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문화로 지역 읽기 | 김제   2024.4월호

작은 공연장이 시골 문화를 바꾸기까지

: 예술집단 얼간&예술공간 짚


왼쪽부터 예술공간 짚 서령 대표, 예술집단 얼간 한상희 대표



2021년 여름, 김제시의 한적하던 시골마을 원평리가 들썩였다. 약 100석 규모의 소극장 '예술공간 짚'(대표 서령)이 개관하면서다. 사람이 없어 저녁 7시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던 동네에 평일 저녁과 주말이면 작은 공연이 열렸다. '예술공간 짚'과 이곳을 이끄는 '예술집단 얼간'(대표 한상희)은 김제 문화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서령 대표와 한상희 대표는 전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연극인들이다. 특이한 점은 배우나 작가, 연출 출신이 아니라는 것. 무대 제작과 조명, 음향 등에 오랜 경력이 있는 배테랑 스태프들이다. 이들은 4년 전 김제에 내려와 예술집단 얼간을 창단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제대로 된 공연장이 없어 창단 공연은 비 오는 야외에서 이루어졌다. 거점이 될 공간에 대한 필요성을 체감하던 중 우연히 서 대표의 지인을 통해 의자 300개가 생겼다. 전주의 창작소극장과 아하아트홀 무대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한 서 대표는 내친김에 공연장을 만들기로 했다. 


“김제에 예술인이 알고 보면 많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거점으로 삼을 공간이 없으니 전주에 가서 활동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김제만의 자체적인 문화판이 형성될 수가 없었던 겁니다. 예술공간 짚이 김제 예술인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예술공간 짚은 모든 공연 장르에 열려있다. 개관식은 김제의 무예공연단체 지무단의 공연으로 출발했으며, 이후에도 국악, 연극, 클래식 등 지역의 다양한 단체들이 이곳을 찾았다. 두 대표가 배테랑 스태프인 부분은 여기서 빛을 발했다. 현재 전북에서 장르에 상관없이 음향과 조명, 무대 제작을 운영할 능력을 갖춘 민간 소공연장은 매우 적다. 또한 분장실, 탈의실, 소품실, 화재 예방시설 등이 전부 구비되어 있고 개별 객석이 있는 '공연장다운 공연장'도 흔치 않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연극으로 만나는 수궁가>ㅣ사진 예술집단 얼간



“예술하는 사람들은 공연 하나하나가 실적이잖아요. 김제의 젊은 예술인들은 지금까지 그런 실적을 쌓을 수 있는 공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연극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예술집단, 예술공간이라고 짓고 모든 공연 장르를 포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앞으로는 연극과 클래식, 국악 등 장르 간의 협업도 이루어질 예정이고, 공연장 로비를 갤러리처럼 꾸며서 미술인들과도 함께 해볼 생각이에요.”


주요 관객은 김제의 어르신과 학생들이다. 이들 대부분이 예술공간 짚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접했다. 개관 처음부터 자주 찾았던 것은 아니다. 특히 어르신들은 공연을 권하면 농번기라 바쁘다, 무릎이 안 좋아서 못 걸어간다는 등 다양한 이유로 발길을 하지 않아 답답할 때가 많았다. 또한 공연 중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대화를 하는 등 관극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공연은 연일 매진되어 객석이 부족하다. 관객들은 자연스레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꾼다. 낯선 문화와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이 풀리자, 원평에 서서히 공연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김제에는 주말과 저녁에 즐길 거리가 없습니다. 주민들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는 작은 영화관 하나가 전부였어요. 시청에서 문화의 날 행사를 하려고 해도, 콘텐츠를 만들 단체가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김제로 들어가서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진달래 할매, 물장구 치고...> ㅣ사진 예술집단 얼간



그동안의 노력에 보답이 찾아온 듯 최근 예술집단 얼간에 반가운 소식이 있다. 전북문화관광재단의 2024년 전통예술지역브랜드 상설공연에 전주, 고창, 임실과 함께 유일한 신규단체로 선정된 것. 5월-10월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4시 연극 <우리가 모르는 콩쥐 결혼 후>를 올린다. 2020년부터 5번의 고배를 마신 끝에 선정되었기에 더욱 뜻깊다. 구전설화인 콩쥐팥쥐전에 김제의 농경문화를 더하여 콩쥐가 결혼한 이후 관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다루는데, 연극을 기본으로 뮤지컬과 마당극의 형식에 무용, 국악, 풍물, 난타 등 여러 장르가 함께 참여한다. 특히 무대가 되는 김제 동헌은 내아가 함께 보존된 드문 경우로, 이번 공연을 통해 지역 문화유산을 새롭게 조명하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전주나 군산 같은 도시는 예술단체가 정말 많아요. 그곳에서 경쟁하기보다는, 작은 농촌에 자리 잡는 것도 예술 활동을 이어나가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시골에도 기회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저희를 시작으로 많은 예술인이 이곳에 와 김제의 문화예술이 활성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