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영화 읽는 영화    2026.4월호

인류를 구원하는 우정의 조건에 대해

프로젝트 헤일메리



김경태 영화평론가


 


태양을 비롯한 우주의 행성들이 ‘아스트로파지’라는 외계미생물에게 에너지를 빼앗기며 빛을 잃어가고 있다. 이대로 두면 지구의 온도가 떨어져 30년 안에 인류가 멸종하게 된다. 해결책을 찾던 중 태양계 너머에 있는 항성인 ‘타우세티’만이 밝기가 변하지 않는 것을 발견한다. 아스트로파지의 번식을 막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추정하고 인류의 마지막 희망인 ‘헤일메리’호를 보낸다. 분자생물학자이자 중학교 교사인 ‘그레이스(라이언 고슬링)’가 그 우주선의 유일한 생존자로 남게 되고, 그처럼 자신의 행성인 ‘에리드’를 지키러 왔다가 홀로 생존한 ‘에러디언’인 ‘로키’를 만난다. 그들은 힘을 합쳐 아스트로파지를 없애기 위한 연구에 골몰한다. 


그레이스와 로키는 서로 멀리 떨어진 행성에서 온 만큼 너무 큰 언어적/신체적/문화적 차이라는 장애 요인들을 극복해야만 한다. 심지어 로키는 인간적 기준에 부합하는 얼굴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대화는 번역기에 의존할 수 있지만, 대화중에 눈을 마주칠 수도 없고 표정을 읽을 수도 없다. 그런데 이것은 로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시각적 특성으로 인해 상대의 안면을 인식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산소 기반 대기가 필수적인 인간과 달리 로키에게 산소는 치명적인 독과 같아서 노출 시에 신체가 손상된다. 반면에 인간은 에리드의 암모니아 기반 대기에서 살 수 없다. 로키는 그레이스의 우주선에서 함께 생활하기 위해서 구형의 보호벽 안에서 활동한다. 그들은 맨몸으로 포옹하며 체온을 나눌 수 없다. 보호벽을 사이에 둔 채 서로를 안는 시늉을 할 뿐이다. 


그만큼 그들 사이의 친밀한 정서적 교류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어 보인다. 모든 감각을 활용하는 인간중심적인 교감 방식에서 탈피할 수밖에 없다. 로키의 얼굴을 찾으려다 포기한 그레이스의 뼈있는 농담처럼, 얼굴의 가치는 과대평가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그들은 그저 제한적인 어휘와 어설픈 몸짓으로만 대화를 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각자의 행성을 살리고자 하는 공동의 목표가 있기에 차이를 넘어 협력해 나가며 깊은 우정을 나눈다.


이를 위해 영화는 아스토로파지를 둘러싼 연구 과정에 발생하는 위험한 시행착오보다는 운명 공동체가 된 그레이스와 로키가 아웅다웅하며 친밀감을 쌓는 모습을 묘사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에 따라, 인류를 구하기 위한 그레이스의 헌신적이고 숭고한 노력보다는 우주에 고립된 그와 로키가 서로에게 유일한 동료로서 불가피하게(!) 맺게 되는 끈끈한 관계성이 전면에 부각된다. 그래서 영화는 그레이스를 사명감 가득한 인물로 묘사하기보다는 오히려 겁 많고 어설픈 인물로 묘사한다. 그는 로키와의 관계 안에서 관계 중심적으로 성장해 가고, 그것은 영화의 궁극적 결말이 지구의 구원이 아니라 로키의 구조로 향하도록 한다. 


결국 그레이스와 로키의 관계는 관계 맺기의 관성화된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어떠한 외적인 공통점 없이도, 심지어 공기조차 공유할 수 없어도, 인류애적인 신념 하에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진정한 관계는 공통의 외적 조건이나 동종애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조차 없는 외계인이라는 절대적 타자일지라도 소통하기 위한 강한 의지에서 비롯된다. 눈을 마주보지 않아도, 체온을 나누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까워질 수 있다. 그것은 동일한 인류 내에서 발생하는 인종이나 성별, 성정체성 등에 기반한 갈등이 얼마나 하찮은지 깨닫게 한다. 인간의 서로 다른 정체성에 따른 격차는 인류와 외계인 사이에 놓인 외적 간극과 비교하면 너무나 미미해 보인다. 그리하여 지구인과 외계인의 진한 우정을 목격한 우리에게 하물며 서로의 눈을 응시하며 살을 맞댈 수도 있는 인류가 분쟁에 끝없이 휘말리는 작금의 상황들이 문득 의아하게 다가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