성보다 얼굴로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서 그녀의 행방을 쫓는다. 동료에게 성폭행을 저지른 사장과 맞서 싸웠던 그녀의 정의로운 행동들이 드러난다. 몸짓이 얼굴의 공백을 메운다. 영희의 성품은 외적 결핍에 잠식되지 않았다.


사실 얼굴을 볼 수 없는 위치, 그것은 영규가 영희를 바라보는 위치였다. 관객은 영규처럼 그녀의 목소리와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한다. 애초에 영규는 자신을 살뜰히 챙겨주는 심성에 반해 그녀와 결혼한 것이다. 물론 주변에서 놓치기 아까운 미모라며 거짓으로 부추겼지만 얼굴을 볼 수 없기에 큰 의미가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런 그가 집에 놀러온 친구의 입을 통해 영희의 얼굴이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분노한 근본적 원인은 그녀의 못생긴 외모가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지속되어 온 자신을 향한 조롱이다. 그는 영희도 자신을 속인 한통속이라는 과대망상과 피해의식에 빠진다. 


영규는 비록 손끝으로 감각하며 글씨를 아름답게 새기는 능력을 지니고 있고 그것을 사람들이 신기해하지만, 그럼에도 미와 추를 구분하는데 있어 보다 필수적인 시력의 부재로 그의 능력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조롱은 바로 의심에서 비롯된다. 그는 그 시선을 내면화하며 더욱 탐미적인 태도로 장애를 밀어내고 비장애인과 경쟁했을 것이다. 결국 시각 장애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글씨를 아름답게 새기는 전각 장인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영희와 달리 그의 영혼은 장애로 인한 열등감에 이미 오래전 잠식되어 버렸다. 그는 볼 수 없는 것을 보기 위해 발버둥 치다가 정작 봐야만 하는 것을 놓쳐버렸다. 


<얼굴>은 관객으로 하여금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태도에 대한 윤리적 질문을 던지도록 한다. 영규는 비로소 어머니의 얼굴을 마주한다. 의심의 여지없이 추한 얼굴일 수도 있고, 의외의 모습으로 반전을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희의 지난한 역사를 목격한 동환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그것은 더 이상 미추의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는 숭고한 얼굴이다. 온갖 수난을 견뎌내면서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정의로운 얼굴이다. 동환은 오열하며 비로소 어머니를 애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