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ㅣ문화로 지역 읽기ㅣ임실   2024.3월호

시를 씁니다 
삶이라는 밭을 잘 가꾸기 위해

: 김용택시인문학관



덕치면 장암리의 한 마을에 김용택시인문학관이 있다. 거창한 간판도 없이 한 그루 나무처럼 서있는 이곳은 흔히 떠올리는 문학관의 성격과 조금 다르다. 매일 책을 읽고 시를 쓰며 자연스레 문학이 마르지 않는 공간이 되고 있다. 시인, 그리고 시를 만나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에게 문을 열어두고 한숨 쉬어가도록 자리를 내어준다. 그러니 시인의 고향 ‘임실‘을 더 많은 사람들이 품게 해준 공간이기도 하다. 김용택 시인에게 글쓰기는 아침밥을 지어먹는 것처럼 눈뜨면 습관처럼 하는 일이다. 오늘 아침에도 따끈따끈한 시 한 편을 지었다. ‘사랑에 닿는 곳을 사랑하라.’ 소리 내어 제목을 읽는 그의 얼굴에 사랑이 두둥실 떠있다. 


“나는 하루도 심심하지가 않아요. 세상에 재밌는 것들이 너무 많거든요. 산책하다가 만나는 풀잎, 돌담, 바람, 구름, 물소리까지. 보통 재밌는 게 아니에요. 요즘은 ‘하루 한 줄 쓰기’를 하고 있어요. 오늘 발견한 장면을 한 문장으로 쓰는 거예요. 저절로 시가 써지기도 하죠.”


시인이 살던 집과 문학관



어느덧 70대 중반의 나이, 굴곡진 시대를 지나온 시인 김용택은 지금을 ‘행복한 불행의 시대’같다고 말한다. 다들 겉으로는 제법 잘 살아 보이지만 여전히 불평등이 만연하고 자본의 힘을 이기기 버거운 세상. 그래서일까, 시인의 글은 보란 듯이 말갛고 다정한 단어들이 빼곡하다. 한평생 섬진강을 바라보며 시를 짓는 그는 직접 보고 듣는 것만 쓴다는 자신의 원칙대로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 지금 시대의 절망과 희망을 노래한다. ‘창밖의 저 참새가 어떻게 거대한 자본을 이길 수 있을까’ 요즘은 이런 고민을 하며 시를 짓는다고. 


시가 모여 피워낸 문화

매일을 쓰다 보니 곁에는 함께 쓰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는 귀촌한 동네사람들과 2주에 한번 서재에 모여 직접 쓴 시를 나누는 시모임을 갖는다. 처음에는 사는 이야기나 하며 놀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시 잘 쓰는 법’에 대해서도 가르치지 않는다. “처음 시를 쓸 때는 내가 써놓고도 무슨 말인지 몰랐고, 오래 썼더니 내가 쓴 글을 나는 알겠더라. 더 오래 썼더니 내가 쓴 글을 다른 사람도 읽고 감동하더라.” 그가 말하는 이유이다. 글이란 자기 자신 안에 쌓여 느는 것이지 어느 날 잘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대신 다음에 올 때는 딱 한 줄씩만 써오라는 숙제를 냈다. 한 가지 당부도 덧붙였다. 일상에서 본 하나의 일을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쓰라는 것. 거대하고 화려한 것이 우리의 삶을 가꿔준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발붙이고 사는 일상에서 발견한 한 줄이 곧 시 쓰기에 다가가는 일이라고 전한다. 



시 모임 '강 따라 글 따라'ㅣ사진 전북일보



“시 쓰는 일은 곧 사물을 자세히 보는 눈을 갖게 되는 거예요. 글을 잘 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글쓰기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거죠. 남편도 자세히 보고, 자식들도 자세히 바라보고, 할머니들은 마당에서 무슨 일을 하시나.. 자세히 보는 거예요. 그렇게 구체적으로 쓰는 능력을 기르다보면 내 삶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글을 통해 자기 삶을 잘 관리할 수 있게 되지요.”


2017년, ‘강 따라 글 따라’라는 이름으로 결성된 이 모임은 여덟 명의 회원이 함께하며 여전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 줄 쓰기도 어려웠던 일이 이제는 꽤나 잘 쓴 시들이 많다. 그렇게 한 줄 한 줄이 모여 첫 시집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를 엮어내고, 올해로 벌써 다섯 번째 시집 『내일은 내 소식도 전해줄게』를 펴냈다. ‘큰 부침 없이, 별 변화 없이, 위대한 일이 없어도 위대해질 수 있는 게 우리의 동인지를 매년 내는 것’이라고. 8년 동안 꾸준히 이 위대한 일들을 해오다보니 자연스레 힘이 생겨났다. 올해는 임실군의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여러 행사들을 계획하고 있다. 작은 모임이 힘이 되어 지역에 문화적인 행사를 열고, 사람들을 모으는 이러한 과정이 진정한 문화로 가는 길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김용택 시인



“일회성으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행사만으로는 문화를 형성할 수 없어요. 그래서 더욱 고민이 많은데요. 임실필봉농악과 힘을 합쳐 섬진강 따라 길굿을 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보려 합니다. 가다가 판소리도 한바탕 듣고 제 문학관에도 들리고, 각자 사는 이야기도 나누는 거죠. 마을 사람들이 문화적인 감성을 경험할 수 있도록 열심히 만들어보려 해요.”


한편으론 농악 소리에 새들과 자연이 놀라진 않을까 진심 어린 걱정의 말을 건넨다. 어느 누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섬세하고 다정한 그 마음이 새삼 와닿는다. 갈수록 선한 것이 사라져가는 세상에서 그는 여전히 자신의 시와 삶을 통해 선량하고 정다운 세상을 향한다. 시 한편으로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지켜지지는 않겠지만 있는 힘을 다해본다. 함께 쓰는 일도 계속해나갈 계획이다. 시 모임이든 독서 모임이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삶을 가꾸는 개인이 늘고 그 영향력이 주위로 퍼져나가는 일. 문화는 그렇게 아주 긴 세월 알게 모르게 크기를 키우며 스며드는 것이라고 믿는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