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진문화재단과 ‘전주 판소리 완창무대’
전주는 판소리의 도시다. 조선 후기 판소리 축제였던 전주대사습놀이가 복원되어 열리고 있고, 전북특별자치도립국악원, 전주시립국악단이 있다. 그리고 판소리에 진심인 우진문화재단이 있다. 우진문화재단은 설립 초기부터 판소리에 대한 큰 관심을 보여왔다. 그 예가 바로 1991년부터 명칭을 바꿔가며 지속되고 있는 판소리 공연이다.
1991년 ‘판소리 다섯 바탕의 멋’으로 시작된 판소리 다섯 바탕 공연은 전주의 판소리 공연을 대표하는 공연으로 성장해 왔다. 한편 전주시에서도 2017년부터 ‘전주 판소리 완창무대’라는 판소리 공연을 주최해 왔는데, 2019년까지는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가 주관하다가, 2020년부터는 우진문화재단이 주관하고 있다. ‘판소리 다섯 바탕의 멋’과 ‘전주 판소리 완창무대’를 합해서 36년째나 계속된 우진문화재단의 판소리 공연은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에도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다. 역시 전주는 판소리의 도시인 것이다.
‘전주 판소리 완창무대’는 첫 7년 동안은 장소를 바꿔가며 가을에 열리다가, 여덟 번째인 2024년부터는 봄철인 3, 4월에 열리고 있다. 새로운 봄을 판소리와 함께 맞이한다는 것도 전주다운 발상으로 보인다.

김찬미의 <수궁가>
이번 ‘전주 판소리 완창무대’는 김찬미 명창의 <수궁가>로 문을 열었다. 김찬미는 이제 갓 50에 들어선 중견 소리꾼으로 정읍시립국악단 창극부 상임단원이다. 소리꾼의 50대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겪어 삶의 깊은 맛을 표현할 수 있는 때이다. 소리꾼의 전성기가 이때가 아닌가 싶다.
김찬미는 어려서 오정숙의 제자 김명신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우다가 오정숙 명창의 제자가 되어 판소리 다섯 바탕을 다 배웠다. 오정숙 명창은 이른바 동초제 판소리를 만든 김연수 명창의 수제자였다. 동초제 판소리를 만들어낸 김연수는 한평생을 창극에 바친 사람이다. 우리나라 창극은 김연수에 의해서 발전해 왔다고 해도 좋을 만큼, 1930년대 창극의 초창기부터 별세하기까지 창극을 대표하던 소리꾼이었다. 그런 만큼 김연수의 판소리는 극이라는 관점에서 재창조, 재해석된 소리이다. 따라서 동초제 판소리에서는 연극적 표현을 잘해야만 한다. 김연수, 오정숙은 바로 연극적 표현에 뛰어나서 한 시대를 울린 명창이 되었다.
김찬미는 오랫동안 오정숙의 소리를 배웠던 만큼 극적 표현에 능하다. 한 사람에게 오래 배우다 보면 제자는 스승의 성음(목소리의 질과 발성법을 아우르는 말)과 너름새를 닮게 된다. 김찬미는 오정숙의 성음과 너름새를 빼박은 듯이 닮았다. 물론 오정숙만큼 청중을 완전히 휘어잡는 능력에서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는 시간이 가면서 더 깊어질 것이다.
동초제 판소리는 장단의 엇부침을 극단까지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수궁가>의 ‘약성가’는 판소리 엇부침의 최고봉이라고 할 만하다. 얽히고설킨 실타래와 같아서 어디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감당이 안 될 때가 많다. 김찬미는 이 대목을 완벽하게 풀어냈다. 참으로 중견소리꾼다운 능력이 아닐 수 없다.
김찬미의 목소리는 맑고 깨끗하다. 이른바 천구성을 가졌다. 성음의 무게가 다소 떨어지는 느낌이 있지만, 판소리에서 맑고 깨끗한 목을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다. 김찬미는 어렸을 적에 미세한 발발성(지나치게 많이 떨리는 소리)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필자가 오정숙 선생께 이 점을 지적했더니 ‘소리를 열심히 하면 사라진다’고 했다. 이번에 들어보니 발발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동안 김찬미 명창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짐작이 되었다. 좋은 스승, 좋은 목에 성실함마저 갖추었으니 김찬미의 소리꾼으로서의 내일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김정훈의 <춘향가>
국립민속국악원 창극단 상임단원 김정훈은 젊은 소리꾼이다. 이제 삼십 대 중반밖에 안 되었으니, 그동안의 ‘전주 판소리 완창무대’ 출연진에 비하면 언감생심 이 무대에 서겠다고 말할 수조차 없다. 그런데도 김정훈은 2023년에 이어 이 무대가 두 번째이다. 작년에는 광주 임방울국악제에서 대통령상을 타기도 했다. 이 정도면 그 실력을 알만하지 않은가.
김정훈이 부르는 <춘향가>는 김세종제 <춘향가>이다. 김세종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춘향가>란 뜻이다. 김세종은 전북 순창군 출신의 동편제 소리꾼으로, 고창 신재효의 사랑에서 판소리를 지도했던 사람이다. 이 <춘향가>는 정응민에 의해 전남 보성으로 흘러들었고, 정응민을 통해 정권진, 성우향, 성창순, 조상현 등에게 이어져서, 우리나라 <춘향가>를 대표하는 소리가 되었다. 김정훈은 조상현의 제자인 박지윤을 통해 이 소리를 배웠다.
동초제 판소리가 연극적 특성을 극대화한 소리라면 김세종제 <춘향가>는 다양한 성음의 변화에 중점을 두는 소리이다. 그래서 다양한 국면의 미묘한 감정 표현에 능하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김세종제 <춘향가>는 다른 말로 하면 판소리의 음악성을 극대화한 소리라고 할 수 있다.

박지윤은 조상현의 제자 중에서도 가장 섬세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다. 조상현의 <춘향가>는 남자 소리인 만큼 수리성의 강하고 힘찬 맛이 있다. 박지윤은 맑고, 곱고, 여자의 목소리로는 최고라는 애원성에 섬세한 감정 표현까지 갖추었다. 그리하여 박지윤의 <춘향가>는 당차고 고운 여인의 소리가 되었다.
이러한 소리를 그대로 이어받은 김정훈의 소리는 남자 소리 치고는 여성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곱고 아름답게만 소리를 하면 안 된다. 남자의 소리는 남자다운, 강하고 굳센 맛이 있어야 한다. 여자의 소리가 이별의 슬픔을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면, 남자의 소리는 ‘적성가’, ‘나귀 안장’, ‘어사 남원으로 내려오는 데’, ‘박석고개’, ‘어사출또’ 등에서 빛을 발해야 한다. 김정훈의 소리는 아직 스승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김정훈이 스승의 그늘을 벗어나 진정한 대가의 길로 빨리 나아가기를 바란다.
맺음말
2026 ‘전주 판소리 완창무대’는 세대교체의 흐름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 판소리는 보다 젊고 패기 있는 신인들의 무대로 바뀌고 있다. 당연하고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젊다는 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뜻이며, 보다 나은 미래가 앞에 있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미래가 어떠할지는 본인들에게 매여 있다. 여기에 판소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것은 자명한 일이다.
최동현
전북 순창 출신으로 전북대를 졸업하고 군산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오랫동안 판소리 연구에 전념하여 70여 권의 저서와 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창작·연구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판소리학회·전북작가회의·전북민예총 회장,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