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님이시어 높이 높이 돋으시어 / 멀리 멀리 비춰 주소서 // 시장에 가 계시는 지요 / 위험한 곳을 디딜까 두렵습니다 // 어느 곳에나 놓으십시오 / 당신 가시는 곳에 날이 저물까 두렵습니다
아주 오래 전 삼국시대, 백제의 한 행상인이 집을 떠난 뒤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등점산 위 바위에 올라가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달에게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끝내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고, 하염없이 기다리던 아내는 망부석이 되었다.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가요, '정읍사'의 이야기다.
정읍시 신정동 정해마을은 애절한 부부의 사랑을 노래한 ‘정읍사’가 탄생한 곳이다. 삼국시대 당시 정읍 고을 터였으며, 여기서 지금의 지명 ‘정읍(井邑)’이 비롯됐다. 역사 깊은 이 마을에 2019년 ‘한국가요촌 달하’가 문을 열었다. 이름은 정읍사의 첫 구절 ‘달하 노피곰 도다샤’에서 따왔다. 가요전시관을 중심으로 우리 음악사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고, 정읍사와 관련된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천년의 노래 '정읍사'의 시작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정읍사와 백제가요를 소개하는 전시관이다. 정읍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가요이자 시조 형식의 원형으로 평가되는 견해가 있어 국문학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고려사>와 <동국여지승람>에는 제작 경위가, <악학궤범>에는 가사와 연행 절차가 기록되어 있어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이어져 불렸다. 전시관에서는 정읍사의 배경 설화와 ‘정읍’이라는 지명의 유래, 정읍사가 지닌 역사적 가치를 짚어본다. 정읍사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도 함께 볼 수 있다.
정읍사 외에 제목과 줄거리만 전해지는 백제가요들도 소개된다. 선운산가, 무등산가, 지리산가 등이다. 오늘날 전승되는 5곡의 백제가요는 모두 화자가 여성이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정절을 지키는 여인의 노래가 주를 이룬다. 이를 통해 조선의 유교 사상 이전부터 백제 사회에 이미 정절 윤리가 자리 잡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정읍사에서 궁중음악 ‘수제천’으로 이어지는 정읍 음악사의 맥락도 살펴볼 수 있다.

백제가요에서 K-POP까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으며 하나의 장르가 된 K-POP. 그 이전에는 윤심덕의 '사의 찬미'부터 조용필의 '단발머리' 등으로 이어지는 대중가요가 있었다. 가요전시관 한편에서는 정읍사가 한국 가요의 뿌리라는 점을 내세워 백제가요부터 현대 K-POP까지의 음악 변천사를 소개한다. 레코드 가게와 음악다방을 콘셉트로 한 공간에서는 미디어 패널과 헤드셋을 통해 시대별 음악을 직접 감상할 수 있다. 1980년대 풍경을 재현한 전시실은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을, 젊은 세대에게는 레트로 감성을 느끼게 한다.
야외에는 정읍사와 관련된 조형물들이 설치돼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두 나무가 하나가 된 듯한 부부나무다. 정해마을에는 실제로 여성을 상징하는 버드나무와 남성을 상징하는 팽나무가 한 몸처럼 400여 년을 함께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부부나무라 부르며, 나무의 기운으로 정해마을의 부부는 백년해로한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이외에도 정읍사 여인의 동상과 초가집 재현, 인공폭포와 연못, 널찍한 정자가 있다. 실로폰·징 등 악기를 모티브로 한 놀이시설도 마련돼 있어 가족 나들이 장소로도 좋다.
다만 전시 콘텐츠 일부는 노후화되고 체험 요소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공간을 찾은 당일 직원 외 다른 이용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읍시는 2023년 10월부터 3년 간 JTV에 위탁 운영을 맡기고 홍보에 나섰다. 한국 대중음악을 살피는 TV프로그램 '장유정의 달하정원'을 제작하고, 가요전시관 앞에 라디오 오픈스튜디오 부스를 설치하여 라디오 생방송을 진행했다. 올해는 21억 원을 투입해 경관 개선 사업에 나서는 등 활성화 방안을 찾고 있다. 가장 오래된 노래 ‘정읍사’가 오늘의 감각으로 새롭게 울려 퍼질 수 있도록, 다음 노래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가요촌 달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정촌1길 23-85
09:00~18:00 (월요일 휴관)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