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영화 읽는 영화    2026.2월호

불가피한 상실 앞에 선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

리틀 아멜리



김경태 영화평론가


 


프랑스 애니메이션 <리틀 아멜리>는 벨기에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자전적 소설인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을 원작으로 한다. 일본 주재의 벨기에 영사 집안에서 태어난 ‘아멜리’는 여느 아기들과 달리 아무 말이나 행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다. 애초에 아기는 결핍 없이 자족적이며 완전한 나르시시즘적 자아로 스스로를 받아들인다. 나아가 아멜리는 그런 자신을 ‘신’이라고 여기며 세상과 소통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두 살이 되던 해에 마침내 자신의 시선과 육체를 감지하며 걸음마를 떼고 옹알이를 한다. 그러나 첫걸음을 떼는 순간 비틀거리며 넘어지고 처음 입을 여는 순간 뜻을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을 내뱉으며 자신의 결핍과 처음 마주한다. 아멜리는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깨닫고 분해하며 울부짖는다. 아기는 신이 아닐뿐더러 심지어 어른의 돌봄이 필수적일 만큼 불완전한 존재이다.


벨기에에 잠시 방문한 할머니와의 만남은 아멜리로 하여금 비록 신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몸이 느낄 수 있는 생생한 감각의 황홀함을 일깨워준다. 할머니가 건넨 화이트 초콜릿을 맛 본 아멜리는 신세계를 경험하며 비로소 세상 속으로 나온다. 집안을 열심히 뛰어다니고 진공청소기가 돌아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가족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대화를 시도한다. 불완전한 자신을 인정하며 그 결핍을 채워나가기 위해 사람들과 열심히 소통한다. 그 중심에는 집안의 보모로 들어온 일본인 ‘니시오상’이 있다. 


니시오상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멜리에게 일본 문화에서부터 죽음과 상실의 의미까지 가르쳐준다. 함께 붓글씨로 한자를 쓰기도 하고, 강 위로 위령의 의미가 담긴 등불을 띄우기도 한다. 그리고 할머니의 부고로 죽음을 처음 마주한 아멜리에게 자신이 겪은 전쟁에 대해 들려준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원폭 피해로 가족을 모두 잃었다. 죽음의 이미지는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럼에도 시간은 상실의 아픔을 치유해주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소중한 기억은 또렷하게 남아있다. 상실은 관계의 끝이 아니다. 떠난 이들은 추억으로 남아 언제나 함께 하기 때문이다. 어느새 니시오상은 아멜리의 삶에서 중심을 차지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상실의 의미를 가르쳐 준 이를 떠나보내야만 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아멜리의 가족은 언젠가 벨기에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미 니시오상은 아멜리의 전부가 되었다. 더 이상 분리 될 수 없는 하나이다. 태어난 순간에 느꼈던 온전한 자아를 다시 찾게 된 건 그녀 덕분이다. 그녀는 아멜리가 동일시하는 이상적 자아이다. 세 살 생일에 부모가 선물해 준 잉어들에게 먹이를 주던 아멜리는 지그시 눈을 감고 연못 속으로 뛰어든다. 그것은 상실의 아픔이 부재하던 태곳적으로, 홀로 완전할 수 있었던 근원으로 돌아가기 위한 몸짓이다. 모두가 떠나고 잊히는 세상은 너무 슬프기 때문이다. 그때, 할머니의 환영이 나타나 니시오상이 했던 말을 상기시킨다. 떠날지라도 추억은 영원히 남을 거라고. 그 순간, 니시오상과 나눴던 아름다운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리틀 아멜리>는 아이의 눈높이에서 친밀한 관계와 그것의 상실이 가진 의미를 성찰한다. 본래적으로 불완전한 인간은 관계 안에서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물론 그 관계는 영원하지 않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이별은 언제나 불가피하다. 다행히도 우리는 그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상상 속에서 그들을 떠올리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위안을 얻을 수도 있다. 이미 그들은 나의 일부로 깊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 <리틀 아멜리>는 이별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