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영화 읽는 영화    2026.6월호

특별한 사랑에서 목격하는 관계의 본질에 대하여

뒷자리에 태워줘 



김경태 영화평론가




<뒷자리에 태워줘>는 게이 BDSM 문화를 정면으로 다룬다. BDSM은 결박(bondage), 훈육(discipline), 굴복(submission), 가학(sadism), 피학(masochism) 등 지배와 복종의 위계적인 성적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평범한 외모의 ‘콜린(해리 멜링)’은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연애 상대를 물색하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업무적으로는 단호한 태도를 보여준다. 그는 주차 단속요원으로서 차량 주인들의 분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냉정하게 딱지를 끊는다. 그에게는 규율을 철저히 지키는 자세, 혹은 명령에 복종하고 의무에 헌신하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그런 콜린은 마침내 자신의 복종적인 성향과 잘 맞아떨어지는 지배적인 상대를 만나는데, 그가 바로 잘생긴 외모에 키도 큰 ‘레이(알렉산더 스가스가드)’이다. 


레이는 가죽 재킷을 입고 바이크를 몰며 BDSM 바이크 모임 활동을 한다. 과묵한 그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기에 직업이나 나이, 가족 관계 등에 대한 정보는 알 수가 없다. 자신이 원할 때만 콜린을 불러 장을 보고 요리를 하도록 시킨다. 콜린의 생일에도 예외는 없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음식을 먹을 수도 없다. 레이의 옆자리는 언제나 반려견의 몫이다. 한 침대에서 잠을 잘 수도 없다. 콜린의 지정된 잠자리는 레이의 침대 아래 바닥이다. 키스는 허락되지 않으며 섹스에 이르는 과정은 전혀 로맨틱하지 않다. 콜린은 레이와 함께 있는 동안 지속적으로 굴욕적인 상황에 놓인다. 일반적인 연인 사이와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헌신에 소질 있는 콜린은 불만 없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적어도 레이가 타는 바이크의 뒷자리는 온전히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가족의 개입이다. 콜린의 부모는 결국 그들의 관계가 자신들이 바라는 평범한 연인 사이가 아님을 알게 된다. 가족뿐만 아니라, 연인 관계의 기반을 평등하고 상호적인 배려로 알고 있는 이들에게 그들의 사랑은 쉽사리 납득될 수 없다. 무엇보다, 사적이고 내밀한 부분들을 공유하는 것이 친밀한 관계 맺기의 기본이지만 콜린은 레이에 대해 아는 바가 아무것도 없다. 그리하여 레이가 추구하는 친밀성은 비개인적이며 비관습적인 형태를 취한다. 콜린은 그 낯선 사랑에 차츰 적응해 간다.


물론 친밀함의 거리는 당사자들이 타협과 합의를 통해 서로 맞추는 것이다. BDSM이라는 특수한 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주변의 시선과 상황의 변화는 콜린을 흔들리게 한다. 콜린은 평범한 연인 관계를 갈망하며 처음으로 관계의 규율을 어기고 레이의 명령에 반항한다. 궁극적으로 레이가 그어놓은 친밀함의 경계를 함부로 넘어서며 그를 불편하게 한다. 그리하여 평온해 보이던 이 관계도 변곡점을 맞이한다. 레이는 콜린의 바람대로 함께 식사를 하고 거리를 걷고 영화를 보는 일상적인 데이트를 마지막 선물로 남긴다. 콜린이 원하는 수준의 친밀한 몸짓들이 아무리 평이해 보여도 레이가 견뎌내기 힘든 고된 일일 수 있다.


<뒷자리에 태워줘>는 규범적인 관계든 일탈적인 관계든 모든 관계는 고유하기에 본질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어떠한 관계든 서로가 부딪히고 갈등하며 타협점을 찾는 지난한 과정이야말로 관계를 생동하게 만드는 공통된 특징이다. 어쩔 수 없이 지금의 사랑이 종결되더라도, 누구의 잘못이라고 쉬이 단정 지을 수 없다. 다만, 적어도 확실한 건 서로가 원하는 친밀함의 거리가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자신들만의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했던 시행착오들은 체화된 채 다음 사랑의 자양분이 된다. 따라서 우리가 사랑에 대해 주목해야 할 지점은 사회적 규범에 따른 관계의 도덕성이 아니라 서로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