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 사람들  2025.9월호

작품과 관객 사이 길을 밝히는 안내자

큐레이터 신정자 




넓은 전시장에 들어설 때, 바닥에 그려진 화살표를 따라 걸으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작품과 관람객이 잘 만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하는 사람, 큐레이터 덕분이다. 큐레이터 혹은 학예사라 불리는 이들은 전시의 기획 단계부터 마무리까지 모든 과정에 함께한다. 익산을 대표하는 사립 미술관으로, 10여 년 넘게 문을 열고 있는 W미술관. 지역의 작은 미술관이 자리를 지키기까지 긴 시간 안내자의 역할을 도맡은 사람이 있다. 학예연구실장 신정자 씨다. 관객이 주목하는 창작자와 예술가, 그 뒤편에는 늘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가 있다. 


지역 미술을 사랑한 화가이자 큐레이터

W미술관은 2008년 ‘W갤러리’로 먼저 문을 열었다. 이후 2013년, 정식 미술관으로 등록되어 ‘W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익산을 대표하는 사립 미술관으로 자리 잡았다. 신정자 씨는 큐레이터가 되기 이전부터 지역의 서양화가로 활동해왔다. 익산미술협회 회장을 지내는 등 한 명의 작가를 넘어 지역 미술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까 늘 고민했다. 그는 작가로서 현장에서 느낀 감각과 네트워크, 전시 경험을 활용해 지역과 예술을 연결하는 일에 앞장서고자 했다. 2014년 학예사 자격증을 취득해 W미술관과 인연을 맺으며 개관 초기부터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미술관 안에서 그가 맡고 있는 일은 정말 다양하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업무는 전시 기획이다. 주제 발굴부터 작가 선정, 도록 제작, 전시 운영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없다. 미술관이 보유한 소장품과 새롭게 기증되는 작품들의 관리도 함께한다. 특히 지역과 관련된 역사·문화 소장품이 많기 때문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이외에도 교육 프로그램 운영, 인력 관리 등 챙겨야 할 업무가 한두 개가 아니다. 


그가 꼽는 미술관의 대표 전시 중 하나는 ‘작고작가전’ 시리즈다. 익산은 전북 근현대 미술의 산실과도 같은 역할을 해왔다. 실제로 익산과 원광대학교를 중심으로 배출된 작가들이 많다. 그는 지역 미술관이 해야 할 역할이 바로 이런 작가들을 조명하고 알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2023년 선보인 <끝나지 않은 삶:영원의 기록>을 비롯해, 지난해에는 익산에 연고를 가진 작가 중 한국화와 서예를 정착시킨 1,2세대 작가를 소개하는 <묵적 : 영혼(靈魂)의 글씨, 영원(永遠)한 기록> 등을 기획하며 지역에 뿌리를 둔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전했다. 







“W미술관은 규모로만 보면 작은 사립미술관이지만, 그 안에 담긴 가치는 절대 작지 않습니다. 지역 작가의 첫 전시 무대가 되기도 하고, 경력 있는 작가에게는 새로운 실험을 시도할 기회가 되기도 하죠. 작가와 관람객이 전시장에서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고, 주민들이 교육이나 문화 행사에 자연스럽게 참여하며 서로 안부를 나누는 모습은 대형 미술관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에요. 지역의 숨은 예술가와 관람객이 서로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문화가 싹트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그게 이곳만이 가진 가장 큰 특징입니다. 저는 그러한 마음으로 아침마다 전시장의 불을 켜고 있어요.” 


‘함께 생각하고 나누는 장’을 향해 

인력과 예산이 제한된 지역 사립미술관에서는 일반적으로 학예사에게 요구되는 역량보다 훨씬 넓고 유연한 역할이 요구된다. 홍보 마케팅과 현장 진행, 심지어는 미술관의 운영과 재정까지 살필 수 있는 전문성과 현장성을 동시에 갖춘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학예사’라는 수식어만큼 ‘지역’이라는 수식어도 중요하기에 그만큼 보람도 더 크다. 지역 주민, 예술가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작품과 관람객을 연결하는 일은 스스로를 ‘지역의 문화 동반자’로서 한 단계 나아가게 만든다. 


“저는 미술관이 단순히 ‘작품을 보는 곳’에 머물지 않기를 바랍니다.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는 순간뿐 아니라, 그 여운을 가지고 일상에 돌아가서도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작품을 둘러보시다가 궁금한 점이나 느낀 점이 있으면 언제든 저나 식구들에게 말을 걸어주세요. 우리가 준비한 전시는 ‘정답을 알려주는 수업’이 아니라, ‘함께 생각하고 나누는 장’을 만드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좋은 전시와 교육프로그램이 단발적인 이벤트로 그치지 않도록, ‘하고 싶은 기획’과 ‘할 수 있는 기획’ 사이에서 그는 고민과 절충을 계속하고 있다. 관람객과 예술가, 그리고 미술관이 서로의 삶 속에서 오래도록 기억되길 꿈꾸며 그는 오늘도 묵묵히 전시장이 불을 밝힌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