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가인 '오토네(아야세 하루카)'와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남편 '겐스케(다이고)'는 2년 전 유괴 사건으로 일곱 살 아들 '카케루(쿠와키 리무)'를 잃었다. 당시 오토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방문으로 오토네 대신 카케루를 유치원에서 데려오기로 했던 겐스케가 파친코에 빠져 늦어버린 탓에 벌어진 참극이었다. 두 사람은 고심 끝에 '리버스(REbirth)'라는 기업이 사건이나 사고로 갑작스레 가족을 잃은 이들을 위해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영상 등의 자료를 모아 죽은 가족을 휴머노이드로 되살려주는 무료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휴머노이드로 돌아온 아들 카케루를 보살피는 새로운 기회를 얻어 서툴렀던 부모 역할을 만회하고 죄책감을 덜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영화 속 TV에서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쇄 유괴 사건 관련 뉴스가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그것은 과거 카케루의 유괴를 연상시키며 불안감을 조성한다. 아이들은 여전히 위험한 세상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영화는 끝까지 유괴범을 공개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경찰의 추정과 달리 유괴가 아닐지도 모른다. 과거에도 유괴범이 밝혀지지 않아 경찰은 카케루의 죽음을 사고사로 마무리 지었다. 이처럼 카케루의 죽음과 아이들의 실종은 모호하게 처리된다. 이는 특정 어른만의 잘못이 아니라 어른들의 잘못이 연쇄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영화는 아이들의 죽음과 실종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한정하지 않는다. 이 세상의 어른들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도, 지키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어른들은 동일한 실수를 반복한다. 오토네는 홧김에 엄마 역할을 그만두겠다며 카케루와의 계약 종료를 선언한다. 그 직후 카케루는 2층에서 떨어져 망가진다. 오토네는 다시 한 번 아이 돌봄에 실패하고 만다. 오토네보다 먼저 휴머노이드 아이를 통해 두 번째 기회를 얻은 부모들 역시 그들을 재차 학대해 망가뜨리거나 방치해버린다. 사실 <아무도 모른다>(2005)에서부터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어느 가족>(2018), <괴물>(2023)에 이르기까지, 아이 돌봄에 무능하거나 무책임한 어른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오랜 화두였다. 그런데 감독은 돌봄에 소질이 없는 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인정하되, 그들을 날카롭게 비난하거나 강하게 질타하지는 않는다. 대신 아이들을 단순히 보호의 대상으로 한정 짓지 않고 그들에게 주체성을 부여함으로써 어른과 아이의 위계를 흔들며 대안과 해법을 모색한다.
카케루는 자신만의 공동체를 능동적으로 찾아 나선다. 그곳에는 휴머노이드 아이뿐만 아니라 인간 아이도 함께한다. 휴머노이드와 인간은 '아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며 그들만의 공동체를 구축한다. 일부는 어른으로부터 받은 학대와 방관의 경험으로 몸에 상처를 새기고 있다. 부모와 함께 사는 휴머노이드 아이는 학대와 방관의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아이들은 연대하며 어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고자 한다. 공동체의 리더가 말하듯, 그들은 인간의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어른들의 과거에 얽매인 존재가 되기를 거부하고 그들만의 고유한 미래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것이다. 카케루는 오토네와 겐스케에게 아들의 역할을 그만두고 자신이 선택한 공동체와 함께 숲속에서 살겠다고 당당히 밝힌다.
그리하여 카케루가 휴머노이드로 환생한 것은 부모의 죄책감을 덜고 애도를 돕기 위한 의도를 훨씬 넘어선다. 감독은 두 번째 삶을 살게 된 카케루에게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할 기회를 부여한다. 이는 어른들이 지키지 못해 죽어간 아이들, 학대로 상처 입은 아이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려는 의지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상자 속의 양>이 죽은 아이들을 휴머노이드의 형상으로 부활시킨 궁극적인 이유일지 모른다. 죽은 나무도 살아 있는 것처럼 고유한 소리를 내듯, 심장이 없는 휴머노이드도 자신만의 영혼을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을 새기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