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 사람들  2025.7월호

스크린 너머, 감정을 이어주는 음악

음악감독 오은하 




음악은 언어로는 다 담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을 단번에 끌어올린다.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예술이지만, 다른 매체와 만나면 그 울림은 더욱 깊어진다. 특히 영상과 어우러질 때, 음악은 장면의 분위기를 만들고 서사의 여운을 남긴다. 


얼마 전부터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 자주 눈에 띄는 이름이 있다. 음악감독 오은하 씨다. 그는 영화, 공연, 미디어 파사드 등 장르를 넘나들며 음악을 덧입혀 예술에 감정의 결을 더해왔다. 최근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아따맘마> 재더빙판, <신비아파트> 시리즈처럼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작품들에도 참여하며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쌓아가고 있다. 


그는 피아노로 음악을 시작했다. 버클리 음대에서 재즈 피아노를 전공했으며, 지금도 피아니스트로 활발히 무대에 오른다. 하지만 유학 중 손을 다쳐 한동안 연주를 중단한 채 한국에 머물러야 했던 시기가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좌절하던 그때, 마음 한편에 오랜 시간 품어온 영화음악에 대한 꿈이 다시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9살 무렵 TV의 토요명화극장에서 흘러나온 <사랑과 영혼>을 보고 ‘영화란 이런 것!’이라고 느꼈다. 매일 도서관에 들러 고전영화를 찾아 보았고, 특히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들으며 언젠가 자신도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이후 작곡으로 전공을 바꿔 유학을 마쳤다. 한국에 돌아온 건 2016년. 처음 만난 영상 작업은 미디어 파사드였다. 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미디어 아트 속에서, 비발디의 ‘사계’를 주제로 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 뒤로 전주를 기반으로 영화, 애니메이션, 공연 등 다양한 장르에서 꾸준히 작업해 왔다. 특히 <너에게 닿기를>(연출 오재욱), <마음에 들다>(연출 강지이) 등 지역 감독들과 함께 영화음악을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의 작업을 인정받듯 2022년 '제2회 전주영화인상'에서 기술창의상 음악부문을 수상하며 뜻깊은 성과를 거뒀다. 최근에는 지난 호 문화저널에도 소개되었던 김태휘 감독의 영화 <빈집의 연인들>에서 처음으로 장편 음악감독을 맡았다. 







"영화음악을 하면서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들을 많이 연구하고 있어요. 주인공의 쓸쓸함을 표현해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쓸쓸함과 슬픔은 다르잖아요. 분명히 다른 감정인데 음악으로 표현하려니까 잘 안 되는 거예요. 주변에 음악을 들려주면서 '이거 쓸쓸해, 아님 슬퍼?' 이렇게 계속 물어보고 다녔어요. 그러면서 곡도 많이 버렸고요." 


작업은 시나리오와 콘티를 검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작품의 분위기와 캐릭터의 감정선 등을 세밀하게 분석해 전체적인 콘셉트를 잡고, 가편집본을 받은 뒤 본격적인 작곡에 들어간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가상 악기를 활용하거나, 필요에 따라 실제 악기를 녹음하기도 한다. 음악 연출까지 맡는 경우에는 가수와 연주자를 섭외하고 녹음, 믹싱, 마스터링 디렉팅까지 음악의 모든 과정을 총괄한다. 


무대와 스크린 너머, 평범한 일상의 순간에도 그의 음악은 흘러나온다. 충남 지역 소방서에 울려 퍼지는 출동 벨소리 역시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전의 벨소리는 뱃고동, 나팔 소리 같은 단순한 반복음이어서 소방관들이 자택 초인종이나 식당의 호출벨 소리만 들어도 불안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경고음의 기능은 유지하면서도 심리적 부담은 덜어주는 부드러운 벨소리를 만들었다. 10초 남짓한 짧은 음악 안에 화재, 구조, 구급, 생활안전 등 네 가지 출동 상황을 명확히 구분해야 했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하지만 소방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는 점에서만큼은 잊을 수 없는 작업이다. 


그는 스스로 ‘음악에게 빚졌다’는 말을 자주 한다. 별것 아닌 사람임에도 음악 덕분에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관객들을 만나며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음악은 그가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이자, 자신을 가장 진실하게 설명할 수 있는 언어다. 피아노 앞에 앉아 조용히 건반을 누르며, 오늘도 스크린 너머 마음을 전한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