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문화예술 현장 뒤편의 가려진 이름들을 조명하는 <무대 뒤 사람들>. 두 번째 주인공은 영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을 찾아 입히는 사람, 전주영화제작소의 색보정 기사 임학수 씨다. 컬러리스트로도 불리며 무수한 색을 통해 영화의 분위기를 완성 짓는 이들은 작품의 마침표를 찍기 전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는다. 그러나 엔딩 크레딧에서는 촬영, 편집, 그래픽 등 익숙한 이름이 지나고 나서야 마지막쯤 등장하는 이름이다. 관객이 모르는 사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색보정 분야의 숨은 이야기를 전한다.
완성도를 결정짓는 색보정의 역할
색보정 기사 10년차에 접어든 베테랑 임학수 씨는 자신의 일을 이렇게 정의한다. ‘사람이 평상시 보고 느끼는 대로 영상을 다듬는 과정’과 같다고. 하나의 장면도 다른 날짜와 시간에 촬영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화면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색보정 작업은 이런 부분들을 섬세하게 조정해 영상이 어색하지 않도록 톤을 맞추고 적절한 색을 더하는 일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해야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감독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해가 조금만 이동해도 빛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일률적으로 다듬어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거예요. 90분 분량의 영화 한 편을 작업하는데 컷이 많게는 1,600개 이상 있거든요. 그 컷을 하나하나 만져야하니 색보정에만 최소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립니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인 만큼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전국적으로 영화계 색보정 전문 인력은 많지 않다. 개인이 고가의 장비를 구비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가장 큰 이유다. 대부분 전주영화제작소와 같은 지역 내 영화 관련 기관에 소속되어 보조 기사부터 경력을 쌓는 식이다. 비교적 생소한 영역이다 보니 최근에야 전문화된 직업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색보정은 1970~80년대 필름 시대부터 존재했다. 현상 과정에서 직접 색감을 조절하는 등 아날로그 방식을 이어오다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며 지금만큼 발전했다.
색보정 전( 위)과 후 변화
‘최선’의 답을 찾아가는 작업
대학에서 영화과를 전공한 그는 2009년 전주영화제작소가 개관할 당시 시작을 함께한 멤버다. 영화관에서 근무하며 이후 장비 관리부터 촬영, 편집, 음향 등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분야를 경험했다. 후반작업에 발을 들이며 색보정에 관심을 가진 그는 그렇게 빛과 색을 다루는 사람으로 영화와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아지트와 같은 색보정실은 마치 작은 극장을 옮겨놓은 것처럼 생겼다. 실제 영화관의 환경과 비슷하도록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 커다란 스크린을 두고 작업한다. 스크린 상에 색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는 1년에 8~10편 정도의 영화를 작업한다. 전주영화제작소의 후반제작지원사업을 통해 선정된 작품들이다. 규모가 큰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영화나 저예산 영화를 주로 다루다보니 그의 손을 거쳐 작품의 완성도가 더해지는 일은 더욱 큰 보람으로 다가온다.
모든 작업이 어렵지만 특히 다큐멘터리 영화에는 많은 시간과 고민이 들어간다. 극영화는 대부분 한두 달 안에 촬영이 이루어지지만, 다큐멘터리는 짧게는 1년에서 수년에 걸쳐 촬영을 하기 때문에 데이터를 정리하는 일부터 만만치 않다. 색보정은 답이 정해져있지 않은 작업이기에 다양한 시도를 통해 최선의 답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전주영화제작소 색보정실
색보정은 할 때마다 새로운 것 같아요. 모든 컷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이 장면은 어떻게 살릴까?’, ‘여기에는 어떤 색이 어울릴까?’ 늘 고민이 따르죠. 근데 많은 시도를 해봐도 대부분 처음 생각했던 느낌이 결국은 제일 좋더라고요.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그래도 제 손에서 최종 파일이 만들어지고 감독님에게 전달되었을 때 뿌듯함이 큽니다.
색보정의 영역은 티 나지 않을 때 더 빛난다. 그는 관객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영화의 색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일이 곧 자신의 역할이라고 전한다.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을 찾아주는 퍼스널컬러처럼, 영화에 딱 맞는 퍼스널컬러는 흥미로운 색보정의 세계를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글ㆍ사진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