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ㅣ문화로 지역 읽기ㅣ남원   2024.3월호

연극으로 전하는 세상의 이야기

: 극단 둥지





<진달래 할매, 물장구 치고...> 단체사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남원은 '이야기'의 도시다. <춘향가>, <흥보가>, <변강쇠타령> 등의 전통 판소리가 남원에서 태어났으며, 이를 전하는 이야기꾼인 명창들도 많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에 등장하는 <만복사저포기>, 고전소설 <홍도전>과 <최척전>도 남원이 배경이다. 원로 극작가 노경식 또한 남원 출신으로, 남원 관련 희곡을 다수 발표해왔다. 인구 7만의 작은 도시 남원에 이렇게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오랜 시간동안 이러한 남원 이야기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극단이 있다. 1987년 창단한 남원 유일의 극단 둥지(대표 최원준)다. 둥지는 꾸준히 창작 희곡으로 남원 시민들에게 우리 주변의 이야기부터, 나아가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들을 전한다. 남원 시내 지리산소극장을 기반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2007년부터 문광수 연출이 대표를 맡아오다가,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보고자 작년부터 최원준 대표가 이끌고 있다.


극은 10여 년 전부터 문 연출이 직접 쓴다. 사실 극단 형편상 작가에게 제대로 된 원고료를 줄 수 없어 시작했던 글쓰기였다. 하지만 어느새 극단 둥지만의 자부심이 되었다. 특히 2018년 <기억을 담그다>는 전북연극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아 대한민국연극제 본선까지 올랐다. 문 연출은 인터뷰 날도 문화저널 2월호의 표지에 있는 강용면 작가의 '온고지신-조왕' 작품을 보더니 다음 극은 밥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도 재미있겠다며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보통은 사회 문제에 초점을 둬요. <이런, 변고가 있나? 조선의 변란!> 같은 경우에는 2016년에 대통령 탄핵 사건이 있었잖아요. 완전 '변고'였죠. 우리는 연극인으로서 무대로 동참해야겠다고 결심해서 관련 내용을 작품에 녹여냈어요. 최근에 했던 <진달래 할매, 물장구 치고…>는 화전놀이가 주제인데, 어르신들을 상대로 하는 실버 학교에 강사로 나갔다가 만들게 된 거예요. 여성 어르신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필요하다고 느껴서요.”  



왼쪽부터 최원준 대표, 문광수 연출



직접 쓴 극이다 보니 실험이나 변형도 많은 편인데, 특히 음악이 어우러지는 연극이 돋보인다. 2013년 고물상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고물상 표류기>는 지역 락밴드가 함께 무대에 올랐다. 라이브 공연이 함께하는, 심지어 밴드가 무대 한가운데에 배우들과 함께 서서 연주하는 연극은 파격적이었다. 2016년 <이런 변고가 있나-조선의 변란>에서는 조선 후기라는 시대적 배경에 맞춰 가야금, 대금, 장구 등 전통 국악기가 더해졌다. 코로나 시기 같은 작품으로 만든 오디오북에는 판소리까지 추가되며 더욱 풍성한 극을 만들었다. 이외에도 많은 공연들이 직접 작곡한 음악을 더해 만들어졌다. 


연극 인프라가 적은 남원이기에 둥지에서 활동하는 20여 명의 단원 중 전문 연극인은 4명 정도다. 대신 남원 시민들이 배우로 함께한다. 비연극인들을 지도해야 하므로 연습 기간은 길고 고되며, 배우뿐만 아니라 조명이나 무대 세트를 담당할 전문 스태프가 없어 모든 일은 직접 해결한다. 하지만 그만큼 연극을 향한 열정과 순수함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으며, 엄청난 노력으로 높은 무대 수준을 자랑한다. 덕분에 2018년에는 문광수 연출이, 2021년에는 김춘수 단원이 전북연극상 대상을 받았다. 무엇보다 둥지의 연극이라면 믿고 보아주는 관객들이 많은 것이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런, 변고가 있나? 조선의 변란!> 오디오북 연습



요즘은 3월에 있을 전북연극제 준비로 한창이다. 가장 최근 작품인 <진달래 할매, 물장구 치고...>를 보완하여 나갈 예정이다. 차기작도 준비되어 있다. 인공지능 로봇과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작품이다. 역시 문광수 연출이 글을 썼다. 우리의 일상에 로봇들이 함께하는 시대, 돌봄로봇은 혼자 사는 어르신들의 말동무가 된다. 하지만 이로인해 자식들은 돌봄로봇을 사드리는 것으로 자식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고, 혼자 남은 할아버지는 로봇과 함께 이런저런 일들을 겪게 된다. 인공지능의 단순한 문제점이 아닌, 인공지능이 도래하는 시대에 우리가 어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물음을 던질 예정이다. 


“단원들끼리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해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지원금이 필요한 거냐, 지원금이 필요해서 작품을 만드는 거냐. 요즘에는 후자인 경우가 많죠. 근데 원점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연극을 하는 연극인이잖아요. 연극으로 세상에 의미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남원의 관객분들한테 돌려줘야 하는 거잖아요. 둥지는 앞으로 그런 고민을 하는, 작품을 먼저 생각하는 극단이 되고자 합니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