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ㅣ문화로 지역 읽기ㅣ임실   2024.3월호

도자기 빚는 예술가이거나 
마을 ‘오지라퍼’이거나 

: 도화지아트센터




폐교를 리모델링한 도화지아트센터


다시, 도자기 꽃이 피는 땅으로 

고요한 관촌면 동네에는 도자기 굽는 예술가가 산다. 오래전 쓰임을 다한 폐교를 작가의 작업실로,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아이들의 교육공간으로 만들며 마을에 특별한 이야기를 불어넣는 사람. 도예가 이병로 씨다. 고향인 임실에 돌아와 후배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할 공간을 찾던 그는 2002년 버려진 옛 상월초등학교를 발견했다. 창작활동을 위해 마련한 공간이었지만 20여년이 넘는 시간 같은 자리를 지키며 공간은 품을 키웠다. ‘도자기 꽃이 피는 땅’이라는 의미로 도화지아트센터라 이름 짓고 이제는 누구든 찾아와 작품을 감상하고, 도예를 배울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되었다. 


좋은 작품을 빚는 것만큼 중요시하는 일은 교육활동이다. 본래 이곳이 학교의 역할을 했듯, 유치원생부터 어르신들까지 폭넓은 교육이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도자기의 매력을 알고 좋아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늘길 바라는 마음에 계속하는 일이다. 손으로 직접 흙을 만지고 자신만의 모양을 단단히 다지는 과정을 거치면 기계로 찍어낸 도자기와는 다른 예술적 가치를 자연스레 알게 된다. 



이병로 도예가



“내가 만든 도자기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손으로 빚은 독특한 느낌, 감성이 있어요. 한번 만들어 사용해보면 수공예 도자기 자체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작가들의 작품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날 수 있겠죠. 이렇게 교육을 통해 도자기의 가치를 알리고 저변을 넓혀가고 싶어요. 어렸을 때 여기서 도자기를 만들었던 친구들이 성인이 돼서 찾아오기도 하거든요. 그때 만든 그릇을 지금도 잘 쓰고 있다고 말할 때 참 기쁘고 고마워요.”


달항아리에 담은 너그러움의 미학

화가를 꿈꾸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미술의 길로 들어선 그는 도예를 만나기까지 우여곡절을 꽤 겪었다. 매번 원하는 대학에서 떨어지며 갈팡질팡하던 시기, 주변에서 도자기를 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당시 도자기는 생활용품에 가까웠기에 ‘도자기가 무슨 예술이야’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대도예 1세대인 한봉림 도예가를 보고 관심을 품게 된다. 그렇게 선택지에는 없던 원광대학교 도예학과에 들어갔다. 방학이면 선배들의 작업실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흙을 반죽하고 현장에서 배웠다. 졸업 후 아픈 어머님을 돌보기 위해 관촌에 정착한 그는 2년 동안 오직 작업에만 몰두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잠들 때까지 온종일 손에 흙을 쥐고 살았다. 그 시기 만들었던 무궁화등잔이 전국공예품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도예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달항아리



그의 시그니처 작품은 백자 달항아리다. 이곳 도화지아트센터가 세워진 임실군 신전리는 과거 천주교 박해 때 천주교인들이 숨어살며 생계유지를 위해 도자기를 만들던 마을이었다. 그중에서도 백자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작가는 그 맥을 잇기 위해 백자에 주목했다. 일종의 사명감으로 행한 길이었지만 백자가 지닌 순수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달항아리를 빚는 이유에도 그만의 철학이 담겨있다. 보름달을 닮은 둥근 곡선은 밥그릇과 같은 형태의 두 개의 조각을 위아래로 접합해 완성한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잘 붙을 수 없을 뿐더러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 자체로 아름답다. 그는 이런 과정이 우리 삶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꼭 붙들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순백의 달항아리를 통해 만남과 소통, 화합, 탄생 네 가지의 메시지를 전한다. 


“달항아리에는 너그러움의 미학이 있어요. 아무리 완벽하게 만들려고 해도 환경의 영향을 받다보면 조금씩 틀어지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두 개가 만나 그 모양을 유지하고 버티고 있잖아요. 조금 삐뚤어졌어도 이 또한 아름답게 봐줘야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한 법이죠.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이런 마음이 필요한 것 같아요.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가며 너그럽게 봐주는 마음이요. 달항아리를 보며 그런 너그러움을 생각하길 바랍니다.”


지역민과 함께한 다도교육 · 작은 음악회



지역문화를 넓히는 선한 오지랖 

작가는 자신의 호(號)를 정한다면 ‘지랖 이병로’라 짓는다며 웃었다. 평소 오지랖 넓다는 칭찬(?)을 자주 듣는 이유에서다. 올해는 오지랖을 좀 더 본격적으로 펼쳐볼 계획이다. 현재 공간을 중심으로 예술마을 조성을 위한 준비단계에 있다. 임실군과 함께 자문위원을 꾸려 마을을 어떻게 구성해나갈지 이제 막 논의를 시작했다. 지역마다 특화된 자원에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다양성을 향하는 길이라는 생각이다. 임실에는 현재 즐길만한 문화적 다양성이 너무나 부족한 현실. 도예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한데 모아 지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선한 오지랖을 부리고 싶은 바람이다. 임실의 작은 마을에 더해질 새로운 이야기가 기대된다.



고다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