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처음   2026.7월호

날아갈 듯 피어있던 단청의 화려함이란!


강용면 조각가·설치미술가


무상_無常_(2000)ㅣ강용면 작



색을 잃어버린 시대, 흔히들 우리를 두고 '색이 사라진 민족'이라 평하곤 합니다. 출퇴근길 역이나 거리를 메운 현대인들의 의복을 보십시오. 서구식 미니멀리즘의 영향인지, 그저 유행을 따름인지 온통 무채색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처음부터 이토록 무미건조한 백색과 회색의 민족이었던가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역사를 돌이켜볼 때 고려시대야말로 화려한 색채의 정점을 찍었던, 가장 다채롭고 풍요로운 색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조선시대를 거치고,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서구 문명이 물밀듯 밀려오며, 어느덧 우리의 삶과 공간에서 색이 씻겨 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유년의 기억, 그 속에서 이토록 강렬하게 색을 고집하는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습니다. 내 고향 마을 가까운 곳에는 조계종 금산사 말사인 흥복사(興福寺)라는 호젓한 절집이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인 어린 시절, 저는 조모의 사십구재를 모시기 위해 이 흥복사를 찾았습니다. 제를 모두 마친 뒤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하늘, 그리고 그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갈 듯 피어있던 단청(丹靑)의 화려함이란! 어린 소년은 그 황홀한 색채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도취해 버렸습니다. 그때 심성에 깊이 아로새겨진 단청의 강렬한 잔상이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창작 활동을 지탱하는 거대한 원동력이 된 셈입니다.


단청과 오방색, 우주의 조화를 담은 한국의 단청이란 무엇입니까. 전통 목조건물의 벽과 기둥, 천장을 오방색으로 장식하는 한국 고유의 건축미술이자 지혜의 산물입니다. 궁궐과 사찰의 목재가 썩지 않도록 보호하는 실용적 기능은 기본이요, 실내와 실외의 자연을 하나로 엮어내는 기가 막힌 심미적 장치이기도 합니다. 


단청의 촘촘한 색들이 일으키는 착시현상은 밖의 풍경을 안으로 자연스럽게 담아내며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허뭅니다.그 바탕에는 우주와 자연의 조화를 상징하는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이 단단히 자리 잡고 있지요. 청색(靑), 동쪽과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상징합니다. 적색(赤), 남쪽과 뜨거운 생명력의 여름을 상징합니다. 황색(黃), 중앙이자 우주의 중심을 뜻합니다. 백색(白), 서쪽과 결실의 계절인 가을을 상징합니다. 흑색(黑), 북쪽과 휴식의 계절인 겨울을 뜻합니다. 여기에 연꽃, 국화, 모란 같은 자연의 문양과 용, 봉황, 천마, 사신(四神) 같은 상상의 영물들이 어우러집니다. 이 문양들은 단순한 장식을 넘어, 복을 기원하고 재앙을 물리치고자 했던 우리 선조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상징주의의 극치라 할 수 있습니다.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 작품 〈무상(無常)〉을 마주하면 황홀함이 절로 나옵니다. 〈무상(無常)〉이 보여주는 오방색은 단순히 과거의 색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국인의 정체성이자, 전통적 세계관을 현대적으로 번안해 내는 가장 명민한 도구입니다. 그렇게 1980년대 후반부터 전통문화의 원형에 오방색을 입힌 '채색 조각'이라는 영토를 개척해 왔습니다. 


서구 중심의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이 휩쓸고 간 현대미술의 한복판에서, 나는 당당하게 '한국성'의 정수를 선언합니다. 거칠고 단단한 나무를 깎아내고 그 위에 오방색의 강렬한 빛깔을 입힌 이 작품은, 우리 전통 단청의 미학을 현대 조각의 세련된 조형 언어로 재해석해 냈습니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 이 거대한 화면 위에서 그대로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잊고 있던 우리 안의 원시적 색채 본능을 깨우는 통쾌한 일침과도 같습니다.





강용면 

한국적 전통을 바탕으로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 아리울조형연구소 대표. 1991년부터 27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부산비엔날레 바다미술제, 국립현대미술관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