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문화로 지역 읽기 | 부안   2024.5월호

‘촌’스러워지는 건 멋진 일이야!

: 청년 로컬 기업 ‘시고르청춘’


대한민국은 '서울과 시골과 귤'로 이루어져 있다. 한 초등학생이 그렸다는 한반도의 지도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며 퍼진 농담이다. 이 지도는 모든 것이 서울 중심인 우리나라의 웃픈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다. 모든 인프라를 서울에 빼앗긴 지방은 점점 소멸하고, 소수의 지역만이 관광지로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


그러나 문화저널이 만난 부안군 청년들은 생각이 다르다. 그저 '도시촌놈'들의 편견이라고 가볍게 넘겨버린다. 시골이야말로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자라나는 기회의 땅이라며, 비료 냄새나는 시골에 둥지를 튼 '시고르청춘'(대표 윤나연)의 이야기다. 

시고르청춘이 제작한 반팔티셔츠



부안은 우리들의 보물섬이다

시고르청춘을 꾸려가는 4명 청춘들은 스스로를 부안의 보물 사냥꾼이라 표현한다. 부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보물 같은 이야기를 굿즈, 영상 등 그들만의 유쾌한 언어로 풀어낸다. 부안 읍내에서 운영하는 '시고르잡화점'은 그 보물들이 모이는 보물창고다. 상서면 개암사 벚꽃을 모티브로 한 반팔티셔츠, 보안면 우동마을의 솟대를 담은 키링 등 부안의 작은 마을들을 여행하며 마주친 풍경으로 굿즈를 만들어 판매한다. 가장 처음 만든 굿즈는 줄포 제비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 줄포면은 제비가 유명하지도, 많이 살지도 않는 곳이다. 그런 제비를 줄포의 캐릭터로 설정하게 된 데에는 애틋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줄포시장에 갔다 우연히 화장실 건물에 둥지를 튼 아기 제비들을 만났어요. 일주일 뒤 가보니 둥지도, 제비도 흔적 없이 사라진 거예요. 그 모습이 시골 청년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둥지가 없어 결국 떠나는 모습이요. 청년들이 왜 시골을 떠나고, 머물고, 또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줄포제비를 통해 얘기하고 싶었어요.” 


굿즈를 만들기 전마다 이와 같은 이야깃거리를 모으기 위해 일명 '영감여행'을 떠난다. 방식은 이렇다. 일단 하나의 면을 정해 무작정 차를 타고 떠난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면 멈추어 선다. 마을의 작은 모정, 낮지만 탁 트인 동산, 빈집의 녹슨 대문을 바라보며 그림 그리거나 명상한다. 여행이 끝난 뒤에는 함께 모여 각자가 느낀 영감을 나누고, 콘텐츠화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그동안 부안의 13개 읍면 중 부안읍, 변산면, 상서면, 보안면, 줄포면으로 5번의 여행을 떠났고, 영감은 모두 굿즈로 탄생했다. 



왼쪽부터 박현준, 옥성태, 오현영, 윤나연 씨ㅣ사진 시고르청춘



이들은 시고르잡화점이 단순히 부안군 기념품을 파는 소품샵이 아닌 시골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시고르청춘뿐만 아니라 자기만의 개성으로 부안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기업과 단체들을 함께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곰소 소금으로 입욕제를 만드는 '소고미', 부안의 바다를 모티브로 도기를 빚는 '봉덕리크래프트스튜디오' 등 부안에도 이렇게나 많은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있음을 잡화점을 통해 알린다. 


어느새 사랑하게 되어버린 부안

연고가 없던 이들이 함께 회사를 운영하게 된 것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국제교류와 관련된 일을 하리라 꿈 꾸던 윤나연 대표. 영국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후 부모님 차를 타고 오랜만에 집으로 가는 길, 느낌이 이상했다. 그리고 부안IC를 지나는 순간 부모님이 부안으로 이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강제로 귀촌당한(?) 부안에서의 삶은 너무나 지루했다. 


“처음에는 부안을 떠나고 싶었어요. 친구도 없고, 취미생활을 할 만한 곳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책을 한 권 읽게 됐는데, '네가 있는 곳에서 먼저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돼라'는 거예요. 그때 부안에는 기회가 없으니까, 오히려 먼저 만드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하게 됐어요. 지금은 부안이라는 시골을 사랑해요.” 


왼쪽부터 박현준, 옥성태, 오현영, 윤나연 씨ㅣ사진 시고르청춘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재미난 일을 궁리하던 찰나, 단기로 일한 회사에서 현재 동료인 오현영 씨(디자인)와 박현준 씨(영상편집)를 만났다. 이후 운영을 담당하는 옥성태 씨까지 합류하며 지금의 시고르청춘이 만들어졌다. 부안살이를 담은 영상 제작에서 시작한 이들의 활동은 굿즈 기획과 잡화점 개업으로 이어졌고, 작년에는 주식회사도 설립했다. 네 명이 수평적인 구조인 이 작은 기업은 끊임없이 회의하며 시골의 이야기로 콘텐츠를 만든다.


지금까지가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시행착오의 과정이었다면, 앞으로는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어엿한 '기업'으로 자리 잡는 것이 목표다. 최근 부안군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 납품 기업에 선정된 것이 한 단계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대로 회사의 규모를 키워나가며 부안을 거점으로 전국의 시골로 뻗어나갈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시골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들의 촌스럽고도 힙한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류나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