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와 비평   2026.6월호

자연스러운 세대교체, 저변 확대에 대한 기대

제35회 전북무용제를 보고


심정민 무용평론가·비평사학자


바리여바리여



전북특별자치도는 오래전부터 ‘예향(藝鄕)의 고장’으로 불릴 만큼 예술적 깊이와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곳이다. 판소리, 서화와 서예뿐 아니라 한옥, 한지, 한식의 생활예술도 잘 갖춰져 내려오고 있다. 근래 들어서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형태로 전통과 현대를 융합한 예술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전북무용제를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전북무용제는 전북 지역 무용인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하고 지역 무용의 활성화 및 대중화를 위해 전주, 군산, 남원, 익산 등지에서 매년 열리는 무용 축제이자 경연 대회다. 대회의 대상 수상작은 전북 대표로 전국무용제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 만큼 주목도가 남다르다. 올해로 제35회를 맞은 전북무용제는 5월 17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박수로무용단의 <V1>, 뉴앙스아트컴퍼니의 <바리여 바리여>, 하이댄스퍼포먼스의 <n번째 빛>을 소개하였다. 


박수로무용단의 <V1>은 바쁜 일상 속 선택은 반복되고 멈추지 못한 채 다음 단계로 밀려남을 고찰한다. 정승준의 안무를 실연한 김민지, 박수로, 이은서, 정의현, 홍두화, 고예빈이 이 시대의 젊은 영혼으로 역할 하면서 다채로운 형태의 움직임을 펼친다. 때론 간결하고 때론 역동적이며 또 때론 진지하게 펼쳐지는 춤사위는 마치 그들의 복잡미묘한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남녀 무용수들은 주제 의식에 관한 움직임 발현에 있어 즉흥적 요소를 흠뻑 머금고 있다. 각자 즉흥적인 요소를 활용한 독무로 감정을 표현하다가, 한데 모여 일체성 높은 군무로 합일된 에너지를 분출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의 안무에서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기 마련인데 단체의 수장인 박수로가 묵직하게 중심을 잡으면서 춤의 흐름을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무대를 차분하게 다운시키는 무채색 분위기에서 이 시대 젊은이들이 느끼는 니힐리즘마저 감지된다는 점에서 주제 이미지는 뚜렷하게 새겨진다. 이들의 선택은 끝났으나 그 선택이 무엇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은 모호성 속에서 일련의 흐름에 휩쓸려가는 뉘앙스가 짙다.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젊은 영혼들의 고독과 사색마저 감지되는 바다. 


안무를 맡은 정승준의 경우 동아무용콩쿠르,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전국무용제, 뉴댄스페스티벌, 서울무용제,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 등 무용계 주요 무대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어온 현대무용가로서 앞으로를 지켜볼 만하다. 


뉴앙스아트컴퍼니의 <바리여 바리여>는 바리공주 설화를 모티프로 한다. 오구대왕과 왕비의 일곱 번째 공주로 태어났으나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버려진 바리공주는 말 그대로 ‘버려진 공주’라는 뜻으로 바리데기(버려진 아기)로도 불린다. 버려졌음에도 부모가 불치병이 들자 약수와 약꽃을 찾아 저승에 가는 유일한 자식이 바로 바리공주였다. <바리여 바리여>는 김동훈의 안무로 바리 역의 김가희와 배우 오민혁을 비롯한 총 21명의 무용수가 등장하는 대작으로 오프닝을 지닌 3장으로 전개된다. 


막이 오르자 배우 오민혁이 등장하여 바리공주 이야기로 관객을 이목을 환기한 후 원망과 사랑이 담긴 현대적인 한국창작무용극을 시작한다. 첫 장에서 하얀색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은 자신을 버린 부모를 위해 죽음의 세계로 가는 바리공주의 마음을 형상화한다. 2장에서는 어둡게 내려앉은 무대 분위기에서 온통 검은색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저승에서의 우여곡절을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종장에 이르러서는 ‘버림받은 존재가 오히려 생명을 살린다’는 역설적인 구조가 완성되어 치유와 해원의 뉘앙스가 짙게 깔리면서 마무리된다. 


