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ㅣ문화로 지역 읽기ㅣ순창   2024.3월호

순창 연극, 이제 곧 꽃이 핀다

: 극단 녹두



청소년 연극단



순창에는 오랜 시간 연극이 없었다. 가끔 타지역 극단의 초청 공연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 순창에 지난 2019년 지역 극단이 탄생했다. 귀촌 연극인 지미리 씨가 만든 '극단 녹두'다. 이후 순창에 조금씩 연극이 스며들었다. 첫 공연은 순창향토회관의 객석을 가득 채우며 지역에 연극의 재미를 알렸다. 2020년에는 청소년 연극단이, 2023년에는 생활연극단이 만들어지며 순창 군민들은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모두 연극 배우로 변신했다. 순창의 연극, 나아가 문화예술의 꽃이 이곳에서부터 피고 있다. 


연극으로 시작하는 문화예술

지미리 대표는 2006년 전국연극제(현 대한민국연극제)에서 연기상을 타기도 했던 서울 출신의 연극 배우다. 평생 대학로에서 배우의 길만을 걸을 줄 알았던 그가 귀촌한 지도 벌써 7년이다. 처음에는 순창에 정착할 생각이 없었다. 연극 활동은 서울에서 이어갈 생각이었지만, 지역 문화예술을 위해 고민 중이던 순창군이 지 대표를 찾아 연극을 올릴 것을 제안했다. 그렇게 극단 녹두를 창단하고, <만선>을 공연했다. 동반자살을 선택한 가족들이 통통배 한 척을 훔쳐 망망대해로 나가는 내용으로 당시 대학로에서 인기 있던 작품이었다. 실질적인 단원은 지 대표 혼자였기에 순창 외부에서 배우와 스태프을 모아 고생 끝에 무대를 올렸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지미리 대표


“처음에는 이해하기 쉽게 농촌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올려야 하나 했었어요. 하지만 괜한 고민이었죠. 연극을 처음 보시는 분들도 <만선>을 너무 잘 봤다고 해주셨어요. 그때 서울이든 농촌이든 사람의 보는 눈은 다 똑같다는 걸 깨달았어요. 작품이 쉽냐, 어렵냐보다는 좋은 작품인지가 중요한 거죠. 순창의 수준에 맞는 작품 같은 건 없어요. 시골이라고 말랑말랑하고 쉬운, 저예산의 작품만을 올리는 건 지역 사람들을 무시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만선>의 성공은 청소년 연극단으로 이어졌다. 대사뿐인 일반적인 연극은 아이들에게 지루할 수 있기에 음악과 무용을 적절히 섞은 뮤지컬을 만들었다. 전문 강사와 함께 연기와 안무, 보컬을 지도하며 봄부터 겨울까지 10명이 넘는 아이들과 무대를 준비했다. 그렇게 2020년, 순창 3.20 만세운동을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 <그럼에도 우린 노래하고>가 무대에 올랐다. 이후 전봉준 장군 피체 사건을 바탕으로 한 <새야새야 파랑새야>, 순창의 장류 문화를 담은 <오버 더 레인보우> 등 순창의 역사·문화와 관련된 극을 매년 한 편씩 올리고 있다.


한 번 문화예술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나아가 문화예술의 전파자, 소비자, 생산자로 발전하기 쉽다. 그렇기에 문화예술교육이 중요하다. 순창에도 청소년연극단을 계기로 공연학부에 진학하는 아이들이 생겼다. 지 대표는 먼 전주나 광주까지 수업을 들으러 가야 하는 순창 아이들을 위해 흔쾌히 입시 레슨까지 도맡았다.



생활연극단 <경로당 폰팅사건>


“농촌은 문화예술교육이 너무 부족해요. 제가 10년 전 경기도에서 연극으로 문화예술교육을 했었어요. 근데 순창 아이들은 똑같은 내용을 이제서야 경험하고 있어요. 공연이나 전시 같은 문화 경험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교육에 있어서도 한참 낙후되어 있는 거예요. 조금 더 빨리 시작했으면 어땠을지 하는 아쉬움이 항상 있어요.”


작년에는 한국생활연극협회 순창지부를 설립하고 중장년층 주민 6명과 함께한 <경로당 폰팅사건>으로 대한민국생활연극제 무대에도 올랐다. 현재는 공연을 올리려면 배우부터 스태프까지 전부 타지역에서 꾸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앞으로는 생활연극단을 중심으로 전문 연극인을 키워내 순창만의 연극 생태계를 만들어갈 계획이다.


지난 7년간 많은 성과를 이루었지만, 지 대표의 눈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올해 안으로 한국연극협회 순창지부의 설립을 마치고, 순창 향토회관의 상주단체 지정도 도전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제일 큰 목표는 녹두를 함께 이끌어갈 동료를 찾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었기에 힘들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재미있기도 하다는 지 대표. 순창 연극의 꽃이 활짝 필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분주하게 움직인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