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 사람들  2025.3월호

가장 어두운 자리에서 무대를 밝혀주는 이 사람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조명감독 박성진




캄캄한 무대, 빛이 들어오면 비로소 공연은 시작된다. 공연장의 빛과 어둠을 만드는 사람. 20년 넘게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하 전당)에서 조명을 담당해 온 박성진 조명감독을 만났다. 그가 하는 일은 모두 조명과 관련된 일이다. 조명기의 관리와 감독, 안전 점검 등 조명과 관련된 모든 일은 물론 공연에 필요한 조명 디자인까지 직접 프로그래밍한다.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 조명으로 무대 위의 배우와 장치가 빛을 내고, 관객들의 시선은 그가 만들어낸 빛으로 무대를 만난다. 



무대는 도화지, 조명은 물감

그에게 무대란 도화지와도 같다. 조명기를 이용하여 적절한 색을 입히고, 명암을 더한다. 무대를 이루는 것은 조명 외에도 무대, 음향 등 많은 분야가 있지만 그에겐 유독 조명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배우와 호흡을 같이 하며 무대 위에서 직접 연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침묵과 두려움이 있는 밤이면 좋겠다'는 연출가의 말을 듣게 되면 가장 적절한 어둠을 만들어내려고 고민합니다. 이런저런 색을 섞고 각도를 바꿔가며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죠. 뚜렷한 정답이 없으니 힘들지만, 이게 무대 조명의 매력이기도 해요. 다른 무대 분야보다 예술적인 자질이 더 필요한 부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태권유랑단 녹두>의 사발통문 조명




무대 하나를 올리기까지 수많은 회의와 수정이 반복된다. 최근 공연한 <태권유랑단 녹두>는 유독 손이 많이 간 작품이다.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전당에서 제작한 이 공연. 전봉준을 비추는 사발통문, 일본군 순사 뒤로 올라가는 일장기 등 영상처럼 보이는 연출들은 그의 아이디어다. 정확한 밝기와 크기 조절을 위해 직접 맞춤 제작한 조명으로 표현한 것. 태권도 격파 장면이 많은 공연 특성상 배우들과 함께 조명에 눈이 부시지는 않는지 확인하는 과정도 거쳤다. 

커튼콜 이후에도 조명감독의 일은 계속된다. 조명기를 원래 자리로 돌려놓고 무대를 다시 흰 도화지로 만드는 일이 남아있다. 조명기의 관리도 그의 일이다. 검정 방진복을 입고 무대 천장에 올라 각종 장비들의 안전을 점검한다. 때문에 전기에 대한 지식도 필수다. 


끊임없이 발전하는 조명의 세계 

지금은 조명팀을 이끄는 베테랑 감독이지만 그도 아르바이트생이던 시절이 있었다. 열아홉 살, 당시 개관 준비가 한창이던 전당에서 우연히 일하게 되었다. 새 조명기의 포장지를 뜯고 설치하는 일부터 돕기 시작해 점점 조명을 다루는 것에 흥미가 생겼다. 이를 눈치챈 당시 조명감독이 조명을 계속해 보지 않겠냐며 물었다.


개관 공연으로 뮤지컬을 했었는데, 그때 태어나서 뮤지컬을 처음 접한 거예요. 무대 옆에서 보는데 되게 좋고... 충격적이었어요. 그날 저녁에 회식 자리에 따라갔는데 감독님들이 너무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나도 저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사회복지학과를 지망하던 고등학생은 갑자기 연극과 입시를 치렀다. 책을 읽듯 연기했던 실기 시험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면접관에게는 조명감독을 꿈꾼다 말하고 합격했다. 입학과 동시에 전당에서 일을 시작했다. 10여 년 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자 기획 공연 <헬로우 인디>를 제작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같은 프로그램들을 보며 하나하나 공부했던 애착이 많이 간 공연이다. <헬로우 인디>는 곧 전당의 대표적인 기획 공연 <아트스테이지 소리>로 발전했다. 자신만의 투어팀을 꾸리는 아티스트들도 전당 공연만큼은 믿고 맡기겠다고 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가 인정받는 감독이 된 배경에는 조명에 대한 꾸준한 사랑과 공부가 있다. 전당의 조명팀은 박 감독의 주도로 함께 서울의 대형 공연을 보고 조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진다. 연이 있는 조명감독의 공연이라면 직접 백스테이지에 들어가 보기도 한다. 최근에는 환경 문제로 인해 기존 조명들이 LED 조명으로 바뀌는 일로 홍콩에 다녀왔다. 조명 장비와 기술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기에 공부를 멈출 수 없다. 조명 하나만으로도 공연의 완성도는 크게 달라진다. 하지만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조명은 뒷순위로 미뤄지는 것이 지역 공연계의 현실. 그는 앞으로도 무대조명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며 지역의 공연예술을 발전시키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