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적으로 잡지를 만들고 그 일을 지속해 나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그것이 종이잡지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인구가 채 5만 명이 안 되는 작은 도시 부안에서는 2009년부터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발행해 오고 있는 잡지가 있다. 부안역사문화연구소가 발행하는 <부안이야기>(발행인 신영근)다. ‘부안 땅, 부안 사람 이야기’를 내세우고 15년 동안 지역 이야기를 담아온 부안이야기는 그 자체로 부안의 역사이자 살아있는 역사가 됐다.
부안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전하다
내가 사는 지역 이야기는 손 뻗으면 닿을 듯 가깝다. 그렇기에 오히려 소홀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기도 한다. <부안이야기>는 그 이야기들을 모아 기록하고,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지역 사람들이 뜻을 모아 만든 잡지다. 지금은 발행인인 신영근(치과의사) 씨를 비롯해 허철희(사진가), 김병남(전북대 교수), 정재철(역사연구가), 김중기(역사 교사) 씨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원고료도 없지만 고향을 그리워하는 출향인들, 향토사에 애정이 있는 전문가들도 기꺼이 책을 꾸리는 일에 참여한다.
<부안이야기>는 여름과 겨울, 1년에 두 번 발행된다. 구성이 알차고 재미있는 데다 부안의 온갖 이야기를 알리고 있으니 가끔은 자치단체가 발행하는 기관지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이 잡지는 그 어떤 외부 지원도 받지 않는 독립적인 잡지다. 잡지를 만드는 경비는 애독자들이 십시일반 모아주는 후원금에 부안군치과의사협회 등 뜻 있는 단체들이 부족한 부분을 메워준다. 부안 지역 곳곳에 배포되는 이 잡지는 유료가 아닌 무료다.
“후원금으로는 겨우 인쇄비만 충당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늘 재정에 허덕이지만 지자체나 다른 기관의 도움을 받지 않는 이유는 독립성 때문입니다. 지원이 있다면 금전적인 여유는 생기겠지만, 그만큼 얽매이고 휘둘리기 쉽습니다.”
<부안이야기> 편집회의(왼쪽), 신영근 발행인
<부안이야기>는 내 고장, 내 마을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책을 마주하면 언제나 정겹고 따뜻한 느낌을 갖게 되는 바탕이다. 13개 읍·면을 하나씩 조명하는 기획 기사, 고향 동네의 그리운 추억을 이야기하는 '몽유부안도', 마을의 숨겨진 이야기를 꺼내놓는 '발굴! 이 기록' 등 부안 사람이라면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주제와 소재가 가득하다. 생태사진가인 허철희 씨가 전하는 ‘생태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부안의 자연을 아카이빙하는 역할을 해낸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부터 역사와 자연을 깊이 있게 다루는 학술적 글까지. 지역을 사랑하고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다.
시민들의 힘으로 바로 세우는 문화
2019년, 부안군청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시민 1천여 명의 마음이 모여 만들어진 부안군 최초의 민간인 주도 동상이었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이 소녀상의 중심에도 <부안이야기>가 있었다. 평화의 소녀상이 필요하다는 지역사회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이후 <부안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건립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모금 홍보가 시작된 지 131일 만에 목표 금액을 달성했다. 그렇게 일제강점기 여성의 수난과 징병과 징용으로 고통받은 부안 군민의 이야기는 기억할 수 있는 역사가 되었다.
평화의 소녀상 건립(위), 부안생태문화답사_격포 월고리 봉수대ㅣ사진 부안이야기
소녀상을 건립한 후 남은 후원금은 일제강점기 항일 의병이었던 김낙선 의사 생가로 돌아갔다. 상서면에 있는 생가 벽면에 그의 얼굴이 그려졌다. 맞은편 돌담에는 부안 의병 운동의 역사를 알리는 글들과 함께 부안 출신 독립유공자, 일제의 감시 대상이었던 부안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이 새겨져 있다. 지역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데에 주민들이 앞장선 뜻깊은 일이었다.
잡지 발간뿐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역사와 문화를 지키고 있다. 특히 2010년부터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부안생태문화답사'도 그중의 하나다. 채석강, 줄포만, 위도 등 부안의 자연은 어느 지역에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곳. <부안이야기>가 진행하고 있는 생태문화답사는 이곳에 전문가의 깊이 있는 해설을 더해 자연유산의 의미와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부안이야기>는 2024년 여름, 통권 30호를 맞는다. 지역의 이야기를 15년이 넘는 동안 충실히 기록해 온 종이잡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존재지만, 창간부터 함께 해온 사진가 허철희 씨는 잘난체하지 않고 겸손하게 지역 이야기를 담아내는 잡지로 성장해나가기를 바란다. 디지털의 시대, 일상의 온갖 것들이 핸드폰과 인터넷으로 해결되는 이 시대에 종이잡지를 고집스럽게 발간해온 <부안이야기>는 부안의 문화와 역사를 지키는 힘이다. 그래서 더 귀해 보인다.
류나윤 기자