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의 오래된 마을, 봉인된 이후 100년 동안 한 번도 열리지 않은 금고가 있다. 두꺼운 철재로 제작된 문은 아무도 뚫지 못해 다이얼과 손잡이는 부서지고 흔적만 남았다.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이 금고는 일제강점기인 1925년에 세워진 익산금융조합 건물 안에 있다. 전해지기로는 일제 패망 당시 일본인들이 의도적으로 금고의 잠금장치를 부수고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금고를 둘러싼 이런 저런 추측은 끊이지 않았다.
봉인된 금고 이야기를 안고 있는 익산금융조합 건물이 최근 금융 지식을 배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2024년 6월 새롭게 단장되었다. <이 공간! 왜 몰랐지?> 12월호의 주인공은 이곳, 익산시 인화동의 '솜리문화금고'다.
익산금융조합은 일제강점기 당시 금융기관과 협동조합의 기능을 수행하던 기관이다. 건물은 당시 전국에 걸쳐 지어진 금융조합 건물의 전형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금융기관의 특성을 살린 구조도 잘 보존되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해방 후 등기소와 전북은행 건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비어 있던 건물을 익산 문화도시 사업의 일환으로 리모델링했다.
새롭게 단장된 이 공간에서 아이들은 재미있는 체험을 통해 금융 지식을 쌓는다. 통장 형태의 스탬프 투어 지도, 접으면 저금통이 되는 팸플릿 등 단순한 인쇄물 하나에도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내부에는 최신 디지털 기술이 도입되었다. 1층의 금융미디어 창구에서는 미디어월과 태블릿PC를 통해 주식, 채권 등의 금융 용어를 배운다. 안쪽에서는 화폐 속 숨은 이야기를 벽면을 만지며 체험하고, 나만의 지폐와 동전을 만들어볼 수 있다.
'그 금고' 또한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익산시에 따르면 현재 금고를 열 계획은 없다. 궁금증을 품게 한 채로 남겨둘 계획이다. 대신 바로 옆에 놓인 대형 금고로 금고 문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옛날 화폐와 금융거래 서류들을 볼 수 있다.
금융 교육 공간 반대편에는 익산 인화동의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고지도다. 익산의 옛 모습을 만나고 나면 RFID미디어(스마트태그 시스템)를 통해 익산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축물 이야기를 만난다. 인화동 일대의 역사와 변화하는 모습을 영상과 홀로렌즈로 실감 나게 만날 수도 있다.
2층에서는 <솜리 그리고 인화> 전시가 한창이다. 익산이라는 도시의 시작에는 '솜리'가 있다. 솜리는 만경강 갈대숲 '속 마을'이라는 뜻에서 그 이름이 유래된 한적한 마을이었다. 군산항 개항 이후 군산과 전주를 왕래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1924년 동이리역이 들어서며 더욱 번화했다. 익산의 4·4 만세운동 또한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인화동의 역사는 익산의 역사와도 같다. 이 가치를 인정받아 현 솜리문화금고 건물을 포함한 대교농장 사택, 신신백화점 등 10동의 근현대 건축물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볼 수 있는 <솜리 그리고 인화>는 내년 5월 31일까지 계속된다.
익산시는 인화동 일대를 근대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역사 관광 명소로 개발 중이다. 지난 9월에는 솜리문화금고를 중심으로 '2024 솜리마을 골목여행'이 열렸다. 주민과 함께하는 마을 해설 투어와 지역 여러 예술단체의 공연과 버스킹 무대 등 다양한 행사가 함께했다. 그중 익산금융조합의 직원이 되어 인화동 골목에서 미션을 수행하며 열리지 않는 금고에 담긴 비밀을 밝혀내는 게임인 '솜리결사대' 프로그램은 특히 많은 호응을 얻었다.
'솜리마을 골목여행'은 내년에도 계속될 예정이다. 솜리문화금고 공간 또한 더욱 알찬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 봉인된 금고와 함께 100년 전 익산의 사회사와 발전사를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솜리문화금고
익산시 인북로 12길 5
평일 및 주말 10:00-18:00
글ㆍ사진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