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영화동아리 ‘씨네팜’
요즘 순창 주민들의 삶은 영화로 기록된다. 영화 <세상 밖으로>를 연출했던 여균동 감독과 아내 김영연 씨가 귀촌하여 만든 우리영화협동조합(대표 김영연, 이하 우영자) 덕분이다. 이들은 지난 2019년부터 꾸준히 어린이, 청소년, 이주여성, 일반 주민들과 만나며 함께 영화를 만들고 있다. 순창 사람들은 우영자의 지도 아래 시나리오, 촬영, 조명, 녹음, 편집까지 전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 영화는 굉장히 특별한 이야기를 다루지는 않는다. 주민이라면 자주 보았을 버스 터미널, 학교, 골목길, 동네 맛집 등을 배경으로 그 안에 담긴 지역 사람들의 인생을 비춘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벌써 수십편이다.
시작은 청소년과 초등학생들이었다. 순창의 아이들은 도시에 비해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적었으며, 영상 미디어 교육의 측면에서도 많이 낙후되어 있었다. 이를 위해 기획했던 것이 '영화 캠프'다. 캠프의 슬로건은 '놀면서 영화 찍자'. 영화의 작품성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대신 영화 제작이라는 낯선 경험에 다가가고, 완성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카메라는 아이들의 눈이 되고, 오디오는 입이 된다. 친구들과 나눈 재밌는 이야기는 곧 시나리오가 된다. 영화를 찍는 것은 공동 작업이기에 가끔 친구들과 싸울 때도 있지만, 그러면서 역할을 조율하는 법과 힘들어도 끝까지 해내는 법들을 자연스레 배운다.
청소년영화캠프
“캠프가 끝난 후 아이들, 부모님들, 선생님들 다 같이 모여 시사회를 해요. 웃음소리가 정말 많이 나와요. 내 얼굴이 나오고, 아는 얼굴이 나오니까 특별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도 그저 재밌는 거예요. 자기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막 책상 밑으로 숨고, 그러다가 친구들이 나오면 놀리기에 바쁘죠.”
아이들의 영화가 '일상'이었다면, 이주여성들과 만든 영화는 '판타지'였다. 순창다문화지원센터와의 협력으로 2021년부터 <좋은 친구들>, <몽골>, <하이디 옷장>까지 세 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이들과는 낯선 나라에서 살아가기 위해 포기했던 일들을 영화에서 대신 해보기로 했다. <좋은 친구들>에서는 친구들과 바다로 훌쩍 떠나고, <하이디 옷장>에서는 예쁜 드레스를 입고 즐거운 파티를 했다. 이주여성들을 차별과 소외의 대상으로 구분 짓기보다는, 그들이 만들어갈 당차고 희망한 모습들에 주목했다. 영화 <좋은 친구들>은 이러한 부분에서 인정받아 전주국제영화제와 디아스포라영화제 등에 상영되며 호평을 얻기도 했다.
다문화이주여성 영화 <몽골>
“영화를 찍기 위해 먼저 그들과 친해지고,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어요. 한국 여성들이 60~70년대에 겪던 가부장 문화를 그대로 겪었더라고요. 제사가 일 년에 여덟 번이 있는데 아무도 안 도와줬다든지... 그래도 저희랑 같이 영화 찍은 사람들은 형편이 나아요. 남편이 못 나오게 한다거나, 돈을 벌어야 한다거나 하는 사정이 있는 분들도 많아요. 농촌에 사는 이주여성들의 삶을 마주하고 충격을 받았었죠.”
농사지을 줄 알면 영화 만들 줄도 안다는 생각으로, 작년에는 주민영화동아리 '씨네팜'을 만들었다. 순창의 영화인들이 주축이 되어 제작한 여균동 감독의 <지구보다 낯선>에 주민들이 배우로 참여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어 제작한 <좀비와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민들과 함께 만들었다. 봄이면 씨뿌리고 가을이면 추수하는 농사처럼, 씨네팜은 매년 봄마다 영화 씨앗을 뿌리며 농사짓듯 영화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김영연 대표
우영자의 지난 5년으로 순창에는 작지만 큰 변화가 있었다. 영화 캠프를 통해 영화인을 꿈꾸는 학생들이 생겨났으며, 실제로 영화 관련 학부에 진학한 캠프생이 방학이면 순창에 돌아와 우영자의 활동을 돕고 있다는 점도 뜻깊다. 이주여성들과의 영화는 농촌 사회에 뿌리내린 다문화 문제에 대해 돌아보고, 그들과의 거리감을 좁혔다. 무엇보다 지역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 지역의 풍경과 삶을 영상으로 아카이빙했다는 데에 의미가 크다.
지금까지 만든 영화들로 영화제를 개최하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이다. 보통의 영화제가 단순히 출품이나 초청작들을 상영하는 것과는 달리, 이들의 영화제는 지역의 사람들이 직접 찍은, 지역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들로 가득 채워질 예정이다. 작년 여름에는 새로운 도전도 있었다. 순창 읍내에 문화 공간 '스페이스 쑨'을 개관한 것. 영화모임, 상영회 등 영화와 관련된 행사뿐만 아니라 인문학 강연, 미술 소모임, 전시 등을 할 수 있는 거점이 될 예정이다. 우영자가 순창에 앞으로 더 많은 문화와 예술의 씨를 뿌리고, 수확하길 기대한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