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 사람들  2025.12월호

사람과 악기, 그 관계를 잇다 

악기계 고민성




악기는 예민하다. 다르게 말하면 섬세하다. 웅장하고 화려한 연주가 온전히 관객에게 닿기 위해서는 그만큼 악기의 컨디션을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 악기의 울림은 보이지 않는 손끝에서부터 시작된다. 오케스트라의 수십 종 악기를 매일 점검하며, 좋은 소리가 나도록 전 과정을 책임지는 사람이 있다. 바로 악기계다. 클래식 공연을 즐겨보는 사람들에게도 다소 생소한 직업인 악기계. 그러나 오케스트라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사람과 악기, 그 사이를 잇는 군산시립교향악단(이하 군산시향)의 악기계 고민성 씨를 만났다.


아름다운 울림을 만드는 기술   

그의 하루 일과는 악기실의 온도와 습도를 관리하는 일로 시작된다. 공연이 없는 날에도 악기실의 온도가 적정한지, 습도가 맞는지 계속 확인해야 한다. 악기를 보관하는 적정 온도는 20도에서 23도 사이로, 이 범위를 벗어나면 갈라지거나 팽창하는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특히 군산시향은 연습실이 지하에 있어 장마철이면 악기가 더 취약해지기 때문에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곡에 따라 필요한 악기 편성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일 중 하나다. 지휘자가 현대음악을 선호하느냐, 고전이나 낭만을 선호하느냐에 따라 자주 사용하는 악기가 달라진다. 단체에 없는 악기가 필요한 곡을 연주해야하는 경우에는 외부에서 대여해야 한다. 전주시향 등 인근 교향악단에 연락해 협조 공문을 주고받고, 직접 찾아가 악기를 빌려오고 공연 후 다시 반납하는 것까지가 그의 영역이다. 


클래식 악기는 매우 섬세하고 고가이기 때문에, 잠시 들어서 옮길 때도 어느 부분을 잡아야 하는지가 다 정해져 있어요. 그래서 저와 같은 음대 출신이 이 일을 맡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클래식에 대한 이해가 있고, 악기마다의 특성을 잘 알아야 하니까요. 악기를 많이 옮길 일이 있을 때는 인근 군산대 음대 학생들이랑 같이 움직이기도 합니다.


보유하고 있는 악기에 탈은 없는지도 주기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콘트라베이스와 같은 악기는 2년에 한 번 정도 서울로 보내 전체 수리를 한다. 하지만 아무리 관리와 점검을 꾸준히 하더라도 한계는 있다. 오래 쓰다 보면 연필이나 펜처럼 닳고 노후되는 것이 악기. 그런 악기는 폐기 절차를 밟고, 군산시에 예산을 요청하여 새로 구입한다. 


군산시향은 한 달에 한 번 정기공연을 가지고 있다. 공연 셋업에는 보통 3일 정도가 필요하다. 지난 공연이 차이콥스키였고 이번은 베토벤을 연주한다면, 울림과 음향 환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각 파트와 지휘자의 위치 등을 하나씩 확인해야 하고, 단원들은 리허설을 통해 자신의 소리뿐 아니라 전체 하모니를 들으며 균형을 점검한다. 특정 파트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문제가 생기면 배치를 처음부터 다시 조정해야 한다. 공연이 무사히 끝날 때까지 그는 무대에서 단원들의 불편 사항, 위치 조정, 악기 관련 문제를 하나씩 살피며 전 과정을 뒷받침한다.





군산시립교향악단




도시의 선율이 끊기지 않도록 

고민성 악기계는 대학시절 음대에서 트럼본을 전공했다. 대학원에서는 예술경영을 공부하며 마케팅과 홍보 분야까지 경험을 넓혔다. 덕분에 군산시향에서 악기와 홍보를 함께 담당하고 있다. 고향은 충남 예산이며, 젊은 시절은 대전에서 보낸 충청도 토박이다. 연고도 없이 찾아온 낯선 도시였지만, 바다 사람들 특유의 정과 인심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어느덧 15년을 이곳에서 악기계로 살았다. 


본래 업무는 악기계이지만, 인력이 부족한 지방교향악단 특성상 다양한 역할을 도맡아 한다. 기본적인 홍보 업무는 물론 찾아가는 음악회에서는 사회자로 서기도 하고, 때로는 협연자로 무대에 올랐다. 공연 당일에는 티켓박스에서 티켓팅을 지원하고, 홈페이지 관리까지 챙긴다. 하는 일이 많아 힘들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웅장한 울림이 관객의 귀와 마음에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그 순간 자체가 큰 보람이고 감동이에요. 한 번은 말러 교향곡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객원까지 80명이 넘는 사람이 무대에 올라가는 대규모 편성이었어요. 1200석의 예당 객석이 꽉 차있었고요. 그 울림을 현장에서 들었을 때 정말 감격스러웠죠.


군산시향의 규모는 대도시 교향악단에 비하면 크지 않다. 작은 도시일수록 문화예술이 이어지기 쉽지 않기 때문에, 군산시향과 같은 시립예술단들의 공연은 곧 도시의 문화적 기반을 지켜나가는 일이 된다. 지금 군산시향은 크리스마스를 기념한 송년연주회를 준비하고 있다. 사랑과 설렘이 흐르는 따뜻한 곡들이 연주될 예정이다. 연말의 공기가 천천히 스며드는 무대 뒤에서, 고민성 악기계는 오늘도 악기들을 매만진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