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 사람들  2025.8월호

그곳이 어디든, 영화가 될 수 있다

로케이션 매니저 정동민


전주영상위원회 촬영지원팀 정동민 팀장(왼쪽 두 번째)과 팀원들



많은 사랑을 받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속 중년의 애순과 관식이 걷던 거리. 90년대 서울의 거리처럼 보이던 그곳은 전주 팔달로의 평범한 거리다. 우리 주변의 익숙한 공간을 스크린 너머의 세상과 연결하는 사람. 주인공이 서있는 모든 배경의 처음과 끝에는 로케이션 매니저가 있다. 전북은 현재 전주영상위원회를 통해 많은 작품의 로케이션 유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전주영상위원회 촬영지원팀장이자 오랜 시간 지역의 장소를 수집하고 있는 로케이션 매니저 정동민 씨를 만났다. 


장소 찾기보다 중요한 소통의 힘

로케이션 매니저는 흔히 ‘장면에 어울리는 장소를 찾아내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좋은 장소를 찾는 일만큼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소통이다. 연출자와의 소통을 시작으로, 장소 섭외부터 촬영 협조, 교통, 숙박, 민원 관리까지 모든 과정은 여러 사람과의 소통으로 이어진다. 준비 단계에만 이러한 소통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직접 촬영 현장에 나가 훼손되는 시설물은 없는지, 약속한 대관 시간이 잘 지켜지는지 관리하는 역할부터 촬영 종료 후 현장 정리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정동민 씨는 전주영상위원회에 입사하며 로케이션 매니저의 길에 들어선지 올해로 9년차가 되었다. 짧지 않은 시간 현장을 누비며 수많은 작품과 작업했지만 소통은 여전히 어려운 숙제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 내가 감독이 됐다는 가정을 하면서 장소를 찾지만 감독님들의 눈과 제 눈은 다르다보니 협의하고 소통하는 과정은 필수적이에요. 장소를 섭외하며 아무리 이야기를 잘 나누고 서류를 주고받았어도 막상 현장에서는 바뀌는 경우가 많거든요. 제작진과 장소 담당자 사이에서 그런 부분을 조율하는 게 쉽지가 않죠. 그래서 현장에 나가면 늘 긴장을 하고, 화도 많이 내고 사과도 많이 하러 다녀요.”


전주영상위원회에서는 영화와 드라마뿐 아니라 광고나 뮤직비디오, 예능 프로그램 등 모든 영상물을 대상으로 장소 섭외를 진행하고 있다. 전체의 80% 이상을 전주에서 촬영한 드라마 ‘당신의 맛’을 비롯한 ‘오징어게임’, ‘정년이’, ‘베테랑2’ 등의 대작은 물론 지역 감독들의 작품까지 매월 10편에서 많게는 30편 이상의 로케이션을 담당하고 있다. 




김제 새만금간척지에서 진행한 영화 '보고타' 촬영 현장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기 

지역의 숨은 명소를 발굴해 내는 그는 14개 지역을 매일 부지런히 여행한다. 그가 말하는 전북의 매력은 아주 오랜 과거부터 8~90년대의 모습, 현대의 모습까지 다양한 시대를 비출 수 있는 도시라는 점이다. 같은 장소가 전혀 다른 장면을 만들어내는 일도 흥미로운 작업 중 하나다. 버려진 폐건물이 그대로 무서운 영화에 활용되기도 하고 새로운 세트장으로 꾸며져 따뜻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장소라는 건 시간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에 알던 곳도 늘 다시 찾아야 한다. 어떤 장면이든 완벽하게 실현된 공간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계속해서 발을 움직이고 공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적절한 공간을 찾은 다음에는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듯, 건물 하나를 여러 시선으로 볼 줄 알아야 좋은 장면을 완성할 수 있다. 


“작년에 개봉한 <탈주>라는 영화가 코로나 시기 촬영을 진행하며 해외에 나가지 못하게 됐어요. 그때 비슷한 장소를 찾는다는 문의가 왔는데 고민도 안하고 김제 새만금간척지를 떠올렸죠. 제작팀과 함께 7시간 정도를 돌아다니고 거의 바로 촬영 확정이 이루어졌어요. 감독님도 장소가 너무 마음에 든다고 말씀하셔서 뿌듯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내가 찾은 장소에서 실제 촬영이 이루어지고, 그 장면을 화면으로 볼 때의 성취감으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더 많은 작품 속 전북을 담기 위해

모두가 화면 속 주인공을 볼 때, 그는 인물 뒤에 가려진 배경을 본다. 장소마다 자신과 팀원들이 현장에 나가 고생했던 과정들이 눈앞에 그려진다. 현재 전주영상위원회 촬영지원팀은 그를 포함해 4명의 팀원이 함께하고 있다. 갈수록 전북에서 촬영되는 작품이 늘고 있는 동시에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사업도 있기에 지금의 인력으로는 어려움이 많다. 그의 바람은 촬영지로서 지역이 성장하고 있는 만큼 안정적으로 조직이 운영될 수 있는 인력과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다. 이는 더 많은 작품이 지역에서 촬영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오늘도 새로운 장소를 찾아 나선다. 로케이션 매니저는 가만히 앉아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가 움직인 걸음만큼, 도시 구석구석에 새로운 이야기가 더해지고 있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