음악과 무용에 있어서 전통에 근간하지만 이를 현대적인 리듬과 움직임을 융해하여 펼쳐 보인다. 잘 알려진 이야기 구조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몰두하기보다는 특징적인 심리와 정조를 안무와 연출로 승화하는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바리공주 독무의 경우 다소 긴 호흡으로 이러한 심리와 정조를 진득하게 표현하는데 여기에 동작적 기교도 융해할 수 있다면 한층 완성도를 높일 수 있으리라 본다. 


<바리여 바리여>는 규모를 갖춘 채 다채롭게 변화하는 장면들로 인해 한 시간가량 전막 창작을 20~30분으로 축약한 듯한 인상이 짙다. 전북무용제는 대통령상을 수여하는 전국무용제 본선 진출을 위한 예선 역할을 하는 관계로 뉴앙스아트컴퍼니의 궁극적인 목표 의식과 그에 맞는 노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n번째 빛



하이댄스퍼포먼스의 <n번째 빛>은 주슬아 안무와 오해룡 연출로 열세 명의 무용수가 출연하여 젊은 감각의 작품을 선사했다. 이러한 예술가들은 35억 년 동안 생존하고 진화해 온 세포에서 영감을 얻어 그냥 ‘살다’가 아닌 ‘잘 살다’라는 물음에 자기만의 답을 찾아가려고 한다. 이온 이동, 생체전기 신호, 분열-인정-유지, 불규칙과 규칙, 나비효과, 기하학, 작용과 반작용 등 다양한 소재를 창작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하는 의지도 엿보인다. 


클래식에서 퍼커션 리듬까지 아우르는 음악, 명암을 강조하면서 풍부하게 변화하는 조명, 여러 색감의 올인원(all-in-one) 스타일 의상이 젊은 감각으로 확장된 춤의 뉘앙스를 한층 돋운다. 각자의 개성을 유지하면서 전체적으로 정돈된 짜임새가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안무와 실연 면에서 적지 않게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하이댄스퍼포먼스 대표인 주슬아는 전북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싱가포르 등 해외에도 발을 내디뎠을 뿐 아니라 <n번째 빛>처럼 특정 장르나 영역에 얽매이지 않은 감각적인 창작으로, 지역 무용계에 신선한 기운을 더하고 있다. 

본 공연의 앞뒤로는 색소포니스트 고민석의 축하공연과 함께 초청공연으로 김승애의 <십이체장고춤>이 펼쳐졌다. 김승애의 경우 장고와 한 몸처럼 움직이면서 민속춤 특유의 자연스러운 멋과 흥을 담은 비연체, 어미동체, 절체, 뿌림체, 새부리채 등 독특한 춤사위를 맛깔스럽게 표현하였다. 


이번 전북무용제의 대상은 뉴앙스아트컴퍼니의 <바리여 바리여>에게 돌아갔으며 이에 따라 가을에 있을 전국무용제에 전북 대표로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전국무용제는 서울을 제외한 전국 16개 시도의 대표 단체가 참여하여 창작 경연을 펼치는 국내 대표 축제의 하나로 전북무용제와 같이 올해 제35회를 맞이한다. 전국무용제와의 연계성을 차치하고서라도 전북무용제는 멋, 흥, 예를 중요시하는 전북 지역의 창작 산실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올해 참가한 세 단체의 작품을 통해 동시대에 다양한 예술 감각의 함양이라든가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통한 저변확대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정민 

무용평론가이자 비평사학자로, 한국춤평론가회 회장과 고려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한 바 있다. <춤>과 <댄스포럼>에 고정 연재한 바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강원대학교 등 여러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국립현대무용단 이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소위원, 국립극장 편집위원을 비롯하여 다양한 기관과 단체의 심의ㆍ평가ㆍ자문ㆍ발제를 맡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