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리뷰   2025.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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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사랑했던, 아름다운 화가 

전북도립미술관 ‘박민평: 변주된 풍경’


전북도립미술관이 전북미술사 연구시리즈의 네 번째 전시로 ‘박민평: 변주된 풍경’을 개최한다. 2021년 천칠봉 화백을 시작으로 2023년 이의주, 지난해 문복철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명한 전북미술사 연구시리즈는 올해 서양화가 박민평을 연구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고등학생 때 제작한 작품부터 2년 전 제작한 최근작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품을 소개한다. ‘사실-색면-이야기-변주된 풍경’이라는 주제로 105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자연과 삶을 사랑한 그는 주로 지역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1970년대에는 산과 해바라기 등 단순화한 형태를 어둡고 강렬한 색채로 표현했다. 원근감을 없앤 평면적인 풍경을 그리는 등 다양한 변주를 시도하기도 했다. 80년대에 들어서며 그의 풍경화 속 다른 요소들은 점차 사라졌다. 산 하나만을 중심에 둔 구성으로 변화하며 그는 ‘산의 작가’라 불릴 만큼 산에 몰두했다. 90년대에는 원색의 면에 점을 흩뿌리는 듯한 화풍이 돋보이며 고향의 기억과 정서를 떠올리게 하는 민화적 분위기를 띠게 된다. 2000년대에는 여백의 미를 담은 따뜻하고 편안한 풍경화를 그렸다. 이때도 여전히 화폭의 중심에는 ‘산’이 있었다. 


박민평 화백은 1940년 부안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보고 자란 산과 들, 바다가 곧 그의 영감이 되었다. 그는 서라벌예술대와 전주대 대학원을 졸업, 38년 동안 미술교사로 일하며 교직에 있었다. 화가의 삶 속에서 교육자로서의 삶도 큰 부분을 차지했다. 엄한 스승이었지만 제자들의 기억 한편에는 창문 밖 나무를 바라보던 낭만적인 성생님으로 남아있다. 여러 개인전을 열며 전라미술상, 전주시 예술상, 목정문화상 등을 수상한 그는 전북 미술계를 지키는 든든한 원로작가였다. 가만 바라보면 절로 따스하고 푸근해지는 그의 그림처럼, 작가는 특유의 소박하고 넉넉한 품성으로 지역 예술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도 했다. 


전시 ‘박민평: 변주된 풍경’은 작가가 전시를 선보였던 전시장과 지역작가들과의 연대를 통한 단체전 등을 함께 조명하며 지역 미술사 연구의 주제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북도립미술관 전북미술사 연구시리즈 ‘박민평: 변주된 풍경’은 7월 13일까지 이어진다. 


박민평: 변주된 풍경

2025. 4. 25. – 2025. 7. 13. 

전북도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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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서 만나는 사진예술의 ‘무한한’ 세계 

제18회 전주국제사진제 


매년 봄 찾아오는 전주국제사진제가 올해도 흥미로운 주제들로 함께한다. 4월 26일부터 5월 11일까지 서학예술마을 일대에서 열리는 제18회 전주국제사진제, 올해는 9개 부문의 다양한 전시를 통해 국내외 사진가들의 작품을 만난다. 먼저, 해외 사진예술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국제전에는 12명의 작가가 참여해 각자의 독특한 세계를 펼친다. 역사와 문화, 현실 관찰, 심리적 은유, 사회적 메시지 등 작가마다 다양한 의미를 담아 감상하는 재미가 더해진다. 특별전에서는 미국의 여성 사진가 빅토리아 삼부나리스의 작품을 만난다. 작가는 지난 25년간 남서부를 돌며 광활한 자연을 카메라에 담았다. 단순한 기록이 아닌,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조망하며 환경문제를 이미지로 풀어냈다. 


국내 주제전에서는 ‘경계를 넘어서: 현실과 초현실 탐구’를 주제로, AI(인공지능)와 디지털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변화한 현실에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이외에도 전주만의 풍경과 정체성을 탐구하는 ‘전주로컬문화사진전’, 전국 대학생들의 작품 발표를 통해 젊은 사진가들의 신선한 시선을 엿보는 ‘자유발언전’, 한국여성사진가협회(KOWPA)가 기획한 특별전 ‘얽힘’ 등 전주 곳곳에서 열리는 전시를 통해 동시대 사진예술의 매력을 전한다. 


2025. 4. 26. – 2025. 5. 11. 

서학아트스페이스·선재미술관·

에프갤러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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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축제, 국립극장과 함께 <심청> 제작

2025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 발표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장 이왕준)가 올해 개막공연으로 국립극장과 공동 제작한 <심청>을 선보인다. 판소리 심청가에 현대적인 해석을 더한 ‘판소리 시어터’ 형식으로, 20여 년간 유럽에서 오페라를 만들어 온 요나 김이 처음으로 판소리 기반의 공연 연출에 도전한다. 그는 지난 4월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원작에 담긴 유교적 가치관에 저항하는 메시지를 담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강산제와 동초제를 바탕으로 전통 판소리의 ‘창’을 살리면서도, 새로운 형식으로 서사를 꾸려나간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무대·의상·영상 등 주요 제작진이 독일 창작진으로 꾸며져 신선한 느낌의 심청을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주인공 ‘심청’ 역은 공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소리꾼 김율희와 국립창극단 단원이 더블캐스팅으로 맡는다. 김율희는 2023 소리축제 ‘라이징스타 완창판소리’에서 강산제 <심청가>를 선보인 바 있어 더욱 의미 깊게 다가온다.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오는 8월 13일부터 17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을 비롯한 전북 일대에서 개최된다. <심청>은 8월 13일과 14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9월 3일부터 6일까지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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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헌 선생의 인권 정신 이은 첫 수상자는 ‘직장갑질 119’  

산민 한승헌 3주기 추모식 및 제1회 산민상 시상식


산민 한승헌 변호사 3주기를 맞이한 올해, 그가 지켜온 인권 정신이 ‘산민상’으로 이어졌다. 독재정권에 맞선 1세대 인권변호사로, ‘자랑스럽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부끄럽게 살지는 말자’는 좌우명으로 살았던 한승헌 변호사. 


