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와 비평 2026.5월호
완성도 높은 희곡, 본질 잊은 듯한 연기
제42회 전북연극제ㅣ극단 새로고침의 <METEOR: 떨어지는 별>과 예술집단 고하의 <오얏꽃이 피었다>
조민철 (사)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
제42회 전북연극제ㅣ극단 새로고침의 <METEOR: 떨어지는 별>과 예술집단 고하의 <오얏꽃이 피었다>
조민철 (사)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
예술집단 고하 <오얏꽃이 피었다>
전북연극제와 대한민국연극제
1983년 문예진흥원과 한국연극협회가 주최하고 각 시·도에서 예선을 거친 대표 극단 12개 단체가 참가하는 경연형식으로 부산에서 ‘전국지방연극제’가 출범하였다. 이후 1988년에는 ‘전국연극제’로, 2016년부터는 ‘대한민국연극제’로 개칭하고 몇 년 후 서울 대표까지 포함해 전국 16개 시·도를 망라하는 대한민국 대표 연극제가 되었다. 전북은 1985년, 2002년, 2014년에 전주와 군산에서 전국연극제를 개최한 바 있다. 또한 대통령상 5회 수상은 전국 최상위에 해당하는 일로 이는 전북 연극인들의 자부심을 대변해 준다하겠다. 이번 ‘제42회 전북연극제’는 ‘제44회 대한민국연극제 부산’에 출전할 전북특별자치도의 대표 극단을 선정하는 자리기도 했다.
연극제의 성과
연극제는 출전 극단들의 치열하고도 최선을 다한 결과물을 선보여 관객들의 큰 호응 속에서 막을 내렸다. 태부족인 연극제 예산과 여러 이유로 비록 2개 극단만 출전한 연극제였지만 출품된 작품들은 여러 단체의 규합과 혼신의 제작 열정 등으로 전북연극의 수준을 한 차원 올려준 역작들이었고, 만석으로 화답한 관객들의 반응 역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도출하여 좋은 예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극축전이었다 하겠다.
먼저, 마땅히 칭찬받아야 할 참가 극단이 이룬 성과는 다음과 같다. 두 편 모두 자체 창작극이면서 극의 완성도를 최상으로 구현했다는 점이다. 또한 출연진, 스태프 등 전 분야에 걸쳐 전북연극의 현재와 미래를 담보할 능력자들의 발굴이 눈에 띄는 점이라 하겠다.
출전 극단의 작품 세평
두 극단 모두의 화두는 인간의 선택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극단 새로고침’의 공연은 현재를 살고 있는 인간이 다가올 재앙에 대해 양극단의 선택을 강요받을 때를 가정한다. 점점 다가오는 실체로 인한 두려움과 혼란 가운데 이제껏 지녀왔던 가치관이 흔들리며 스스로는 답을 구하지 못하고 관객에게 현답을 직접 구하기까지 하는 치밀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더해 시시각각 치솟는 기계 수치는 긴장을 유발하는 촉매로 작용한다. 새로운 형식과 오브제로 여전히 보수적인 지금의 연극적 시선을 극 중 내내 들쑤신다. 작가와 연출을 겸한 정준모의 능력에서 비롯된 결과다. 다만, 비교적 완성도 높은 희곡임에도 극작과 연출을 겸한 경우는 신박한 구조와 특이한 형식에도 불구하고 공연에서 그 확장성과 새로운 시각을 확보하는 데는 다소 힘에 부쳐 보였다.

극단 새로고침 <METEOR: 떨어지는 별>
배우들의 연기 역량과 캐릭터 형성에는 몇몇 출연진을 제외하고는 기대를 상회 하진 못했다. 연기자들의 연륜과 여유, 상황을 받아들이는 리액션의 미진한 표출이 아쉬웠고, 연기는 결국 표현하는 행위이고 그가 맡고 있는 역할이 작가로부터 요구받는 배우로서 수행해야 하는 본질의 질량감에 가까이 가지 못한 듯 보인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외부 요소와 내면의 상태를 발 빠르게 표출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예술집단 고하’의 공연은 이미 전국적 인지도를 확보하고 인정받고 있는 김정숙 작가의 역작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드러나곤 하는 여성 작가로서의 섬세함과 특정 여인의 삶에 마치 현미경을 들이대는 듯한 애정과 연민을 담아내는 능력은 가히 탁월하다. 세세한 감정과 동작도 놓치지 않는 몰입감이 담보되어 있어 작가의 대표작이라 해도 손색이 없겠다. 거느려왔던 과거의 강요된 선택으로 인해 좌절과 죽음에 이르는 비극적인 왕가 여인의 일대기를 과하지 않고 스며들게 구현하고 있다.
하지만 극의 흐름이 다소 느슨하고,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순간에도 출연진 서로에게, 관객에게 완전한 지지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인과관계를 더 명확히 하고, 불필요한 요소들을 들어내고, 신체 동작이나 무용 장면의 이질감을 해소해야 할 것이고, 상황의 매듭과 이음새가 다소 거친 점도 조금 더 공을 들여야 할 것 같다. 극의 흐름이 정극의 진수를 구현하다가 간혹 장면에 완전하게 녹아들지 못하는 춤 행위나 신체언어가 이질감을 낳고 물리적 조합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마무리하며
연극제를 준비하며 기대와 걱정 속에서 흘렸을 피와 눈물이 그 과정을 지켜보지 못한 처지에도 능히 짐작이 간다. 한 시기를 오롯이 한가지 목적과 목표를 위해 매진해 왔을 절박함과 간절함이 그저 숙연하게 만든다. 하지만 일정의 성과를 거둔 두 작품의 지난한 여정과 뜨거운 열정에도 불구하고 수정·보완해야 할 몇몇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현장 예술인 연극 연기의 본질을 잊은 듯한 연기 방식의 구현은 카메라 앞이나 마이크에 의존하는 연기술과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연스럽고, 일상언어를 구사하는 연기술이 대세라는 것은 안다. 전달만이 최고의 미덕이라 여겼던 시기는 이미 지났으나, 마이크 앞에 서는 아나운서조차 발성과 발음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현실은 새겨 볼 만하다고 하겠다. 내면연기의 표출이 과도하거나 부족한 경우도 보여 그 적정성이 요구되고, 인물의 입체적인 캐릭터 구축이 아쉬움으로 남는 배우들이 보여 아쉬운 마음이다.
전북연극제는 이제 끝났다. 하지만 이번 연극제를 통해서 새로운 움이 트는 것을 확인했고 만성에 빠진 모습이 아닌 자기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하려는 모습을 지켜보며 희망을 품어 본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연극제 예산이 전국 최하위라는 현실과 제작 환경의 차이가 공연 질의 척도로 작용하는 지금의 공연 예술계 상황과 생리를 생각하면 열패감이 들 뿐이다. 예도, 예향을 주창하면서도 일껏 제시하는 개선 방안과 관심 호소에도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지금까지의 도정은 이제 일신해야 할 것이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연극제를 빛내주신 모든 참여자에게 진정어린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조민철
전주 출신으로 대학 시절 연극을 시작, 연출과 연기를 병행하며 꾸준히 활동 중이다. 극단 황토 레퍼토리 시스템, 창작극회, 전주시립극단을 거쳐 전주시립극단 상임연출을 역임했다. 사)한국연극협회 전주지부장, 전북지회장, 전국연극제 집행위원장을 맡았으며 현재 (사)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