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유정난으로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십대의 왕 ‘단종(박지훈)’은 충신들이 고문을 당하고 능지처참으로 죽음에 이른 참혹한 광경을 목도한다.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자괴감에 휩싸인 채 식음을 전폐하던 중에 ‘한명회(유지태)’에 의해 강원도 영월 산골에 위치한 광천골의 청령포로 유배된다. 그곳이 유배지로 결정된 배경에는 촌장인 ‘엄흥도(유해진)’의 노력이 있었다. 원래 기존 유배지였던 이웃마을 노루골이 그 덕에 풍요로워진 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광천골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으로 유배지 유치 경쟁에 뛰어들어 유배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처음으로 유배를 온 어린 양반이 폐위된 단종임을 뒤늦게 알게 되며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은 잠시 절망한다. 그는 유배지를 지키는 보수주인으로 단종의 식사를 챙기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아에 보고하는 역할을 맡는다.
애초에 엄흥도에게 유배지 유치는 마을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자 하는 소박한 목적이었다. 그것은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주요 공공기관이나 기업/공장, 체육시설 등을 유치하기 위해 애쓰는 지자체와 닮아 있다. 따라서 단종은 어린 나이에 쫓겨난 왕이라는 연민의 대상이기보다는 마을의 경제적 활성화를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 단종이 삶의 의욕을 잃고서 마을 사람들이 올린 음식을 물리고 심지어 목숨마저 버리고자 했을 때, 엄흥도가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마을의 안위가 단종의 안위에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마을을 살리기 위해서 단종을 살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아직 단종의 아픈 내면이 보이지 않았고 그가 굳이 볼 필요도 없었다. 철저한 신분 사회에서 일개 촌장과 폐위된 왕의 접점은 있을 수 없었다.
단종이 마을 사람들이 마련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먼저 마음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때, 단종은 반찬 하나하나에 마을 사람들의 노고가 깃들어 있음을 깨닫고 그들의 진심에 감응한다. 나아가 단종은 그들과 마주 앉아 음식을 나눠 먹으며 마침내 ‘식구’가 된다. 이제 그가 밥을 먹는 행위는 배를 불리는 목적을 넘어 그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며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단종의 근거리에서 유배 중인 숙부 ‘금성대군(이준혁)’은 단종에게 서신을 보내 왕위를 재탈환하기 위한 역모에 동참할 것을 권한다. 망설이던 단종은 자신의 불찰로 인해 한명회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 마을 사람들을 마주하며 결심을 굳힌다. 소중한 사람들을 또다시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절대 권력에 대한 야망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다시 왕이 되어야만 한다. 후회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시도해야 한다.
한편, 역모를 눈치챈 엄흥도는 딜레마에 빠진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사실을 관아에 밀고해야 하지만 단종은 이미 자신의 ‘식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간곡하게 단종을 만류한다. 그 딜레마는 또한 단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역모가 실패하면 마을을 큰 위기에 빠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종은 자신을 밀고하라고 명하지만, 엄흥도는 오히려 단종이 유배지를 빠져나가도록 돕는다. 결국 단종과 엄흥도는 각자가 세운 대의, 즉 왕권 획득과 마을 번영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보다는 눈앞의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지극히 사사로운 선택을 한 것이다.
우리는 영화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다. 역사에 기록되어 있듯이, 역모는 실패로 귀결되고 단종은 사약을 받는다. 그것은 단종과 엄흥도의 서로를 위한 사사로운 선택과 상관없이 노정된 비극이다. 단종과 엄흥도는 모두 서로를 지킬 수 없을 만큼 무력했다. 비록 무력했지만, 아니 무력했기에 서로를 지키고자 했던 의지만은 더욱 또렷이 남는다. 그리하여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이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도 견고함을 잃지 않는 우애를 향한 충만하고도 슬픈 의지를 강렬하게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