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간! 왜 몰랐지?   2025.8월호

교통 중심에서 문화 중심으로

완주 쉬어가삼례 




삼례역에서 바로 옆, 아담한 크기로 기와지붕을 얹은 건물이 있다. 옛 삼례역을 활용하여 만든 '쉬어가삼례'다. 삼례에 철도가 처음 들어선 것은 1914년, 이리(익산)와 전주를 잇는 철도 개통 당시였다. 

'쉬어가삼례'는 2011년 삼례역이 새로 만들어지며 쓰임을 잃은 구 삼례역사를 활용하여 만들어진 문화공간이다. 인근에 삼례문화예술촌,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등이 있어 삼례를 찾는 여행객들이 잠시 쉼을 즐기며 완주와 삼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인근에 삼례문화예술촌,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등이 있어 삼례를 찾는 여행객들이 잠시 쉼을 즐기며 완주와 삼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사통오달의 요지, 완주

쉬어가삼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이곳에 상주하는 시니어 도슨트들이 환한 미소와 함께 반긴다. 완주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된 전시관에서 지역 어르신들이 직접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이 뜻깊다. 


전시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삼례의 교통 역사다. 완주 사람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온 구전인 “이리 가면 이리(익산), 저리 가면 전주, 그리 가면 금마, 고리 가면 고산"에서도 알 수 있듯, 완주는 예로부터 사방으로 길이 열린 교통의 요지였다. 특히 삼례는 '역참'이 있던 고을로 <고려사>와 <세조실록>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 역참은 전통 시대 공공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으로, 물자 운송과 숙박, 말 관리 등을 맡았다. ‘한참’이라는 말도 원래는 ‘역참에서 역참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뜻한다. 


조선시대에는 인근 역참을 관리하는 ‘도찰방’이 삼례에 주재하였는데, 이때 사용하던 '삼례도찰방역'이 현재 삼례면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 <호남읍지>(1793)에 따르면 삼례역은 당시 호남 최대 규모의 역참이었다. 당시 전주, 임실, 정읍 등 12개의 전라도 역참을 삼례에서 관리하였다고 한다. 한양에서 경기도와 충청도를 지나 전라도에 들어설 때 제일 처음으로 만나는 역이 삼례역이었으며, 고려시대 거란군이 침입했을 때 현종이 피신한 곳도 바로 삼례역이다. 







역사의 길목에서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보니 완주는 여러 전쟁과 사건의 중심이 되기도 하였다. 1층 오른편의 전시관에서 이러한 완주의 역사를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임진왜란 초기 전주성으로 진입하려는 왜군을 막아낸 웅치전투가 있다. 웅치전투에서 활약했던 완주 출신 의병장 '황박'의 이야기도 함께 볼 수 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농민군의 1, 2차 집결 장소로 삼례가 활용되기도 하였으며, 동학군의 최후 항전이라 불리는 대둔산 동학 항전 또한 완주가 배경이다. 이외에도 삼례독서회사건, 삼례학생만세운동 등 이 지역에서 벌어진 항일운동들이 차례대로 소개된다. 특히 한 가문에서 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비봉면 고흥 유씨 일가의 ‘일문구의사’ 이야기는 깊은 감동을 준다. 


전시관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여행자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작은 도서관 같은 분위기에서 앉아 회의를 할 수도 있고, 빈백에 몸을 뉘여 잠시 쉬어갈 수도 있다. 가끔은 인근의 삼례문화예술촌과 연계하여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즐길 수 있는 행사도 열린다. 전라도의 길목을 지켜온 삼례. 이제는 이야기가 머무는 문화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쉬어가삼례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삼례역로 85

10:00 ~ 18:00 (월요일 휴관)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