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영화 읽는 영화    2025.12월호

예술적 성취를 위한 집념, 삶을 압도하다

국보



김경태 영화평론가


 


야쿠자의 아들 ‘키쿠오(요시자와 료)’는 가족을 모두 잃고서 오사카의 가부키 명문가인 탄바야를 찾아간다. 일찍이 키쿠오의 재능을 알아 본 ‘한지로(와타나베 켄)’는 그를 기꺼이 문하생으로 받아준다. 키쿠오는 한지로의 동갑내기 아들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와 함께 혹독한 훈련을 견디며, 특히 여성 역할을 맡는 배우인 ‘온나가타’로서의 꿈을 키운다. 그러나 가부키의 가문 세습 전통에 따라 키쿠오의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가 슌스케 대신에 후계자가 되는 일은 요원하다. 가문의 피를 갖지 못했기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피나는 노력을 하며 만에 하나 있을 기회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가부키 배우로서 최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한 키쿠오의 노력은 사적인 삶의 희생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관계성의 결함을 낳는다. 무대 밖에서 맺는 관계들은 그의 예술적 성취를 위해 소모된다. 이는 그가 여성들과 맺는 관계를 통해 단적으로 드러난다. 먼저 어린 시절부터 가깝게 지낸 하루에는 청혼을 하는 키쿠오를 밀어내고 그의 재능을 질투하던 슌스케와 멀리 떠난다. 하루에는 키쿠오가 가부키에 미쳐 결국에는 자신을 외롭게 하리라 직감했을 것이다. 이후에 키쿠오는 게이샤인 후지코마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는다. 그러나 한지로가 슌스케 대신에 키쿠오를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승승장구하자 딸을 차갑게 외면해 버린다. 한지로가 죽고 떠났던 슌스케가 돌아오자 혈통을 이어받지 못한 키쿠오는 사생아가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주연은커녕 작은 배역조차 맡기 힘들어진다. 그는 극장주의 딸인 아키코를 유혹해서 다시 일어서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키쿠오가 무대에서 열연을 펼쳐 보이는 가부키 공연들은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거는 멜로드라마 구조가 주를 이룬다. 일례로, <소네자키 동반자살>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는 연인이 숲속에서 동반자살을 시도하고, <백로 아가씨>에서는 인간의 모습을 한 백로의 정령이 사랑에 실패한 뒤 죽을 때까지 춤을 춘다. 그중에서도 슌스케가 당뇨 합병증으로 한 쪽 다리를 절단한 뒤 오른 마지막 공연인 <소네자키 동반자살>에서 오하츠 역을 맡자 키쿠오는 연인인 도쿠베 역으로 함께 무대 위에 오른다. 그들은 뛰어난 연기로 매우 강렬한 파토스를 선보인다. 그것은 무대 밖에서 억압된 관계적 정동을 상쇄하고 남을 만큼 과잉되어 있다. 다시 말해, 키쿠오는 마치 가부키 공연을 위해 자신의 모든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아껴두는 듯하다.


뿐만 아니라 해묵은 갈등은 무대 위에서 최고의 연기를 펼치면서 해소된다. 키쿠오는 자신의 자리를 빼앗은 슌스케와 주먹다짐을 하고 한참을 헤어졌지만, 예전처럼 함께 공연하는 그들의 모습으로 재회나 화해의 과정을 갈음한다. 또한 세월이 흘러 마침내 가부키 배우로서 국보가 된 60대의 키쿠오 앞에 딸이 성인이 되어 나타나는 장면에서 딸은 결코 그를 아버지로 생각한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면서도, 끝내 최고의 배우가 되었기에 그를 칭송하며 자신을 버린 죄를 용서한다. 이처럼 상영시간의 많은 분량을 할애한 가부키 공연 장면은 감정을 대리하고 서사의 결핍을 메운다. 삶을 압도하는 예술의 가치는 영화의 형식을 통해 성취된다. 


노년의 키쿠오는 단 하나의 경치를 보고 싶어 한다. 그것은 가부키에 처음 입문했던 어린 시절 국보였던 가부키 배우 만기쿠의 공연인 <백로 아가씨>를 처음 보았던 날에 그를 매료시켰던 무대 위 장면이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꽃잎이 반짝이며 흩날리는 풍경이다. 영화의 마지막. 그 역시 <백로 아가씨>로 무대에 올라 혼신의 연기를 마친 뒤 고개를 들어 위를 본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환영 앞에서 아름답다며 감탄한다. 예술가로서 정점에 오른 순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는 무대 밖의 삶으로 내려올 생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