지난 4월 18일 진안문화의집에서 산민 한승헌 선생 3주기 추모식과 함께 제1회 산민상 시상식이 열렸다. 산민상은 산민한승헌기념회(이사장 윤석정)가 혼란스러운 현시대에 진정한 산민 정신을 조명하는 취지로 올해 제정한 상이다. 의미 깊은 이 상의 첫 수상자는 ‘직장갑질 119’다. 노무사와 변호사, 노동단체 활동가 등 200여 명이 모인 민간 공익단체로 업계의 불공정 관행을 공론화하고 상담이나 법률 지원을 하고 있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제정에 큰 역할을 하는 등 지금 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하며 첫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한승헌 변호사는 1934년 진안에서 태어나 전주고와 전북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검사 생활을 거친 뒤 변호사가 되었다. 민청학련사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 등 굵직한 시국 사건을 도맡으며 ‘시국사건 1호 변호사’라 불렸다. 2018년에는 민주화운동과 사법개혁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기도 했다. 바르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여러 편의 시집을 남긴 그는 문학과도 인연이 깊었다. 시대의 상처를 함께하며 굴곡진 길을 걸어오면서도 늘 정의와 웃음을 잃지 않았던 사람. 2022년 4월 20일 한 변호사가 떠난 뒤, 계엄 사태부터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의 위기와 혼란한 세상을 마주하며 그가 걸어온 삶을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된다. 



사단법인 직장갑질 119는 2017년 11월 1일 출범했다. 일터에서 겪는 갑질을 상담하고 공론화해 제도를 개선, 직장인이 모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원하는 민간공익단체다. 200여 명의 전문가들이 일체의 보수나 사례도 받지 않고 시간을 쪼개 법률 및 노동 상담에 참여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부당해고, 임금체불, 언어폭력 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카카오톡 오픈채팅과 이메일 상담을 제공하며, 아르바이트, 일용직 노동자, 프리랜서 등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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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녀에서 인간으로, 창극 <청>이 남긴 질문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 ‘청’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 기획공연 <청>이 지난 4월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 무대에 올랐다. 심청을 새롭게 해석해 보여주고자 했던 이번 <청>은 정통 창극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관객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려는 시도가 돋보였다. 판소리 창법에 서양 화성 선율을 더해 창극이 처음인 관객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인당수 빠지는 장면과 용궁에서의 장면 등에는 영상 효과를 적극 활용하며 현대적인 요소를 더한 것도 돋보였다. 


젊은 단원들의 가능성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무대였다. 청을 맡은 한단영은 인당수와 추월만정 등 주요 장면들을 탄탄한 소리와 몰입감 있는 연기로 그려냈다. 심봉사 역의 김도현 또한 심봉사가 눈을 뜨는 장면 등 애절한 감정을 잘 표현했다. 조연을 맡은 최경희, 차복순, 이충헌 등 도립국악원의 중견 단원들도 탄탄하게 뒤를 받쳐주며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다만 서사적인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컸다. 공연 전 도립국악원은 ‘효’를 걷어내고 두려운 죽음 앞에 선 한 명의 인간으로서 심청을 표현했다고 강조했다. 제목부터 효녀 심청의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심봉사가 준 성을 떼어내고 ‘청’이라 지었다. 그러나 실제 무대에서는 기존 심청과의 차별점을 찾기 힘들었다. 심청은 여전히 심봉사의 무책임한 약속으로 자신을 희생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고, 일말의 망설임 없이 인당수에 몸을 던진다. 어린 여성이 인신매매의 피해자가 되는 상황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제시하기보다는 전통적인 ‘효녀’의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효가 사라진 심청은 어떤 이야기를 해야하는가. 인간 심청을 보여주고자 했던 무대였다면 극의 서사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주요 배역은 더블캐스팅으로 꾸려졌다. 18일은 한단영과 김도현 단원이, 19일은 채정원과 임현빈 두 객원 소리꾼이 춘향과 심봉사를 맡아 열연을 펼쳤다. 김차경 창극단 예술감독을 필두로 연출 양수연 한예종 겸임교수, 대본 안선우 극작가 등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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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아가든 프로젝트 기획전 ‘노동, 새로고침’

일곱 작가가 전하는 예술과 노동의 관계


한때 식당 건물이었던 ‘산아가든’이 ‘산아가든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전시장으로 되살아났다. 5월 17일까지 진행되는 전시 <노동, 새로고침>은 예술가의 불안한 노동 현장과 식당에서의 그림자 노동들, ‘노동’이라고 불리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보연, 김영란, 김영봉, 노진아, 박마리아, 여은희, 정하영 7명의 설치작가가 참여해 예술가들의 삶과 창작, 일상과 노동의 관계를 각자의 방식으로 전하며 “예술을 노동의 범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낡은 마루, 손때 묻은 스위치, 페인트가 벗겨진 미닫이문의 손잡이 등은 이 공간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던 누군가의 노동 시간과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계속해서 만들고 치우는 것을 반복했을 모습은 일곱 작가가 마주해온 노동과도 닮아있다. 식당의 형태가 그대로 살아있는 공간에 전시된 작품들은 네모난 전시장에서보다 더욱 강렬한 메시지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