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후지노 도모아키 감독이 조현병을 앓는 누나 ‘마사코’를 20여 년에 걸쳐 촬영한 영상으로 완성한 다큐멘터리이다. 마사코가 처음으로 조현병 증세를 보인 것은 의대 재학 시절이던 1983년이었다. 의학 연구자였던 부모는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온 가족을 놀라게 한 딸을 입원시키지 않고 집 안에 가두어 두는 선택을 한다. 아직 고등학생에 불과했던 감독은 다정했던 누나의 급작스러운 변화와 그에 대한 부모의 대처를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이후 성인이 된 감독은 집을 나와 독립하면서 누나의 문제로부터 도망쳤다. 그러므로 감독이 그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로 결심하기까지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했다.
영화는 제작 의도의 왜곡을 우려하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즉, 이 영화는 조현병의 원인을 찾거나 그 현실을 목격하고자 하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밝힌다. 감독은 마사코를 진료한 정신과 전문의의 소견을 묻지도 않고, 조현병 진단을 받은 환자들의 일반적인 증상이나 치료법, 혹은 처우에 대한 정보도 찾지 않는다. 그저 카메라로 마사코의 일거수일투족을 담담히 기록하거나, 카메라 앞에 앉은 누나에게 상냥하게 안부를 물을 뿐이다. 카메라는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그만의 고유한 수단인 동시에,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카메라는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그녀를 향해 용기 있게 내디딘 한 걸음이자, 여전히 불가해한 그녀로부터 머뭇거리며 물러나 있는 한 걸음이다.
특기할 만한 장면이 하나 있다. 치매 증상을 보이는 어머니가 집 안에 몰래 들어오려는 침입자가 있다며 새벽 3시가 넘도록 가족들을 잠 못 들게 한다. 감독은 침대에 누운 누나를 뒤로한 채 방을 나와, 닫힌 방문 앞에 카메라를 고정한 채 불안해하며 우왕좌왕하는 어머니를 촬영한다. 그때 갑자기 누나가 “죽여버리겠다”고 괴성을 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카메라는 잠시 흔들리지만, 섣불리 나아가 누나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한 채 머뭇거리며 이내 자리를 지킨다. 그 찰나의 망설임은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우리는 카메라 뒤에서 고뇌에 빠진 채 침묵하는 감독과 마주한다. 마사코의 조현병을 애써 외면하는 부모에게 적극적으로 반기를 들고 마사코의 삶 속 깊이 뛰어들기 위해서는 용기뿐만 아니라 더 많은 성찰이 필요했던 것이다.
2008년, 감독은 어머니의 치매가 악화되자 아버지를 설득해 마사코를 입원시킨다. 첫 발병 후 25년 만에 치료를 시작한 것이다. 3개월 만에 퇴원한 마사코는 비로소 감독의 물음에 정상적으로 대답하고, 나아가 요리를 하거나 여행을 다니는 평온한 일상을 누린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정답은 어쩌면 너무나 명백하고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감독은 부모의 선택을 비난하지 않는다. 좀 더 일찍 치료를 받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과거와 현재의 정신병동은 분명 다르다. 의학을 전공한 부모였기에 누구보다 당시 정신병동의 열악한 환경을 잘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감독은 선택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자신을 포함한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누나를 지켜내기 위해 애써온 시간들을 기록할 뿐이다. 오랜 질문과 뻔한 정답 사이에 놓인 지난한 망설임의 순간들을 꼼꼼히 기입할 뿐이다.
감독은 오랜 암 투병 끝에 병상에 누워 임종을 기다리는 마사코의 얼굴을 흐릿하게 처리한다. 다시 한번, 카메라는 다가가면서 멈칫 물러난다. 장례식 장면을 통해 시간순으로 정리된 마사코의 일대기는 막을 내리지만, 그녀가 감독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의 에필로그가 삽입되며 마침내 영화는 끝을 맺는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되찾고자 했던 그녀의 밝은 모습이다. 궁극적으로 영화가 선사하는 압도감은 조현병 환자와 가족이 함께 영위해 온 삶을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묵묵히 응시해 온 집요한 의지로부터 기인한다. 그리하여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정답을 찾는 질문이라기보다는 그 의지를 이끌며 윤리적 성찰을 던지는 질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