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5월호 통권 제 144호
봄이 오면 전주에는 영화제가 열린다. 이제는 너무 익숙한 이야기다. 지금은 시네필들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제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전주국제영화제도, 처음은 있었다. 곧 다가올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를 기다리며 이번 'N년전 오늘'에서는 그 출발점이었던 1회 영화제를 다시 떠올려본다.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는 ‘대안·독립·디지털’을 전면에 내세우며 출발했다. 2000년 4월 28일부터 5월 4일까지 열린 이 영화제에는 21개국 184편의 작품이 상영됐다. 주류 영화 중심의 산업 구조에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영화 문법과 유통 방식을 모색하려는 시도였다.
전주가 영화의 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움직임은 영화제 이전부터 이어져 왔다. 1997년 전주영상산업단지 조성 계획이 발표되며 지역을 영상산업의 거점으로 육성하려는 구상이 본격화됐고, 이는 영화제 출범의 배경이 됐다. 이미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자리 잡은 상황에서, 후발주자인 전주국제영화제는 대중성 대신 ‘비주류’라는 전략을 택했다. 프로그래머였던 김소영과 정성일은 실험성과 독립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개막작은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 폐막작은 스와 노부히로 감독의 <M/OTHER>. 이외 여러 섹션 구성 역시 '대안'과 '독립'이라는 방향성을 반영했다. ‘시네마스케이프’, ‘아시아 인디포럼’ 등은 당대 독립·실험영화를 집중 조명했으며, 밤샘 상영 프로그램이었던 ‘미드나잇 스페셜’은 이후 ‘불면의 밤’으로 이름을 바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첫 해 '미드나잇 스페셜'에서는 작년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던 벨라 타르 감독의 <사탄탱고>가 한국 최초로 공개되었다. 지난 1월 작고한 벨라 타르 감독을 기리며, 올해 영화제에서 <사탄탱고>가 특별 상영될 예정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시도는 영화제 특별기획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 ‘지역영화사-전주’다. 당시 청년 감독이었던 변영주와 시나리오 작가 송길한이 함께 만든 이 작품은 <피아골>, <아리랑> 등이 제작되며 한국영화사의 중요한 거점이었던 전주의 영화사를 되짚는다. 나아가 “왜 전주에서 국제영화제를 여는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답을 제시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같은 호에 변영주 감독의 인터뷰도 함께 실리며 이야기를 보탰다.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은 제작지원 프로젝트 ‘디지털 삼인삼색’이다. 세 명의 감독이 하나의 주제 아래 단편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영화 시대를 선도하려는 실험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이후 ‘전주프로젝트’로 확장되며 영화제를 대표하는 제작지원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디지털 필름 워크숍 등 교육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되며 창작 기반을 넓히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다만 초기 영화제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13만여 명의 관객과 82%의 관객 점유율을 기록하며 흥행에는 성공했다. 전통과 보수의 이미지가 강했던 도시에 젊고 동시대적인 문화 감각을 불어넣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뒤따랐다. 반면 영화적 실험성에 집중한 나머지 ‘축제성’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양조위와 장만옥의 방문이 대대적으로 홍보됐지만 실제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다.
가장 논쟁이 되었던 부분은 “무엇이 대안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당시 조직위는 대안영화의 의미에 관해 묻자 '이제껏 보아온 주류영화들과는 영화미학이나 영상기술 면에서 전혀 다른 매우 특별하고 새로운 그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저널은 그 특별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수요층이 불분명하다며, 첫회의 호기심을 지나 장기적인 관객을 확보하려면 '대안'이라는 주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시네필들만이 즐길 수 있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주국제영화제가 고집해 온 ‘대안’과 ‘독립’의 방향은 이후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점차 자리를 잡았다. 주류의 바깥에서 밀려난 영화들, 쉽게 상영 기회를 얻지 못했던 작품들, 그리고 비주류의 목소리를 담은 영화들이 관객과 만나는 장으로 기능해 왔다. 이제 또다시 영화제가 시작된다. 올해도, 또 한 번 '선을 넘을' 영화제를 기다린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